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함없는 우정을 위해서…”

캔 프랭클린은 샴페인 글라스를 릴리 라 상카를 향해서 쳐들었다.

“그리고 로맨스를 위해서…”

부인이 형식적으로 글라스를 들고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샌디에이고 머레이 호반의 이 라 상카 부인의 잡화점의 밤은 희미한 벌레소리가 들릴 뿐인 깊은 정적 속에 놓여 있었다.

그밖에 들리는 소리라고는 그녀가 걸어 놓은 싸구려 전축에서 흐르고 있는 아네마 꼬레의 멜로디뿐이었다.

“즐거운 이 밤을 위해서!”

프랭클린은 다시 한번 글라스를 치켜들고 단숨에 그것을 쭉 들이켰다.

혼자 사는 살림살이치고는 터무니없이 큰 그녀의 방에는 침대가 하나 쓸쓸하게 놓여 있는 외에는 이렇다 할 장식도 눈에 띄지 않았다. 겨우 자그마한 목재 장식장 속에 빛바랜 인형이 두서너 개 놓여 있을 뿐이었다.

지금 두 사람이 마주 않아 있는 흰 테이블보에는 꽤나 큰 얼룩이 두 개나 눈에 띈다. 몇 번이나 씻었는지 표면의 여기저기에 보풀이 일어나 있는 것도 어쩐지 쓸쓸한 느낌을 더해 주었다.

라 상카 부인은 다리를 바꾸어 꼬고 앉아서 프랭클린을 곁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빨간 바탕에 흰 점이 많이 찍힌 나이트가운 속에서 그녀의 넓적다리가 여봐란 듯이 드러났다. 프랭클린은 시선을 황급히 창 밖의 어둠으로 옮겼다. 달빛이 머레이호의 수면에 선명하게 반사해서 호반의 나무들을 거뭇거뭇하게 떠올려 놓고 있었다. 바람 한 점 없는 숨이 막힐 듯이 고요한 밤이었다.

“하지만 놀랐는데…”

프랭클린은 정적이 가져다주는 답답함과 라 상카 부인의 끈덕진 시선을 피하기 위해서 화제를 찾았다. 특히 그녀의 시선은 그의 온 몸에 철썩 들러붙듯이 쏠려 있어서 불쾌하기 짝이 없었던 것이었다.

조금만 참아라, 프랭클린. 조금만 있으면 이 말 대가리하고도 이별이다.

프랭클린은 그렇게 자신에게 타이름으로써 간신히 냉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비버리 힐즈를 출발할 때의 그 쾌감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없었다. 그것이 왜 그런지, 프랭클린으로서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으며 그는 그저 눈앞의 말 대가리가 밉상스럽기만 했다.

“왜요?”

그녀는 넓적다리를 더욱 드러내면서 말했다.

“당신은 요리 솜씨가 좋아. 어디서 배웠지?”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는 범행을 앞두고서도 그가 죽여야 할 사람이 만든 요리를 맛있다고 느낀 자신에 대해서 내심 놀라고 있었다.

“죽은 우리 그이가 하나 하나 가르쳐준 거예요. 솜씨 좋은 요리사였거든요. 재미없는 사람이었지만 그것 하나는 취할 만했죠.”

“제자도 똑똑했으니까 잘 배웠겠지. 좌우간 잘 먹었어요.”

“정말 고마워요.”

라 상카 부인은 기쁜 듯이 웃었다.

프랭클린은 그녀를 바라보면서 언제 실행하면 좋을까를 생각하고 있었다. 어디서라는 문제는 이미 생각되어 있었지만 언제 행할 것이냐는 그녀의 태도 여하에 달려 있었다. 어떻든 눈치를 채고 떠들어대기라도 하는 날에는 곤란하다. 될 수 있는 대로 힘이 들지 않는 방법으로 해치워야겠다고 프랭클린은 생각했다.

“이봐요, 좀 따라 주세요.”

라 상카 부인이 빈 잔을 내밀고 있었다. 슬리퍼를 벗어 버린 그녀의 맨발이 테이블 밑에서 그의 다리를 감더니 그것이 차츰 무릎 쪽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아, 내가 정신이 나갔었군.”

프랭클린은 술병을 집어 들어 보고 그것이 벌써 비어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한 병 더 따지.”

프랭클린이 일어서자 그녀의 뜨거운 시선이 그의 시선에 매달릴 듯이 달라붙었다.

“더 마시게요?”

“뭐. 그래도 상관없잖아. 밤은 아직도 긴데.”

그렇게 말하면서 프랭클린은 남은 술병을 집어 들었다.

“자, 해피 뉴 이어!”

병마개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날아가고 흰 거품이 뿜어 나왔다.

“자!”

프랭클린은 라 상카 부인의 글라스에 샴페인을 가득 채웠다. 그녀는 조금 입에 댔다.

“맛있어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의미 있는 듯이 프랭클린을 보고,

“하지만 너무 기분 좋아하다간 취해 버릴 텐데…”

“상관없잖아.”

프랭클린이 말하자 라 상카 부인은 글라스를 가만히 응시하면서,

“어디까지 당신을 신용해야 될지 모르겠네요.” 하고 말했다.

이 여자도 전혀 쑥맥은 아니구먼, 하고 프랭클린은 생각했다. 어떡한다, 프랭클린? 여기를 어떻게 받아넘기지?

“…섭섭한 말도 다 하는구먼. 그럼 나는 갈 테니까 혼자서 천천히 하시구려.”

예상했던 대로, 일어서려는 그를 라 상카 부인이 손을 뻗쳐서 만류했다.

“잠깐만요.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에요. 이대로 가시면 어떻게 하라는 거죠?”

그녀는 그렇게 말하더니 테이블 저쪽에서 요란스럽게 루즈를 칠한 커다란 입을 프랭클린을 향해 내밀었다. 프랭클린으로서는 가능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하고 싶지 않은 행위였다. 그러나 이번 경우만은 어떻게 해서든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가장 중요한 찬스를 잡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번뿐이다. 이번뿐이고 그 다음에는 네 생각대로 해라, 프랭클린.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통나무 등걸 같은 거라고 생각하고 하면 되는 거야.

프랭클린은 그녀의 입술을 향해 자기 것을 접근해 갔다. 그녀의 혀가 그의 입안으로 뚫고 들어오자 자칫하면 구역질을 할 뻔했다.

“좋은 생각이 났어. 이럼 어떨까?”

그녀를 제자리로 밀어 놓으면서 프랭클린이 말했다.

“어떻게요?”

황홀감에 젖은 눈으로 프랭클린은 지켜보면서 라 상카 부인이 물었다.

“오늘 밤은 달도 좋으니, 어때, 호수로 보트를 타고 나가 헤엄이라도 쳐보는 게.”

“멋있어요.”

그녀가 말했다. 그러나 어딘지 내키지 않는 말투였다. 쉽사리 속아 넘어가지 않으리라는 것은 프랭클린 자신도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지? 갈까?”

“그만 둘래요.”

“왜?”

그녀는 살피듯이 프랭클린을 빤히 보고 있더니 이윽고 대답했다.

“당신을 신용하고 있어요. 정말이에요, 하지만… 사람이란 변덕스럽잖아요, 누구든 간에. 더군다나 주위에 사람이 없는 곳에 가면 마음이 변하기 쉬울 거예요. 당신이 갑자기 돈이 아까워지게 되면 야단이잖아요.”

뭐, 괜찮아. 달리 방법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하여간 저 여자는 돈이 목적이야. 비유만 맞춰주다 보면 찬스는 얼마든지 생길 것이다.

“멸시를 당한 셈이군. 나를 그런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는 거요?”

“하지만 당신은 파트너를 죽이지 않았어요? 돈 때문에?” 

“분명히 말해서 그것도 있지. 하지만 그것뿐이 아냐. 뭐라고 하면 좋을까? 어쨌든 나의 명예에 관한 문제였어. 당신에겐 말해도 모를 테니까 여러 가지 긴 설명은 하고 싶지 않아. 자, 이야기는 이제 그만하자고.”

“그래요. 애써서 마련한 밤이 아주 엉망이 되겠어요.”

라 상카 부인은 테이블 위로 손을 뻗쳐서 프랭클린의 손을 잡았다.

“정직하게 말하면 말야. 나는 당신에게 감사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훨씬 더 많은 사례를 해도 좋다고 생각하고 있어. 나에게는 1만 5천 달러쯤이야 놀음으로 하룻밤 잃었다고 생각하면 되는 돈이거든.”

“하지만 저에게는 굉장한 금액이에요. 우리 그이는 사람만 좋았을 뿐이지 아무것도 남겨두고 간 것도 없고. 죽은 후에는 이렇게 가게나 하면서 먹고 사는 게 고작이죠. 나도 아직 젊은 나이니까 여러 가지 하고 싶은 일도 많은 대두요.”

“잘 알겠어. 그러니까 당신은 신경 쓸 거 없대두. 나에 대한 당신의 호의를 나는 믿고 있으니까.”

그렇게 말하면서 이번에는 프랭클린이 그녀의 손을 잡아 주자 라 상카 부인은 기쁜 듯이 웃었다.

“어떻든 간에 내가 당신을 믿고 있듯이 당신도 나를 믿어 줘야지. 한번 구경할래요?”

“예.”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눈을 반짝였다.

결국 이 여자도 이 세상의 모든 녀석들과 마찬가지로 돈으로 해결 지을 수 있으리라고 프랭클린은 생각했다. 돈만 줘버리면 그녀가 경찰에 신고할 턱도 없고, 따라서 그러한 의미에서라면 제2의 살인은 전혀 무의미한 것일지도 몰라.

그러나 캔 프랭클린으로 하여튼 제 2의 살인을 하도록 몰아세운 것은 이 릴리 라 상카 부인의 존재 자체였다. 그녀는 처음부터 이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될 인간벌레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는 자기의 분수도 모르고 이 캔 프랭클린을 원했기 때문에…

제 2의 희생자가 될 여인의 웃는 얼굴을 앞에 놓고 캔 프랭클린은 마음속으로 그렇게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

 

 

 

거실 겸 침실에 연이어서 조그만 부엌이 있었다. 캔 프랭클린이 가지고 온 서류가방을 집어들자 부엌으로 걸어가서 그곳에 있던 작은 테이블 위에 그것을 올려 놓았다. 그리고는 기대에 찬 표정으로 그를 지켜보고 있는 라 상카 부인을 불렀다.
일부러 이 장소에 가방을 놓은 것을 의심하지나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녀의 부풀 대로 부푼 기대 앞에서는 그것도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라 상카 부인은 처음으로 손에 쥐어보게 될 큰 돈에 가슴을 두근거리면서 프랭클린의 곁에 서서 테이블 위를 내려다보았다.
“자, 이거 모두 당신 꺼요.”
프랭클린의 말이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뚜껑이 힘차게 열리면서 100달러짜리 지폐다발이 시야를 가로막았다.
“어떡할 거야? 이 돈?”
프랭클린이 물었다. 그녀는 마치 홀린 듯이 지폐를 응시하면서,“모르겠어요…”하고 중얼거리더니 한 숨을 쉬었다.
“어차피 은행에 예금해야겠지만, 당분간은 가지고 있을래요. 한이 풀릴 때까지 손으로 만져보고 즐겨 볼 거예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조심조심 손을 뻗쳐서 돈다발에 손을 댔다. 프랭클린은 라 상카 부인의 어깨에 살짝 왼손을 얹고 돈다발 하나는 집어 들어서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조심하도록 해요. 나쁜 놈이 노릴지도 모르니까.”
“걱정마세요.”
라 상카 부인은 받아 쥔 돈다발에 못 견디겠다는 듯 입을 맞추더니 그것을 테이블 위에 놓고 이번에는 서류가방에서 한 개씩 차례대로 꺼내어 놓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미 새로 생긴 재산의 포로가 되어버린 상태였다. 프랭클린은 그것을 확인하자 그녀가 눈치채지 않도록 슬그머니 그녀 곁을 떠났다.
뒷걸음질로 거실로 돌아와 보니, 거기서는 라 상카 부인의 뒷모습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러한 구도를 만들기 위해서 프랭클린은 일부러 서류가방을 부엌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던 것이었다.
“릴리?”프랭클린은 그녀를 불러 보았다.
그녀는 예상했던 대로 돈다발을 세는 데 정신이 팔려서 그가 있는 쪽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어딘가 먼 곳으로 가보고 싶다고 생각 안 해?”
프랭클린은 조금 전에 비워 버린 샴페인의 술병을 슬며시 집어 들면서 말했다.
“좋지요. 호화선을 타고 세계일주 같은 거…”
프랭클린은 부엌에서 가만히 가져온 타월로 샴페인의 술병을 천천히 싸기 시작했다.
“세계일주 말이지. 그것도 좋지.”
맞장구를 치면서 프랭클린은 타월로 다 싸고 나서는 술병 모가지에 그것을 돌려 감고 그 위를 손을 돌려 단단히 거머쥐었다.
세계일주라, 라 상카 부인. 실은 그 보다도 훨씬 더 좋은 곳으로 곧바로 데려다 줄게. 당신에겐 가장 걸 맞는 곳이야. 당신 같은 여자라도 여러 가지로 돌봐주던 당신의 죽은 남편이 있는 곳 말이야. 당신은 그간 약간 주제파악을 하지 못했던 것을 더 이상 후회할 필요도 없게 돼. 조금만 있으면 만사가 잘 돼 갈 거야. 제발 부탁이야. 이쪽을 보지 말고 계속 꿈이나 꾸고 있으라고!
프랭클린은 손 하나를 뒤쪽으로 돌려서 술병을 더욱 단단히 거머쥐고는 부인 쪽으로 다가갔다.
“우리 그인 젊을 땐 상선의 승무원이었어요.”
라 상카 부인은 그러한 그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그저 기쁨에 넘쳐서 정신이 없었다. 그래, 그래. 그러고 있으라고, 라 상카 부인. 이쪽을 돌아보지 말아요. 조금만 참으면 돼요. 라 상카 부인의 뒤통수가 점점 프랭클린에게 접근해 온다.
“정말?”

프랭클린이 대답하면서 더욱 더 다가선다.
“그럼요. 그인 거기서 요리를 배웠던 거예요.”
프랭클린은 뒤에 감추고 있는 샴페인 병을 으스러질 듯이 거머쥐었다. 라 상카 부인이 입고 있는 나이트 가운의 화려한 빨간 점들이 그에게 도발하는 듯이 흔들렸다.
“이런 나를 보면 그이가 뭐라고 할까. 너무나도 고지식한 사람이었으니까…”
뒤통수는 바로 눈앞에 있었다. 프랭클린은 다시 한번 병을 고쳐 잡고 그것을 겨냥했다.
이쪽을 보면 못써요, 라 상카 부인.
“그야 틀림없이 실망하겠지.”

그렇게 말하면서 프랭클린은 술병을 번쩍 치켜들었다.
라 상카 부인이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았다. 흉기와 그 흉기에 대한 공포감이 거의 동시에 그녀에게 덤벼들었다. 둔탁한 소리를 내면서 타월에 싼 샴페인 병이 그녀의 이마를 향해 날아갔다.
다음 순간 라 상카 부인은 마치 풍선에 바람이 빠져나가듯 맥없이 바닥 위로 주저앉다시피 하면서 쓰러졌다. 프랭클린은 그러한 모든 움직임을 마치 슬로우 모션으로 촬영된 화면 속의 사건처럼 느끼고 있었다. 밖에서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가냘프게 벌레가 울고 있었다.
몸을 구부려 부인의 손목을 잡아 보았더니 아직도 맥이 뛰고 있었다. 이마의 상처도 거의 없고 모든 것이 계산대로였다. 그는 급히 서류가방 속에 그녀가 늘어 놓았던 돈다발을 도로 집어 넣고 뚜껑을 닫았다. 그리고 난 다음 둘이서 사용했던 식기를 싱크대에서 급히 씻어서 제자리에 갖다 놓았다. 그 외의 것에 대해서는 사전에 세심한 주의를 했기 때문에 지문이 남아 있을 턱이 없었다.
캔 프랭클린은 서류가방과 흉기로 사용했던 샴페인 술병과 또 하나의 술병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차가운 밤공기가 아무리 그렇지만 약간은 흥분된 피부에 닿아 살 것 같았다. 그는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바다내음이 스며있는 듯 신선했다.
갑자기 담배 생각이 났다. 그러나 작업 도중에 라 상카 부인이 되살아나기라도 한다면 일이 성가실 테니까 일단 참기로 했다. 프랭클린은 가게 앞에 세워둔 그의 메르세데스의 도어를 열어 서류가방과 두 개의 빈 샴페인 술병을 던져 넣고는 급히 방으로 되돌아왔다.
라 상카 부인이 나이트 가운을 맨 몸 위에 걸치고 기다리고 있으리라는 것은 익히 예상했던 터였다. 프랭클린은 옷장을 열고 그 안에서 비교적 손쉽게 입힐 수 있는 드레스를 골라냈다.
사고사(事故死)로 보이기 위해서는 나이트 가운을 입고 있어서는 곤란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의식을 잃고 있는 라 상카 부인의 나이트 가운을 벗겨서 옷장에 던져 넣고 꺼내온 드레스를 가까스로 입혔다.
여위어서 뼈만 앙상하게 남은 육체는 겉보기보다는 훨씬 무거웠다. 프랭클린은 어깨에 멘 라 상카 부인을 한쪽 손으로 누르고, 남은 한 손에는 찾아낸 그녀의 샌들을 들고 방안을 다시 한번 휘둘러보았다. 지금으로서는 빠뜨리거나 실수한 일이 없는 것 같았다.
그는 뒷문으로 나가서 자물쇠는 그대로 둔 채 문을 닫고 자동차로 돌아왔다. 프랭클린은 끙끙대며 라 상카 부인을 차의 조수석에 틀어박아 놓은 뒤 자기는 운전석에 올라탔다.
엔진소리가 깊은 고요를 깨뜨리고 벌레들을 놀라게 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프랭클린의 메르세데스는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고 천천히 호반으로 이어지는 지름길을 내려갔다. 조용한 머레이 호의 수면 위에 히끄무레한 빛이 떠돌고 있어 날이 밝기엔 아직도 시간이 멀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

 

 

 

호반으로부터 자그마한 나무로 된 선창이 툭 튀어 나와 있는 곳에 각양각색의 보트가 매여져 있었다. 이 머레이호에서는 홍송어가 잘 잡히기 때문에 근방에 사는 사람들이 주로 낚시를 즐기기 위해서 보트를 이용하고 있었다.

캔 프랭클린은 선창 바로 곁에 메르세데스를 바짝 붙여놓고 라 상카 부인을 어깨에 둘러멨다. 그리고는 될 수 있는 대로 작은 보트를 찾아내어 그녀를 거기에 뉘었다. 이어서 샌들과 두 개의 술병을 던져놓고 차로 돌아왔다.

그리고 나서 그는 양복저고리와 바지를 벗고 또 그 밑에 입고 있던 얇은 스웨터도 벗었다. 러닝셔츠 차림이 되었다. 아랫도리는 이미 수영팬티를 입고 있었다. 예상했던 대로 으스스 추웠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이것은 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신발과 양말을 벗고 보트에 올라탔다.

호면은 잔잔했고 달빛 탓인지 의외로 밝았다. 프랭클린이 보트를 젓기 시작하자 수면 위로 씨알 굵은 고기들이 뛰어 올랐다. 잠에서 놀라 깬 홍송어였다. 프랭클린은 천천히, 그리고 신중하게 노를 저어 호수의 중심으로 나아갔다.

5분 정도 저어가니 벌써 호수의 한가운데였다. 호반의 저 먼 곳에 드문드문 집이 있을 테지만 불이 켜져 있는 집은 거의 없었다. 프랭클린은 배 밑바닥에서 샴페인 병을 집어 들더니 그것을 물 속에 담가 물을 채웠다. 병은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금방 물이 가득 찼다. 그가 손을 떼자 그것은 곧바로 호수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그는 나머지 한 병마저 가라앉히고 라 상카 부인에게 샌들을 신겼다. 그녀는 아직도 완전히 의식불명인 것 같았다.

“나쁘게 생각하지 말아요, 라 상카 부인.”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배 바닥에 누워 있는 라 상카 부인의 몸체를 들어올렸다. 보트가 불안정하게 뒤뚱거리고 그런 소란에 놀란 고기가 또 튀어 올랐다. 거의 뒤집어질 듯이 배가 기울고 라 상카 부인의 몸통이 첨벙하는 물소리를 내면서 떨어지더니 이윽고 물 속으로 가라앉아 갔다.

떨어지는 순간 그녀가 몇 번 수족을 움직인 것처럼 보였지만 그것도 순간적인 일에 지나지 않았다. 보기 싫은 말 대가리는 의외로 빨리 시야에서 사라져갔다. 프랭클린은 그녀가 사라져간 수면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1분… 2분… 시간이 천천히 흘러갔다.

그녀가 떠올라올 기미는 전혀 없는 것 같았다. 그는 만약을 생각해서 다시 2-3분가량 기다려 보았다. 역시 마찬가지였다.

프랭클린은 보트 위에 올라섰다. 그리고 양 발을 벌리고 좌우의 뱃전을 각각 한 손으로 짚었다. 몸을 움직이니까 배가 기우뚱하고 흔들렸다. 그가 번갈아 가면서 발에 힘을 주어 보트를 좌우로 흔들었다. 보트는 점점 더 세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프랭클린은 더욱 강하게 오른쪽 왼쪽으로 번갈아 힘을 주었다. 보트는 뱃전이 수면에 닿을까 말까 할 정도로 흔들리더니 기어코 뒤집어지고 말았다. 다음 순간 프랭클린의 몸은 물 속에 있었다.

물은 얼듯이 차가왔다. 프랭클린은 헤엄을 치면서 현장의 상황을 확인하고 난 뒤 멋진 헤엄으로 멀리 저편의 언덕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어디선지 홍송어가 또 튀어 올랐다.

젖은 수영복을 입은 채 차를 몰아 프랭클린이 자기 별장으로 돌아왔을 때 시계 바늘은 벌써 새벽2시를 지나 있었다.

몸이 얼다시피 식어 있었으므로 그는 수용복과 셔츠를 벗어 던지고는 뜨거운 물로 샤워를 했다. 얼었던 몸이 점점 온기를 되찾으면서 그는 급격히 전신에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쾌감이기조차 했다.

목욕 가운을 걸치고 냉장고에서 올림피아의 캔 맥주를 꺼내어 그것을 단숨에 들이키며 그는 평온을 되찾았다. 그는 오늘밤 일을 다시 한번 천천히 머리 속에서 더듬어 보았다.

모든 부분이 다 만족할 만 했다. 기분에 들떠서 밤중에 보트를 저어나간, 고독한 중년 부인의 변사(變死). 그 이상도 그 이하일 수도 없을 것이었다.

설사 타살로 단정되었다고 하더라도 그와 라 상카 부인을 관련시킬 만한 이렇다 할 증거는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다 여기는 로스앤젤레스와는 멀리 떨어진 샌디에이고라서 그 우리들의 콜롬보 선생하고는 관할이 다른 장소인 것이다.

자, 어떻게 할 텐가, 콜롬보씨. 당신의 그 넘겨짚기 수법으로 라 상카 사건과 짐 페리스 사건을 그럴듯하게 한번 연결시켜 보시지.

캔 프랭클린은 짐 페리스를 죽이고 난 다음에 느꼈던 그 묘한 공포감이 이번에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것이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그러고 보니 그때도 살인을 한 다음에 혼자서 여기 있었던 것이었다.

이번의 경우와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지금은 이곳에 혼자 있어도 불안이나 공포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것은 어떻게 된 일인가.

짐 페리스와 릴리 라 상카… 비록 남자와 여자라는 차이는 있겠지만, 이 두 사람이 나에게는 방해물적인 존재에 불과했음에는 아무런 차이도 없다. 두 가지 경우가 다 돈과 관계가 있긴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2차적인 문제에 불과하다. 두 가지 중 어느 경우도 직접적인 동기라고 한다면 그들과 나의 계급적인 차이, 바로 그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렇다, 프랭클린. 너는 그것을 마침내 실증한 거야.

 


“어쨌든 나는 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싶을 뿐이야.”

짐 페리스는 그때 사무실에서 그렇게 말했었다.

“지금까지도 그래왔잖아.”

프랭클린은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쾌감을 느끼면서 페리스에게 그렇게 말했다.

“아니야, 틀려. 자네에게는 이해가 잘 안 갈지 모르지만 역시 달라. 뭐라고 하면 좋을까… 이를테면 말야, 나는 독자를 향해서 보다 더 나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던져 보고 싶어. 그것이 결국 현실에 대한 내 나름의 정직한 반응인 거야.”

페리스의 어조는 여느 때의 그와는 달리 열기를 띠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들의 멜빌 부인이 방해가 된단 말인가?”

“아니야. 방해가 된다는 건 아냐. 그녀는 그녀로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어. 그것은 나도 인정한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기 보다는 차라리 적어도 좋으니까 좀 더 깊이 나 자신을 이해해 주었으면 하는 거야. 그런 이해를 얻기 위해서는 역시 전능의 명탐정 멜빌 부인으로선 안 된단 말일세.”

“알겠어.”

프랭클린은 웃으면서 말했다.

“결국 자네도 약간 문학적이 되고 싶다, 이 말씀이시군.”

거기서 난 불끈 화가 났었지.

“그런 식으로 말하면 곤란해. 자네도 작가라면 당연히 알 만한 일이 아닌가. 다시 말해서 독자들의 비위만 맞추고 있는 것이 나는 싫어지게 된 거야.”

“그렇다면 자네는 멜빌 부인이 우리에게 벌어다 준 거금 같은 건 달갑지 않다고 생각하는 건가? 이거야 원, 난 자네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줄은 몰랐네.”

“물론 나도 멜빌 부인에게 신세졌던 것을 솔직하게 말해서 고맙다고 생각하고는 있지. 하지만 왜 모를까. 나는 더 이상 멜빌 부인의 신세를 지고 싶지 않단 말이야. 둘이서 멜빌 부인을 생각해 냈을 무렵과 지금과는 나 자신 무척 변해 버렸어. 내 나름대로 그때보다는 훨씬 더 진보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걸세.”

“그건 또 꽤나 사치스럽군. 멜빌 부인도, 많은 독자도, 필요하지 않다고 해서 휴지처럼 내팽개쳐도 된단 말인가?”

“쓰고 싶으면 자네가 쓰면 될 것 아닌가.”

“이봐, 그게 10년이나 함께 일해 온 동업자에 대해서 쓰는 말툰가?”

이번에는 프랭클린이 벌컥 화를 내면서 덤벼들었다.

“자네는 자네 혼자 글을 써서 그 결과 소설이 팔렸다고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그건 큰 잘못이야. 정직하게 말해서 분명히 자네가 글재주가 있다는 것은 나도 인정해. 그러나 책을 판다는 것은, 더구나 베스트셀러를 만든다는 것은 그것으로만 되는 게 아냐.

출판사의 격(格)이며, 판매루트, 각가지 매체를 통한 선전, 우수한 편집자의 협력, 영화와 작품과의 상승효과, 단행본과 잡지하고의 밸런스, 출판의 타이밍… 그러한 여러 가지 요소가 겹쳐서 비로소 베스트셀러가 나오는 거야. 표지의 디자인 하나만 해도 팔리느냐, 안 팔리느냐에 굉장한 관계가 있는 거야.

그것을 자네는 단 한 가지도 하지 않고 나에게만 모두 떠맡기지 않았나. 그런데도 지금 와서 이젠 싫증이 나니까 쓰기가 싫다고 말씀하시는데, 좋다 이거야. 뭐 할 수 있거든 혼자서 해보라구.”

페리스는 마구 떠들어 대는 프랭클린의 얼굴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더니 이윽고 슬픈 듯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옳아, 자네 말이 맞아. 그것은 나도 모르는 게 아냐… 하지만 어느 쪽이냐 하면, 직접 작품 자체와 관계가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그것은 모두 작품을 팔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지, 작품의 질을 훌륭하게 하는 것은 아니란 말일세.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넷째도 현실을 직시하고 그 속에서 자기의 마음을 주장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작가로서의 개인적인 욕구란 말일세. 결코 돈이 아니야. 자네라도 작가라면 알 게 아닌가. 그게 아니라면 자네는 작가가 아니라 단순한 장사꾼에 지나지 않게 돼.”

 


잊어버리고 있던 그 공포감과 불안감이 또다시 프랭클린의 마음을 엄습하기 시작했다. 그는 그것을 털어 없애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황급히 큰 소리로 웃어 젖혔다. 그 말고는 아무도 있을 턱이 없는 이 별장의 방이, 수많은 짐 페리스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프랭클린은 어느 샌가 그 짐 페리스들을 향해서 큰소리로 고함을 질러대고 있었다.

“무슨 소리든 지껄여 보라구, 짐 페리스!”

어둠이 거기에 대답했다.

“이긴 건 나야. 네가 아냐!”

그 말을 프랭클린은 껄껄 웃어 주었다.

“내가 해치웠어. 내 뜻대로 너를 없애 버렸단 말이야, 짐!”

어둠이 그것을 부정했다.

곧 날이 밝을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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