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죠안나 페리스는 말할 것도 없이 마음이 상해 있었다. 무척 쓸쓸하기도 했다.
그러나 누구로부터도 동정을 받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안 하고 그저 멍하니 벽을 바라다보고 지내온 며칠이었지만 그래도 누군가가 자기를 동정해 주기를 바래본 적은 없었다.
슬프기는 해도, 쓸쓸하기는 해도, 짐은 아직도 어딘가에 살아 있을 것만 같았다.
살아 있는 동안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던 남편이 이제는 오직 그녀만의 품 안으로 돌아온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적잖이 위안이 되었다.
죠안나는 형식적인 조문인사 같은 것은 한 마디도 하지 않는 콜롬보의 태도가 그래서 무척이나 좋았다.
그는 신경을 쓰려고 하는 것 같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모르는 척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당연한 일을 당연하게 말하고 있을 뿐이지만, 그것이 바로 콜롬보가 베풀 수 있는 최대의 동정이라고 그녀는 마음으로 느끼고 있었다.
거기에 비해서 캔 프랭클린은 마치 틀에 박힌 듯 한 태도라니… 더구나 사건 이후 전화로 밖에는 말해오지 않는 그 매정함…
그 프랭클린이 남편을 죽인 진범이라고 지금 눈앞에 있는 콜롬보가 말하고 있다!
“이봐요, 부인. 이것 좀 보세요.”
콜롬보가 거실 소파에 앉아 있다가 반쯤 몸을 일으켜 세우듯이 하면서 라 상카 부인의 집에서 발견한 예의 사인이 든 ‘살인처방전’을 내밀었다. 표지를 열자 프랭클린의 서명이 거기 있었다.
“나의 릴리에, 애정을 담아서… 그게 어때서요?”
죠안나 페리스는 책에서 눈을 떼고 콜롬보의 얼굴을 살폈다. 콜롬보는 그 괴상하게 생긴 눈으로 빤히 죠안나를 바라보면서 마구 손을 흔들어대고 말했다.
“그거 거짓말 한 거예요. 단순한 여주인과 손님이었다는 설명이었지만, 이건 상당히 친밀하게 사귀고 있었다는 증거예요.”
“말도 안돼.”
죠안나가 고개를 흔들면서 책을 도로 돌려주었다.
“작가는 부탁을 받으면 이런 말을 팬들에게 써주는 법이에요. 도대체 이런 사인이나 코르크 같은 게 무슨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아무런 증거도 안 될 것 아녜요?”
“물론 이것만 가지고는 쓸모가 없죠.”
콜롬보는 책을 탁하고 덮었다.
“그러나 이 사람을 범인이라고 가정하면 앞뒤의 관계가 분명해지고 수수께끼도 풀리게 됩니다."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아요.”
죠안나가 또 고개를 흔들었다.
“옛날부터 캔을 잘 알고 있지만 그런 사람이 아니었어요. 살인이라니… 그런!”
그랬더니 콜롬보는 본인으로선 굉장한 진지한 셈인 괴이한 눈초리로 그녀 쪽으로 바싹 다가앉았다
“아닙니다, 부인. 설사 백 년을 사귀어 온 친구일지라도 그런 것은 이런 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가 부인의 부군인 짐 페리스 씨를 죽인 것이 확실합니다.”
웃음이 터져 나올 듯한 눈매와는 반대로 그의 목소리는 진지하기 짝이 없었다. 그리고는 마치 자기가 한 언동이 열없다는 듯이 가슴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성냥 있습니까?”
죠안나는 맙소사, 하는 듯이 일어나더니 사건 이후 손도 대지 않고 있던 남편의 책상 위를 찾다가 마침내 서랍 속에 팽개쳐져 있던 성냥을 찾아내어 콜롬보에게 주었다.
“그렇다면 경감님, 말씀대로라면 알리바이는 어떻게 됩니까. 캔은 별장에 있었어요. 그리고 동기조차 없잖아요.”
이번에는 콜롬보가 맙소사, 하는 얼굴빛을 했다.
“전화 트릭은 조금 전에 설명 드렸죠. 우선 페리스씨를 별장으로 유인합니다. 도중에 라 상카 부인의 가게에서 자기 혼자 온 것처럼 전화를 해서 페리스 씨는 아직도 사무실에 남아 있다고 합니다. 별장에 도착한 뒤엔 페리스씨에게 직통으로 부인에게 전화를 걸게 합니다.
부인이 전화를 받으면 페리스씨는 프랭클린이 시키는 대로 아직도 사무실에 있다고 말합니다.
바로 그 시점에서 권총을 쏩니다. 그렇게 되면 누구든지 페리스씨가 사무실에 있을 때에 총을 맞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나서 부인으로부터 연락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황급히 차로 되돌아옵니다. 페리스씨의 그…”
“몸을 태우고 말이죠.”
죠안나가 콜롬보의 망설임을 보충해 주었다.
“그렇지요. 그리고 또 뭐랬지요.”
“동기…”
“그것은 보험금입니다. 두 사람은 서로 많은 금액을 걸어놓고 있었는데, 그 사람은 돈 때문에 곤란해 있었어요. 그림이라든지 여자관계라든지…”
“그건 그랬었지만. 하지만, 그것만으론…”
죠안나가 문득 시선을 돌리니, 콜롬보는 담배에 불을 붙이려던 손을 멈추고 종이성냥의 뒤쪽을 열심히 뜯어보고 있었다.
“왜 그러세요?”
“여기에 말이죠. 뭔가 씌어 있어요.”
콜롬보는 소리를 내어 읽기 시작했다.
“잭과 질은 산에 간다. 한 사람은 시체로 돌아온다. 그럼, 그 트릭은? … 뭡니까? 이건.”
“예, 그이예요. 무엇이든지 메모해 두거든요. 틀림없이 소설의 아이디어일 거예요.”
“틀림없이 부군의 글씨입니까?”
콜롬보가 내미는 종이성냥을 죠안나는 받아서 살펴보았다.
“틀림없어요, 경감님. 캔이 범인이라면 왜 그 여자마저 죽였을까요?”
“라 상카 부인 말이요?”
“예.”
“이건 말하자면 추측이지만 말이죠. 프랭클린은 라 상카 부인한테 돈 때문에 협박을 받았던 게 아닐까요.
거기서 부인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는 아마 바깥에 있는 차에 부군이 타고 있었겠죠. 무언가 핑계를 만들어서 가게에는 들어오지 못하게 했겠지만 그것을 그녀가 봐 버렸단 말이에요. 그래서…”
“억측도 작작하시죠. 증거가 없지 않아요? 가장 중요한 라 상카 부인도 죽어 버렸고.”
“아니, 근거는 있어요. 어느 정도는…”
콜롬보는 싱긋 웃으면서,
“프랭클린의 은행구좌를 잠깐 조사해 보았거든요. 그 친구 어제 1만 5천 달러를 인출했는데, 오늘 또 전액을 그대로 도로 갖다 넣었어요. 이상하지 않아요? 보통 그런 일 합니까?”
확실히 이상한 일이라고 죠안나 페리스는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까 이상한 일은 그 밖에도 여러 가지 있는 것 같았다.
짐이 독립한다고 하자 그렇게도 미칠 듯이 성을 내던 그가 갑자기 손바닥을 뒤집듯이 화해했다는 것도 그렇다.
그때는 뭐니 뭐니 해도 10년이나 같이 일해 온 두 사람의 불화가 걱정이 돼서 그 말을 듣자 그저 그만 잘 되었다 싶었을 뿐이었지만. 그리고 그 사건이 나기 전에 그로부터 걸려온 전화도 그랬었다.
무슨 일이 있으면 별장으로 전화해 달라는 말 같은 것을 분명히 다짐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도 일부러 그런 것 같았다.
그뿐 아니라 그녀는 10년간을 상대해 오면서도 프랭클린이 조금도 친근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사실도 생각이 났다.
“알겠어요.”
이윽고 죠안나 페리스가 입을 열었다.
그녀는 무거운 하나의 응어리가 머리 속에서 사라지도 그것과는 다른 무거운 응어리가 새로 생겨난 것처럼 생각되었다.
“선생님 말씀, 완전히 믿어 버린 것은 아니지만 협력은 하겠어요. 어떻게 하면 되죠?”
콜롬보는 그제야 안심이 된다는 듯이 자세를 고쳐 앉아 그녀를 보았다.
“실은 그것이 문제입니다. 상황증거로서는 상당히 유력한 것이 갖추어져 있지만 하나 더 아주 결정적인 증거가 부족한 것은 부인이 말씀하시는 바와 같습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아직 체포는 무리예요.”
이마에 손을 짚으면서 콜롬보가 말했다.
“그야 물론이죠.”
그 끈덕지고 약삭빠른 캔인 만큼 콜롬보 씨에겐 안됐지만 이 정도로서는 아직도 승산이 없다고 죠안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이대로 버려둘 순 없어요. 그래서 찾아 뵌 겁니다. 이제 마지막 믿을 것은 부인뿐입니다.”
콜롬보는 담배를 쥔 채로 그녀를 가리켰다.
“저요?”
“예, 그렇습니다. 두 사람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부인뿐입니다. 그러니 무엇이든지 좋으니까 말씀해 주세요. 아무것이라도 좋습니다. 그 속에서 힌트를 찾아내야 합니다.”
죠안나는 콜롬보의 이상하리만큼 열중하는 모습과 그 방법이 우스웠다. 동기도 방법도 알고 있고 이제 남은 것은 물적 증거뿐이라는데, 도대체 나 같은 것한테서 얘기를 듣고 어쩌자는 걸까.
하기야 이 분은 다른 형사하고는 약간 다른 것 같으니, 이것이 콜롬보씨의 독특한 방법일지도 모르지.
“마치 정신과의사 같은 말투시군요.”
그녀는 사건이 난 이후 처음으로 농담을 했다. 콜롬보가 즐거운 듯이 웃어댔다.
“나, 소파에 눕지 않아도 되는지 모르겠네요. 그것을 자유 연상법이라고 한다죠.”
“놀리지 마세요. 저로서는 진심이니까요.”
“그럼, 커피라도 준비할까요?”
“그것 참 듣던 중 반가운 소립니다.”
“무슨 얘기부터 시작할까요?”
커피잔을 테이블 위에 놓고 죠안나 페리스가 물었다.
“무슨 얘기든지. 부인께서 얘기하기 쉬운 데서부터…”
거실 구석에 놓인 작은 테이블 위에서 사진틀 속의 짐 페리스가 미소를 띠고 있다. 곁에 놓인 꽃병에 꽂혀 있는 노란 꽃은 뭐라고 했더라?
이름은 생각나지 않지만 짐이 좋아하던 꽃이었지. 그녀는 기억을 차츰 옛날로 돌려놓으려고 애썼다.
“저, 결혼하기 전에는 템플 스트리트에 있는 타이프라이터 가게에 근무하고 있었어요. 어느 날 두 사람이 같이 물건을 사러 왔지요. 짐은 타이프 용지를, 캔은 타이프라이터 리본을 사갔어요.”
거기까지 말하고 나서 죠안나는 콜롬보를 보면서, “도움이 되세요?” 하고 말했다.
“상관없으니까 계속하세요.”
콜롬보가 부드럽게 재촉했다.
“저는 곧바로 짐이 마음에 들었어요. 하지만 결혼하기 전까지는 창작이란 게 그렇게도 어려운 일인 줄은 몰랐어요. 밤중에 일어나서 책상 앞에 앉기도 해서 처음에는 그야말로 깜짝 놀랐죠. 그러나 캔은 언제나 한가로운 듯이 보였어요.”
“아, 잠깐만!”
콜롬보는 그녀를 가볍게 가로막았다.
“부인이 페리스 씨하고 결혼했을 무렵 두 사람은 벌써 유명한 작가였습니까?”
“그게 그렇지 않았어요. 짐과 캔은 두 사람 다 유니버셜 촬영소의 각본부에 근무하고 있었어요. 제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짐은 소설을 쓰려고 무척 애를 쓰고 있었어요.”
“각본부라면… 영화 대본을 쓰고 있었단 말입니까?”
“그랬었다면 소설을 쓰겠다는 생각 같은 건 하지 않았을 게 아닐까요. 짐의 이야기로는 이름 있는 시나리오 작가에게 각본을 쓰게 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로 물색하는 그런 일뿐이었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시나리오를 쓰고 싶어서 영화계에 들어갔지만, 차츰 그 내막을 알고 나서부턴 싫어졌던가 봐요. 하기야 같은 일을 하고 있어도 캔 쪽은 프로듀서가 되고 싶어 했었다니까 그렇기까지 일에 열을 내지는 않았던 모양이지만요.”
“프로듀서를?”
“예. 처음에 그는 감독이 되고 싶어 했대요. 그러나 할리우드에서는 감독보다 프로듀서가 더 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갑자기 변해 버렸지요. 휴즈나 자나크 같은 거물이 되고 싶다고 항상 말하곤 했어요.”
“그러던 그가 그럼, 왜 영화계를 그만 둘 생각을 했을까요?”
“짐한테 들은 얘기지만 직접적으로는 각본부의 부장하고 싸운 것이 원인이었대요. 마침 어떤 각본을 캔이 보고, 이것은 이렇게 하는 편이 효과가 있을 거라고 부장에게 말했더니 그 사람이 건방진 소리 말라면서 벌컥 화를 냈대요. 그러고 나서 얼마를 있다가 완성된 영화를 봤더니 캔이 말한 대로 고쳐져 있어서 이번에는 캔 쪽이 화를 내버려서… 뭐라는 사립탐정물이었는데, 영화는 대성공이었죠.”
“알겠어요. 그런 재능이 있었구먼요.”
“글쎄요. 캔이 자기 자신을 그렇게 말하고 있을 뿐이니까요. 하지만 그것이 표면적인 원인이었어요.”
“그렇다면…”
“그 무렵 짐은 조금씩 소설을 쓰기 시작하고 있었어요. 그것을 캔에게 보였더니 재미가 없다고 그만 두라고 하더래요.”
“그것이 멜빌 부인 시리즈였나요?”
“그게 아니라 할리우드를 무대로 한 본격소설이었어요. 짐은 자신이 있었으므로 그 말을 듣자 벌컥 화를 냈다는 거예요.
그랬더니 캔이 그걸 로는 팔리지 않으니까 좀 더 대중성이 있는 미스터리를 써보라고 했대요. 그래서 이런 주인공은 어떻겠느냐고 들고 나온 것이 멜빌 부인…”
“허허…”
콜롬보가 감탄한 듯한 소리를 냈다.
“멜빌 부인은 캔 프랭클린이 생각해낸 건가요. 난 또 페리스씨 것인 줄 알았죠.”
“그래요. 짐은 처음에는 별로 마음이 내키지 않은 것 같았지만 빨리 작가로서 자립해야겠다고 생각해서 해보기로 했던 거예요. 두 사람이 여러 가지로 토론을 하고 나서 짐은 쓰고, 그것을 가지고 캔이 판매에 나섰던 거죠.
물론 처음이니까 하드커버가 아니라 페이퍼 북이었지만, 그것이 그야말로 크게 히트를 쳐서 두 번째 작품부터는 벌써 하드커버로 출판되었고 처녀작도 곧 하드커버로 나왔죠.”
“알겠어요. 그럼 프랭클린의 자랑이 대단했겠는데?”
“그야 물론이죠. 하지만 처음에는 분명히 그의 힘으로 팔렸고 또 멜빌 부인의 매력도 컸었음을 인정해요. 그러나 그 다음부터는 캔은 모든 것을 짐에게만 떠맡겼어요. 결국 끙끙거리면서 일을 하고 있는 것은 그이 뿐이었죠. 그건 누구보다도 제가 가장 잘 알고 있어요.”
“그렇다면 트릭 같은 것은…”
“물론 그이가 생각해 냈죠. 캔은 그런 것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의견만 말했을 뿐이에요. 그러던 중 다섯 번째 작품이 미국 탐정작가상을 수상할 무렵에 이르러서는 캔이 작품의 내용적인 일에 관해서는 사실상 아무것도 하는 게 없게 됐어요. 그래도 짐은 쉴 새 없이 부지런히 쓰고 있었지만…”
“프랭클린은 어떤 부분에 대해 의견을 말했습니까?”
“글쎄요.”
죠안나 페리스는 한참 동안 생각했다.
“주로 팔리느냐, 팔리지 않느냐 하는 문제였지만…, 역시 주인공인 멜빌 부인의 묘사에 관해서였을지도 몰라요.”
“그야 프랭클린의 아이디어였으니까요. 의견을 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단순히 그것만은 아니었던 모양이에요.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캔은 멜빌 부인의 이미지를 그의 어머니로부터 따 왔었다나 봐요.”
“하하, 그래서…”
콜롬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짐의 이미지는 조금 달랐지요.”
“어떻게요?”
“짐은 어느 쪽이냐 하면 멜빌 부인을 얼굴이 붕실 붕실한 느낌의 가정적인 중년부인으로서 부드러운 속에 예지의 번쩍임이 숨겨져 있는 그런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캔은 그렇지가 않았어요. 마른 체형에 여성답지 않은 엄격한 데가 있는 초로의 부인으로서 얼굴만 보아도 교양이 있어 뵈는 그런 사람이었어요. 그렇지만 결국은 캔이 오리지날이니까 그이도 그의 말을 따르기는 했지만요.
영화화 얘기가 나왔을 때 프로듀서는 안젤라 란즈베리나 쉐리 윈터즈가 제격이라고 해서 짐이 무척 기뻐했었어요. 영화는 안젤라 주연으로 제작되었죠. 그때의 초상화, 사무실에서 보셨죠? 짐이 무척 마음에 들어 했던 거예요.”
“예, 보았습니다. 좋은 인상이더군요. 그런데 프랭클린은 그대 어땠습니까?”
“한동안 뾰루퉁해 있었죠. 자기가 주선해서 결실을 보게 된 일이라 주인공은 아그네스 무어여야 한다고 주장했었지만, 그래서는 팔리지 않는다고 프로듀서가 반대했었어요. 그게 이상하잖아요? 여느 때 같으면 팔리는 일에 신경을 쓰는 사람인데…”
죠안나는 이상해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도 어머니가 좋았을까요.”
“안젤라나 쉐리 윈터즈로서는 교양을 느낄 수가 없다, 명탐정으로서의 날카로운 데가 없다고도 그이하고 논의하고 있었어요. 영화는 그저 그럭저럭한 성적이었는데, 캔의 말로는 자기 말만 들었더라면 더 크게 히트했을 걸 그랬다고 했어요.”
“아그네스 무어 헤드라면, 그 무서운 인상의 아주머니 말이죠? 그걸로 히트할 수 있을까?”
“그런 일들로 해서 그이도 자기만의 작품을 쓸 자신도 생기게 됐고, 또 남이 쓰지 않았던 트릭에만 열중하는 데도 싫증이 나게 됐던 모양이에요. 물론 멜빌 부인은 여전히 베스트셀러였고, 그것은 그것대로 근사한 일이었지만, 역시 작가란 것은 자기에게 충실하게 일을 해야만 하는 것이라고 말하기 시작해서…
처음에 캔은 농담으로 생각했었나봐요. 그러다가 그이가 본심이라는 것을 알자 노골적으로 넌 네 혼자의 힘만으로는 해나가지 못한다고 말하기 시작한 거예요.”
“사실은 자기도 혼자는 해나가지 못하면서… 틀림없이 부인께서는 전에 프랭클린은 단 한 줄도 글을 쓴 일이 없다고 하셨잖아요?”
“그래요. 틀림없이 문장은 한 줄도 쓰지 않았어요. 그것이 캔의 콤플렉스여서, 내심으로는 그이를 싫어했었어요. 그러나 이용하는 재주는 비상했고, 그이는 그리 활동적인 편이 아니었으므로 그것으로 어느 정도 잘 돼 갔었죠. 자기가 갖고 있지 못한 부분을 서로 메꿔 가고 있었던 게 아닌지 모르겠어요.”
“그렇다면 부군께서는 왜 새 작품도 공동으로 하려고 하지 않았을까요.”
“그것이 설명하기가 좀 어색한데요. 뭐라고 하면 좋을까. 다시 말해서 짐은 진짜로 한번 해봐야겠다고 생각한 거예요.
아무리 그런 마음이 들긴 했지만 그이는 캔의 실력을 인정하고 있었고, 팔아주는 데 대해서는 감사하고 있었죠.
그런데 가장 중요한 주인공에 있어서는, 짐은 마음에 들지 않는데도 캔이 하자는 대로 따라가기만 했었어요. 어쨌든 잘 팔렸으니까 무방했었을 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멜빌 부인의 성격창조에는 짐의 본심이 들어 있지 않았던 거예요.
그래서 작가로서 정말로 정성을 들여서 일을 하기 위해서는 역시 혼자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거죠.
별로 활동적이 아니던 성격도 조금씩이긴 하지만 자신의 힘으로 바꿔 보려고 노력하고 있었어요. 좋아하지 않던 자료수집문제만 해도 최근에는 자진해서 기꺼이 하고 있는 듯 했어요.”
“아, 그것이 예의 신디케이트 폭로라는 것이구먼요.”
콜롬보가 고개를 끄덕이자 죠안나는 이상하다는 듯한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저로서는 잘 모르는 일이예요. 새로운 일의 내용에 대해서는 주인은 이상하리만치 저에게는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어요.
아마 다 써놓고 나서 기쁘게 해 줄 모양이었겠지만, 저로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이 신디케이트의 내막 같은 것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이는 신디케이트라던가 마피아 같은 그런 실제적이고 조직적인 폭력단체에는 전혀 흥미를 갖고 있지 않았죠. 저는 오히려 옛날에 쓰고 있던 할리우드 이야기를 다시 한번 쓰려고 그러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었죠.”
“그것 가지고는 팔리지 않는다고 프랭클린이 말했던 그 작품 말이군요.”
“맞았어요. 그이는 가끔 가다가 그 테마에는 아직도 미련이 남아있는 듯한 말을 해왔거든요…”
“정말 작가란 것도 꽤나 끈덕지네요. 안심했어요. 나도 사람들한테서 그런 말을 자주 듣거든요. 너무 끈덕지다고.
하지만 틀렸어요. 아무리 그런 말을 들어도 한번 머리 속에 달라붙은 것은 여하튼 말끔히 씻어내지 않고는 마음이 걸려서 견딜 수가 없는 걸요.”
콜롬보는 한숨을 쉬고는 벌써 식어 버렸을 커피를 훌쩍 마셨다.
“짐도 그랬어요. 한번 마음에 떠오른 일은 당장 소용이 없더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필요할 때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죠. 그래서 무슨 일이 있으면 반드시 메모해 두면서, 나중에 갑자기 다른 것과 연결이 될 때를 위해 준비해 두는 것이라고 했어요.
그런데 캔은 정반대였지요. 그 사람은 쓸모없는 것은 무엇이든 곧 잊어버리자는 주의여서 어쨌든 그날그날이 중요한, 당일치기였어요.
그래서 두 사람의 작품만 해도 캔은 그다지 의미 같은 건 생각하지 않고 그저 많은 돈을 벌어주는 데에만 가치를 두고 있었을 뿐이죠.
그이의 애씀이나 노력 같은 건 조금도 이해하고 있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렇다면 왜 프랭클린은 자기가 쓰지 못하는 데 대한 콤플렉스를 느끼고 있었을까요. 그 점을 모르겠는데…”
“저도 잘 모르겠어요. 단순한 억지 같기도 하구요…”
“글을 쓰지 못한다는 콤플렉스가 아니라, 페리스씨가 원래 싫은데다가 그 사람이 글을 쓰는 재주를 가지고 있으니까 더욱 더 싫어지게 되었다든지…”
“글쎄요. 그이도 그와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자기를 보는 캔의 눈초리는 가끔 가다가 이해하기 곤란한 증오의 빛 같은 게 있다구요.”
“우리 집사람이 자주 그런 말을 합디다만, 좋아한다는 심리 속에는 싫어한다는 심리도 함께 들어있어서 이쪽으로 갔다가 저쪽으로 갔다가 하는 거라구요… 그걸 뭐라고 한다더라?”
“이중인격이란 말이죠.”
“그래그래, 그거예요. 우리 집사람, 책을 많이 읽으니까 여러 가지 아는 게 많아서 귀찮아 죽겠어요. 당신도 책 좀 읽어야 한다고 잔소리가 심하거든요. 그래서 전번에 프랭클린 씨로부터 부군이 쓰신 책을 빌어서 읽었는데, 정말 재미있던데요. 범인은 하나도 알아 맞추지 못했지만…”
죠안나 페리스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콜롬보의 야단스런 몸놀림을 보고 있더니 갑자기 무언가 생각이 난 듯이
“아 참!”
하고 말했다.
“지금 생각이 난 건데, 분명히 캔이 이런 말을 했던 것 같아요. 우리 그이가 어딘지 모르게 자기 아버지를 닮았다고요…”
“그랬어요?”
콜롬보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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