“솔직히 말해서 처음에는 속수무책이었죠. 아무리 생각해도 트릭을 알 수가 있나…”

콜롬보의 목소리가 계속되고 있었다.

발밑이 흔들 흔들거리고 있었다. 프랭클린은 기를 쓰고 그것을 참으면서 콜롬보를 계속해서 경멸했다.
당연하지. 네까짓 것들이 알 턱이 없지. 그런데 어떻게 알았느냐 말이야. 누군가가 가르쳐 준 모양이지? 그게 틀림없어. 그렇지 않고서야 네까짓 것들이 알 턱이 없어.
“첫 번째 살인은 정말 훌륭했어. 전화의 트릭,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구실, 신디케이트에 대한 범행의 전가…”

콜롬보는 손가락을 하나하나 꺾어가면서 말했다.

“대단한 솜씨였어요. 프랭클린씨.”

그야 물론 대단한 솜씨지. 도대체 누구한테 알아냈지? 죠안나 한테서? 너 혼자 알아냈다고 해봐야 난 그런 것 믿지 않아.
“소설로 하면 팔릴까?”

경멸에 찬웃음을 띠면서 프랭클린이 콜롬보에게 물었다. 그러나 그것은 울상이었다.

“물론…”

콜롬보는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내가 말한 대로지? 그런 훌륭한 트릭을 당신 혼자서 즐기게 한데서야 너무 아깝잖아!

“그런데 말이오… 그 다음 번의 살인인 라 상카 부인 사건 말인데요. 이것이 또 서툴기 짝이 없어.”

뭐라고? 이 바보 멍청이 같은 놈아. 사팔뜨기의 시궁쥐 같은 놈아. 서툴다고? 뭐가 서툴러, 이놈아!
“그거 참 웃음이 터져 나올 만큼 서툰 솜씨더군. 두 번째 살인 말이야. 멜빌 부인이 들었으면 그야말로 화를 냈을 거야. 도대체 그렇게 허점을 드러냈던 그 이유를 도무지 알 수가 없단 말이야.”

이놈이 도대체 무슨 소릴 하고 있는 거야?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살인이 너무 솜씨가 다르다구?

“요점만 말하라고. 이래봬도 듣는 사람은 미스터리 작가야.”

“글쎄요.”

콜롬보가 웃었다.

“정말로 미스터리 작가십니까?”

“무슨 소리야.”

“문제는 그거예요. 당신은 작가가 아니야, 그렇지? 페리스씨 부인의 얘기를 들으면 당신은 멜빌 부인 시리즈를 단 한 줄도 쓴 일이 없다는 거였어. 그래도 작가야? 아무것도 쓸 줄 모르는 작가라는 게 있을 수 있어?”

“이건 엉터리야!”

프랭클린은 고함을 질렀다. 화를 낸 셈 이었지만 그것은 비명으로 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콜롬보가 혼자 만이었더라면 덤벼들어서 목을 졸랐을 것이다.

나는 작가다, 베스트셀러 작가란 말이야. 짐 페리스가 다 뭐야. 그 녀석은 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놈이었다고!

“그래서 나는 생각했습니다. 미스터리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범죄를 구성할 수 있겠는가 하고요. 어느 쪽이건 간에 상당히 머리를 써야 하는 거거든요.”

이 친구 도대체 무슨 소릴 하고 있어. 멜빌 부인은 바로 내가 생각해 낸 거야. 멜빌 부인 시리즈는 그러니까 누구의 것도 아냐. 바로 내 것이란 말이야.

“...말을 계속하라구. 너무나 어처구니없어서 도리어 재미가 있는걸.”

“나도 그래요.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도리어 재미가 있네요. 그만하면 알겠죠. 다시 말해서 처음에 저지른 그 사건, 궁리에 궁리를 거듭한 그 계획은 당신의 아이디어가 아니었단 말이요. 당신 것은 두 번째 것, 마치 바람이 빠져 버린 것 같은 임시방편식의 그런 것, 그게 바로 당신 것이었어요. 정말 해도 너무 했지. 첫 번째 사건과는 천지차이야.”

너는 일류다. 무엇이든지 일류란 말이다, 프랭클린. 일류인간이 이류인간에게 경멸을 당할 수는 없어.

“...그렇다면 도대체 첫 번째 것은 누구 아이디어였느냐.”

이 쑥맥은 도통 아는 게 없어. 내가 일류라는 걸 전혀 모르고 있군. 어쨌든 이 콜롬보는 이류밖에 안 되니까 알 턱이 없지. 본때를 보여주라고, 프랭클린!

“그야 당신의 파트너죠. 진짜 작가인 짐 페리스씨 말예요. 당연하지 않소? 당신은 애초부터 그런 재주 같은 건 아예 없었으니까요.

당신은 당신 모친으로부터 그 역겹고 구역질나는 일류의식만 얻어가지고는 그것으로 우쭐거리고 있는, 사실은 경박하고도 불쌍한 인종에 지나지 않아. 더 분명히 말한다면 당신은 모친과 따로 떨어질 수 없는, 떨어지기 싫어하는 인간이란 말이요. 나이 살이나 먹어가지고 말이야.

그러니까 당신은 목숨을 걸고 모친과 같이 살던 때와 같은 가짜의 일류세계를 만들어 보려고 발버둥을 쳐왔던 거야. 멜빌 부인이란 건 당신이 생각해 낸 모양인데, 그건 당신 모친의 이미지였던가요?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당신은 짐 페리스가 없었다면 그것을 만들어 내지는 못했을 거 아뇨. 그러고 보면 역시 당신은 아무것도 아니었던 거야. 전혀 아무것도 아닌 단순한 엘리트 의식으로 꽉 찬 허깨비에 지나지 않았던 거지.”

캔 프랭클린의 손가락이 가늘게 떨리고 있다. 얼굴은 마치 혈관이 터져버린 듯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이 돼지 같은 놈아. 너 같은 놈의 입에서 어머니의 욕을 듣게 되다니! 너 같은 놈이 일류를 알게 뭐야.
죽여 버리겠어. 죽여 버릴 테다, 짐 페리스! 네가 나와 나의 어머니를 비참의 구렁텅이로 떠밀어 넣은 장본인이란 말이야.
콜롬보! 네놈들이 나라는 인간을 알게 뭐야! 정말로 내가 만든 거야. 나는 작가란 말이다!

“이게 뭔지 아시오?”

콜롬보가 손에 들고 있던 종이성냥을 프랭클린에게 내밀었다.

“짐 페리스의 자택에서 발견한 것이오. 부인의 얘기를 들어보면 그는 굉장히 일에 열심인 사람이어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각나면 가까이에 있는 담배케이스나 성냥갑에다가 무엇이든지 메모해 두는 버릇이 있었대요.”

그러면서 콜롬보는 종이성냥을 흔들어 보였다.

“사실은 여기에도 대단히 흥미 있는 것이 적혀 있어요. 이건 페리스씨의 필적이 맞죠? 감정을 의뢰하면 금방 알 수 있는 일이지만.”

콜롬보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종이성냥을 열었다.
“한번 읽어 볼까요... 잭과 질은 산에 간다. 한 사람은 시체로 돌아온다. 그런 그 트릭은...?”

머리속이 쾅쾅 울리기 시작한다. 다리에 힘이 빠져서 간신히 서 있는 것도 힘에 겨웠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죠. 그런 작가라면 반드시 그 아이디어를 서류함에 보관해 두었으리라고 말이요. 그래서 여기 와서 조금 전에 조사해 보았는데...”

콜롬보는 이번에는 한 장의 타이프용지를 꺼내들었다.

“이것입니다. 여기 이렇게 쓰여 있어요. 자, 읽습니다.”

콜롬보는 기침을 한번 하고 나더니 교과서를 읽듯이 또박또박 읽기 시작했다.

“...멜빌 부인용 알리바이 트릭... A가 B를 죽이는 데 있어서는 B를 교외에 있는 별장으로 데리고 가서 거기서 자택에 있는 부인에게 전화를 걸게 한다. 구실은 바쁜 일이 있어서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한다. 그 통화 중에 빵...”

콜롬보의 목소리가 진짜 총성처럼 프랭클린을 덮쳤다. 두 다리는 분명 의식할 수 있을 정도로 떨리기 시작했다.

프랭클린은 이제 오직 한가지 일밖에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것만이 그의 자존심을 간신히 지탱하고 있는 것이었다.

“어때요?”

콜롬보가 타이프용지를 흔들면서 프랭클린에게 말했다.

“이대로지, 당신이 한 짓이? 당신은 자기 스스로 생각하는 머리를 갖고 있지 않으니까 짐 페리스의 이 아이디어를 강탈해 간 거야. 얼마나 자랑스러웠겠어. 그 사람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바로 그 사람을 죽이는 거니까. 당신의 그 일류의식을 틀림없이 만족시켰을 거요.”

이놈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고 프랭클린은 애써 그렇게 생각했다.
도통 아무것도 모르고 있어. 전혀 모르고 있단 말이다!

“난 오히려 당신에게 동정하고 있어요. 당신은 어쨌든 남의 재능을 뽑아내는 대단한 재주를 갖고 있었어요. 그런데도 당신은 그것을 부정해 버리고 말았지. 그리고는 자기에게는 없는 페리스씨의 재능을 시심했던 거야. 원인이야 어쨌든 문제는 그랬었단 말이오. 당신은 불쌍한 사람이오.”

누가 너 같은 것한테 동정해 달라고 부탁했어? 이 프랭클린은 태어난 그 시간부터 남들로부터 존경을 받도록 그렇게 정해져 있었단 말이다.

“좀 더 있는데, 마저 읽을까?”

“아니야. 내가 생각한 거니까 읽지 않아도 알고 있어...”

캔 프랭클린은 창밖의 어두운 로스앤젤레스를 내려다보면서 떨리는 손으로 주머니에서 담배케이스를 꺼냈다.

“이봐요, 콜롬보...”

그는 간신히 담배에 불을 붙이자 연기를 들이마시면서 말했다.

“수수께끼를 풀려고 머리깨나 아팠겠지?”

“그야 그럴 수밖에요. 너무 잘 짜여진 트릭이었으니까...”

콜롬보가 진지하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지만 당신은 말야. 한 가지 잘못 생각한 데가 있어.”

프랭클린은 큰 소리로 외치고 싶었다. 관객이 콜롬보 한 사람뿐인 것이 못내 섭섭했다.

“당신이 짐의 아이디어라고 생각하고 있는 첫 번째 범행의 트릭 말이야. 그건 내 아이디어야.”

어떠냐, 정말 놀랐을 거야. 당신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거야. 나는 역시 일류야...

“내 아이디어 중에서 쓸만한 것은 그거 하나였어. 5년 전에 생각해서 짐에게 얘기를 해주었던 기억이 나. 어떻소, 소설로 하면 팔릴까? 그 녀석 그것을 쓰지 않고 서류함 속에 처박아두다니, 바보 같은 자식!”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도대체 누가 그걸 믿어줍니까. 당신이 그래서 좋다면 나야 아무런 상관이 없지만 말이오. 하지만 당신이 졌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어요.”

콜롬보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 의자에서 일어나더니 누군가를 불렀다. 짐 꾸러미 뒤에서 한 사나이가 나타났다.

“잘 잡았어?”

“예, 경감님.”

사나이는 소형 녹음기의 버튼을 눌러 끄면서 자신 있게 말했다.

“지금 것을 자백이라고 인정해도 상관없겠지?”

콜롬보는 그렇게 말하더니 정복 경관을 보고 프랭클린을 연행하라고 명령했다.

“뭐, 수갑은 필요 없어. 이 사람 도망칠 사람 아니니까.”

끌려 나가는 캔 프랭클린의 등 뒤에서 콜롬보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때까지 포장되지 않고 남아 있었던 예의 멜빌 부인의 초상화가 벽 위에서 빙그레 미소를 띠면서 문을 나가는 프랭클린을 바라보고 있었다. 콜롬보는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책을 다시 열고 몇 줄 읽고 나더니 벽에 걸린 멜빌 부인과 견주어보고 더벅한 머리를 마구 긁어댔다.

누가 스위치를 껐는지 사무실 안의 불이 꺼지고 로스앤젤레스의 네온의 바다가 한층 더 아름답게 빛나 보였다.

콜롬보는 책을 덮더니 레인코트 옷자락을 펄럭이면서 바쁜 걸음으로 사무실을 나갔다.

 

 

 

 

 

*

 

“여러 가지로 신세만 지고...”

죠안나 페리스가 말했다.

“아니, 천만에요.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해서...”

언제나 다름없이 얼룩 투성이의 레인코트를 걸치고 뒤틀린 넥타이를 늘어뜨린 콜롬보였다.

로스앤젤레스 공항의 로비에서는 그런 괴상한 그의 모습도 군중 속에 묻혀 버려 눈에 거슬려 보이지 않는 것을 그녀는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물어도 소용없는 일이지만 앞으론 어떻게 하실 작정이시죠?”

“특별히 뭐 이렇다하고 생각한 것은 없지만 더 이상 로스앤젤레스에는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뿐이에요. 고향인 덴버로 돌아가서 한동안 조용히 살아볼까 해요...”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진지한 얼굴로 콜롬보가 말했다.

“로스앤젤레스라고 해서 나쁜 일만 있는 건 아닙니다. 최근 와서 여러 가지 강력사건들이 늘어나긴 했지만 그래도 우리 집사람 말로는 로스앤젤레스가 최고래요. 아무데도 가고 싶지 않다고 하는 걸요.”

“그러시겠죠. 저도 이 아픈 추억을 잊어버리면 다시 또 오게 될지도 모르죠.”

“그래, 그래. 그러셔야죠. 나쁜 놈 때문에 좋은 사람이 모두 딴 데로 가버리면 나 같은 건 일할 보람이 없어져 슬퍼집니다요. 정말 해먹기 힘든 장사입니다.”

콜롬보가 머리를 긁고 있다. 탑승을 알리는 아나운서 멘트가 들려왔다.
“그럼...”

죠안나 페리스가 콜롬보에게 손을 내밀었다. 콜롬보는 그것을 부끄러운 듯이 쥐어 주었다. 뜻밖에도 따뜻한 손이라고 죠안나 페리스는 생각했다.

“부인께도 안부 전해주세요.”

“예. 꼭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콜롬보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서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더니 입에 물고 또 부지런히 성냥을 찾기 시작했다.

“라이터라도 하나 사시죠?”

죠안나가 말하자 콜롬보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게 안돼요. 어딘가에 갔다가 버리고 오거든. 그래서 우리 집사람은 당신 다시는 사지 마세요. 하면서 잔소리를... 때로는 남한테서 빌린 것까지 잃어버리는 데에는 정말 질색입니다.”

“그런데 콜롬보씨?”

그녀의 표정이 정색을 했다.

“딱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는데... 캔을 체포할 만한 결정적인 증거가 있었습니까?”

콜롬보의 눈알이 가운데로 몰리더니 그는 또 부끄러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정직하게 말해서 결정적인 것은 없었습니다. 종이성냥은 댁에서 발견한 것이니까, 그가 보지 못한 거라고 하면 그것으로 끝난 것이고... 나머지는 내가 그 트릭을 타이프로 쳐서 사무실의 서류함 속에서 발견했던 것처럼 했던 거예요. 그밖에는 주로 그 친구의 자의식이 과잉한 점을 꾹꾹 찌르기만 했던 것인데...”

“그게 다예요?”

죠안나가 말하자 콜롬보가 싱긋 웃었다.

“네. 처음 에는요, 나도 그 트릭은 페리스씨가 생각해 낸 것이라고 생각했었죠. 그런데 부인으로부터 여러 가지로 프랭클린에 관한 얘기를 듣고 나서는 어쩌면 그것은 프랭클린의 아이디어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왜냐하면 그 친구 자기가 생각한 아이디어에 무척 집착하는 사람 아녜요? 그래서 그가 남이 생각해 낸 트릭을 빌어서 살인을 실행하겠는가, 하는 데에 의문을 두었죠. 그래서 주로 그런 점에 착안해서 프랭클린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것만 골라서 찔러주었죠. 그랬더니 그것이 들어맞아서...”

뜻밖의 말에 멍해 있는 죠안나 페리스에게

“자, 그럼!”

하고 손을 흔들면서 콜롬보 경감은 레인코트를 펄럭이면서 멀어져 갔다.

죠안나에게는 먼 곳에서 “성냥 없어요?” 하는 콜롬보의 목소리가 들린 것만 같았다.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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