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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디에이고 지구의 이급 형사인 제리·C·타이난은 라 상카 잡화점의 처마 밑에 서서 멍청하게 호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눈 아래 펼쳐진 머레이호의 수면이 쾌적한 잠 길로 유혹하듯이 춤추고 있었다.

사실 그는 무척 졸렸다. 보나마나 단순한 변사가 틀림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런데도 새벽부터 두들겨 깨워서는 있지도 않은 살인의 냄새를 끙끙거리면서 맡고 다녀야만 했다. 형사생활 3년째의 제리·C·타이난은 지금 누구나가 체험하는 직업적인 권태기, 바로 그 절정에 있었다.

그는 할 일 없이 시선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천천히 이동시켰다. 안온한 푸르름의 세계가 펼쳐져 있고, 한 여인의 죽음은 그 자연의 조그만 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그 푸르름 속에서 무언가 쓰레기와 같은 것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윽고 그것이 자그마한 한 대의 푸조의 모습으로 변해서 그의 눈앞에 멈췄다. 먼지투성이여서 본바탕의 색깔조차 여간해서는 판별할 수 없는, 깜짝 놀랄 만한 고물 차였다.

아연실색해서 멍해진 타이난의 얼굴은 차 안에서 나타난 인물 때문에 더욱 멍청해졌다. 낡아빠진 레인코트를 후줄그레하게 어깨에 늘어뜨린, 사팔뜨기의 조그만 사나이가 굴러 떨어지듯이 차에서 나와 타이난을 보자 슬쩍 웃으며 한 손을 들어 보이는 것이었다.

뭐야, 이 녀석은?

사나이는 레인코트에 두 손을 찔러 넣고 싱글벙글 웃으면서 가게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타이난은 황급히 그 앞을 가로막고 말했다.

“신문사요?”

“아닙니다. 경찰이요.”

사나이는 대답하고 레인코트 밑에서 신분증명서를 꺼내어 타이난에게 들이댔다.

“로스앤젤레스의 콜롬보입니다. 콜롬보 경감…”

형사라고? 아니 그것보다 지금 그가 뭐랬지? 분명히 경감이라고 했겠다. 그것도 어느 촌구석이 아니라 로스앤젤레스의…

제리·C·타이난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콜롬보를 빤히 바라보았다.

“로스앤젤레스라고요?”

“예.”

콜롬보가 타이난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수사관계로 오셨습니까?”

“관할은 다르지만 담당한 사건과 관련이 있을 것 같아서.”

콜롬보는 웃는 얼굴로 가게 안을 가리켰다.

“좀 들어가 볼 수 없을까요?”

“들어가 보시죠. 피차일반인 걸요.”

제리·C·타이난은 뭐가 뭔지 잘 모르면서도 그렇게 대답했다.

로스앤젤레스의 사건과 이 중년부인의 변사사건이 도대체 어떤 관계가 있다는 걸까. 그런 정보 같은 건 아직 들어본 일도 없거니와 로스앤젤레스에서 경감이 출장 온다는 일에 대해서도 아무런 연락을 받은 바가 없었다. 제리·C·타이난은 다시 한번 이 작은 사나이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정말로 경감일까, 하고 그는 의심이 들었다.

“당신, 이름이 뭐지?”

콜롬보가 가게 안으로 걸어 들어가면서 타이난에게 물었다.

“이급 형사 제리·C·타이난입니다. 동료들이 제이시라고 부릅니다만.”

“O·K, 제이시! 미안하지만 집안을 좀 안내해 주게나.”

하지만 콜롬보는 조금도 미안한 표정이 아니었다.

“머리에 외상이 있다고 하지요?”

신문기자 하나가 경관에게 묻고 있었다.

“누구한테 들었소?”

뒤쪽의 키가 큰 경관이 고참을 지르듯이 말했다.

“좀 전에 브라운 선생이 그러지 않았습니까.”

“아, 틀림없이 외상은 있어. 아마 배가 뒤집어질 때에 어딘가에 머리를 부딪쳤겠지. 아, 여보시오, 여보시오!”

경관은 그의 턱밑을 지나가서 가게 안쪽으로 들어가려는 콜롬보를 보고 말했다.

“그쪽은 출입금지야.”

“아, 저 말이요…”

콜롬보가 또 신분증을 꺼내려고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이분은 콜롬보 경감님이셔, 로이. 로스앤젤레스 경찰의…”

제이시는 멍해서 입을 떡 벌리고 있는 경관에게 윙크해 보였다.

“그 때문에 의식을 잃었나요?”

신문기자가 물었다. 경관은 자꾸만 고개를 흔들어대면서 그 물음에 또 대답하기 시작했다.

“검시결과가 나오기까지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소. 나는 전문가가 아니거든.”

그렇게 말하면서 경관은 콜롬보 쪽을 힐끗 보았다.

콜롬보는 갖가지 색깔의 알사탕이 들어 있는 커다란 유리병 뚜껑을 벗기더니 손을 집어넣어 한 개를 꺼내 들고 날름 입안으로 털어 넣었다.

경관은 또 고개를 흔들었다.

“물을 많이 먹었습니까?”

기자가 물었다.

“헤엄도 치지 못했나요?”

다른 기자가 물었다.

“그런 거 알게 뭐야. 내가 죽은 사람의 영감이라도 되는 줄 아시오?”

경감이 소리쳤다.

“가족은?”

“없는 모양이야. 줄곧 혼자 살았던가 봐…”

“보트는 어떻습니까?”

“어떻다니, 무슨 소리야?”

“자기 겁니까? 아니면 빌린 겁니까?”

“자기 것은 아닌가 봐. 그녀의 것은 선창에 매여 있었거든.”

“그거 이상하다. 왜 자기 것을 쓰지 않았을까.”

“뭐 별다른 이유는 없을 거야. 문득 생각이 나서 타 보았다든지…”

경관은 별로 흥미 없다는 투로 말했다.

 

 

 

콜롬보는 제이시를 데리고 카운터 뒤를 돌아가게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는 먼저 변소 옆의 벽에 설치된 공중전화 앞에 서서 가슴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더니 한참 동안 전화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여기저기 몸의 구석구석을 뒤지더니 제이시 쪽을 보고 물었다.

“성냥 없소?”

제이시는 갑작스런 말에 약간 당황해서 콜롬보와 마찬가지로 온 몸을 뒤져보고는 그러고 나서야 겨우 알아차리고 말했다.

“어, 저는 담배를 피우지 않기 때문에…”

그랬더니 콜롬보는 아쉬운 듯한 표정으로 입에 물었던 담배를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고, 더 안쪽에 있는 라 상카 부인의 거실로 들어갔다.

콜롬보는 방 한가운데 버티고 서서 머리를 긁으면서 우선 주위를 한 바퀴 빙 둘러보았다. 그리고 나서 창가에 놓여 있는 테이블 쪽으로 가서 테이블 크로스에 얼굴을 갖다 대고 열심히 관찰을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약간 사팔뜨기인 콜롬보의 눈알이 더욱 가운데로 몰려 제이시는 웃음이 터지려는 것을 간신히 참고 있었다.

이윽고 콜롬보는 커튼 한 장으로 구분되어 있을 뿐인 부엌으로 가서 여기저기를 열었다 닫았다 하고 있더니 한참 뒤에 다시 거실의 테이블로 되돌아왔다. 이번에는 테이블 밑을 들여다보고 무언가를 찾고 있는 것 같았다. 제이시도 들여다보았지만 별로 이렇다 할 물건은 없는 것 같았다.

콜롬보는 제이시의 존재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는 듯 다음에는 침대 위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다시 침대 밑으로 기어들어가더니 한숨을 쉬면서 다시 기어 나왔다. 머리를 만지고 있는 것을 보면 무엇인가에 부딪혔던 모양이다. 제이시는 또 웃음이 터져 나오려고 하는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콜롬보는 이번에는 침대 위에 무릎을 꿇고 머리맡의 책꽂이에서 하드 카버로 된 한 권의 책을 들고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아하, 하고 감탄한 듯한 소리를 냈다.

“나의 릴리에, 애정을 담아서…라.”

그는 혼잣말처럼 말하고선 머리를 벅벅 긁었다.

도대체 무엇을 찾고 있는 것일까.

“이봐, 이 근방에서 전화를 걸 수 있는 곳이라곤 역시 여기밖엔 없는가?”

“예. 어쨌든 별장 지니까요.”

제이시가 대답하자 콜롬보는 연신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그 책을 겨드랑이 끼더니 다시 방 안을 구석구석 살펴보기 시작했다. 어느 샌가 그의 입에는 불도 붙지 않은 담배가 물려 있었다.

“성냥이 없을까…”

농담하지 말아요, 제이시는 생각했다. 무엇을 찾고 있는가 했더니 성냥이라니…

“경감님, 누구한테 가서 빌려올까요?”

제이시가 선심을 써서 그렇게 말하자 콜롬보는 담배를 뽑아 손에 들고 싱글벙글 웃었다.

“그래? 심부름시켜 미안하군.”

“원 천만의 말씀을!”

제리·C·타이난은 더 이상의 시중은 질색이라는 표정을 노골적으로 나타내면서 가게 쪽으로 되돌아갔다.

 

 

 

“낚시하러 갔었던가요?”

신문기자가 아직도 끈덕지게 경관에게 질문하고 있었다.

“그랬으리라고 짐작은 가지만, 낚싯대나 종다래끼는 아직까지 발견된 게 없어요. 어쨌든 배 위에서 갑자기 현기증이 났거나 심장마비라도 일으켰겠지요.”

경관은 귀찮은 듯이 아무렇게나 대답하고 있었다.

“그럼 역시 변산가?”

“이건 나 개인의 추측이야. 공식발표라도 생각하면 안돼요.”

“술은 마시지 않았던가요?”

“모르겠는 걸? 그런 건 해부해 봐야 알 거 아냐?”

“평소 건강했나요?”

“이봐요. 아직은 사고가 난 직후인 만큼 우리도 아무것도 아는 게 없어. 앞으로 한 시간쯤 뒤에 서(暑)로 와주시오.”

“한 시간 뒤라고요?”

“어떡하지?”

“석간에야 쓸 수 있겠지. 하지만 어찌됐든 별로 큰 사건은 아닌 것 같아.”

“변사라… 그것도 뭐, 자살 정도일 거야.”

“아 그러니까…”

경관이 말했다.

“자, 모두 돌아갑시다. 돌아가요.”

“로이…”

제이시가 경관의 어깨를 두들겼다.

“왜?”

경관이 이상하다는 듯한 얼굴로 제이시를 돌아다보았다.

“성냥 가진 거 있어?”

“자네 담배 피우기 시작했나?”

“아냐, 내가 아냐.”

제이시는 엄지손가락을 세워서 가게 안쪽을 가리키면서,

“저, 로스에서 온 선생님이…”

“아, 그래? 뭐야 저건?”

“글쎄, 나도 몰라.”

“흥, 로스도 요샌 형편 없구만!”

“글쎄 말이야.”

제이시는 그렇게 말하고 싱긋 웃더니 성냥을 받아 들고 안쪽으로 되돌아갔다.

거실로 돌아와 보니 콜롬보는 방구석에 놓인 나무상자 위에 한쪽 발을 올려놓고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어쩌다가 구두끈이 풀어진 모양으로 그는 겨드랑이의 책을 당장이라도 떨어뜨릴 것처럼 껴안고서 애를 쓰고 있었다.

맙소사, 샌디에이고가 아무리 시골이라지만 저런 괴짜형사는 없는데.

그는 동료들의 모습을 콜롬보와 비교해 보았다.

“경감님, 성냥입니다.”

“아, 고마워요…”

콜롬보는 성냥을 받아 들고 이번에는 무슨 일로 발바닥이 마음에 걸리는지 한쪽 발을 들고 들여다본다.

나무 상자 뒤에 있어서 지금까지 보이지 않았던 하얀 빛의 무엇인가가, 들어올린 콜롬보의 발의 반동으로 떼굴떼굴 굴러가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콜롬보는 그것을 집어 들고 요모조모로 살펴보았다.

“코르크…라.”

콜롬보는 중얼거리면서 그것을 레인코트의 주머니에 집어넣고 성냥을 켜 담배에 불을 붙이더니 별로 맛있어 보이지도 않게 연기를 뿜어내고는 또 중얼거렸다.

“코르크.”

그리고 옆에 끼었던 책을 빼내어 펼쳐들었다.

“살인처방전… 짐 페리스, 캔 프랭클린…”

콜롬보는 골똘히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자네 미스터리 좋아하나?”

콜롬보가 물었다.

“아니, 별로 읽지 않습니다.”

“왜? 나는 좋아하는데…”

“하지만 그 트릭이라는 것이 조작된 것 같아서 어쩐지 어색하잖아요. 실제의 살인범은 그렇게 오밀조밀하게 궁리를 하는 게 아니잖습니까.”

콜롬보는 또 진지한 자세로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경감님.”

제이시가 말했다.

“담당하고 계신다는 로스의 사건은 무엇입니까?”

“아, 그거. 자네도 알고 있을 걸? 미스터리 작가인 짐 페리스가 사살된 그 사건이야.”

“예, 알고 있습니다. 신디케이트의 소행이라는 소문이더군요.”

“바로 그거야…”

콜롬보는 머리를 주먹으로 톡톡 두들기면서,

“그렇다면야 나는 상관하지 않아도 돼요.”

“예?”

제이시가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어서 반문했다.

콜롬보는 열적은 듯이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도무지 신디케이트니 뭐니 하는 것은 내 성미에 맞지가 않는단 말일세.”

제이시의 눈이 턱없이 둥그렇게 커지고, 덩달아서 입마저 떡 벌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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