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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버리 힐즈에 있는 프랭클린의 저택, 절벽 위로 툭 튀어 나온 예의 썬 룸 스타일의 거실 소파에 앉아서 캔 프랭클린은 뉴욕 레뷰지 글로리아 스튜어트 기자의 멋있는 모습을 즐기고 있었다.

타이트한 흰 드레스에 똑같이 하얀 부츠, 그리고 작은 꽃처럼 귀여운 빨간 모자. 같은 빨강이라도 라 상카 부인 것과는 천지차이라고 프랭클린은 생각하면서 분주하게 시선을 아래위로 보내고 있었다. 부드러운 5월의 햇빛이 방안에 가득하고 그녀의 인터뷰에 동행해 오 카메라맨이 조급하게 라이트의 명암을 조정해서는 파인더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 친구만 없다면 훨씬 더 즐거운 인터뷰가 될 텐데, 하고 프랭클린은 생각했다.

누가 왔는지 멀리서 초인종이 울리고 있다. 그것을 계기로 그녀는 테이프 레코드의 스톱 단추를 누르면서 말했다.

“바쁘신데 정말 감사합니다.”

글로리아 스튜어트는 메모 책을 가방에 넣으면서 일어났다. 멋있는 각선미가 프랭클린의 눈앞에 생겨나고, 그는 그것을 노골적으로 관찰했다.

“저, 사진을 찍게 해주셨으면 좋겠는데요.”

“좋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프랭클린은 일어서서 카메라맨이 지시하는 위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잠시 후부터 해야 할 라 상카 부인과의 밀회를 말끔히 잊어버릴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그것은 짐 페리스와의 싸움에 이긴 덕택에 걸려든, 그 자신만이 알고 있는 빛나는 포상이었던 것이다.

“인터뷰에 응한 것은 댁의 잡지에 여러 가지 신세를 지고 있기 때문이지요. 하기야 그것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두 번째 이유지만…”

프랭클린이 포즈를 취하면서 글로리아를 향해 빙긋이 웃자 그녀는 의아스러운 듯한 시선으로 그를 보았다.

“그럼 그 첫 번째 이유는 무엇이지요?”

현관에서는 가정부가 누구하고 얘기를 주고받고 있는 것 같았다.

카메라의 셔터 소리가 두세 번 계속 되었다.

“인터뷰하러 오신 분이 매력적 이어서죠.”

그렇게 말하고 그녀에게 웃어 보이려고 하는 찰나였다. 프랭클린은 글로리아의 뒤에 콜롬보의 레인코트가 희미하게 나타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콜롬보는 한 아름이나 되는 책을 안고 지금이라도 곧 떨어질 것 같은 것을 억지로 버티면서, ‘안녕 하세요’하는 식으로 머리를 까딱해 보였다. 프랭클린은 갑자기 지금부터 가지 않으면 안 될 샌디에이고 행을 생각하고 미간을 찌푸렸다.

“보시다시피 손님이 와 계신데, 무슨 일이오?”

콜롬보에 대한 그의 말은 불쾌감을 뚜렷이 나타내고 있었다. 콜롬보는 막 떨어지려는 맨 위의 책을 턱으로 누르면서 마치 살얼음 위를 걷는 듯한 발걸음으로 들어왔다.

“예. 상관없으시다면 한 2~3분만.”

“그럼, 거기서 좀 기다리시오.” 

프랭클린은 그렇게 말하고는 귀찮아하는 표정을 숨기지도 않은 채 글로리아 스튜어트에게로 돌아섰다.

“그밖에 뭐 물어볼 거라도 있으십니까. 서슴지 마시고…” 

그것은 분명히 콜롬보에 대한 빈정거림이었다. 그러나 콜롬보는 모르는 척하고 책을 껴안은 채 멍청히 서서 있었다. 가끔씩 주위를 둘러보는 건 어디 책을 놓을 만한 마땅한 장소가 있는지, 찾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럼, 한 가지만 더 여쭤 보겠어요. 멜빌 부인 시리즈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요. 팬으로선 무척 궁금한 질문이죠.”

프랭클린은 슬쩍 콜롬보 쪽을 살펴보았다. 콜롬보는 책 놓을 자리를 찾다가 단념한 듯이 이쪽을 향해서 가만히 선 채로 있었다.

“거기에 대해선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역시 파트너를 매장한 것과 동시에 부인도 묻어 버릴 작정입니다.”

이건 정말 명대사다. 프랭클린은 자기 자신에게 속삭이면서 글로리아의 얼굴을 보았다. 그녀는 느낀 바가 많은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선생님 기분은 잘 알겠어요. 하지만 애독자들을 위해서 계속해서 써 주실 수는 없을까요?”

프랭클린은 천천히 고개를 가로 흔들었다.

“그야 쓰려고만 하면 쓸 수도 있지만… 죽은 친구를 모독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내키지가 않아요. 두 사람이서 생각해 내서 두 사람이서 써오던 시리즈이니까요. 그것보다도 나 사실 그것과는 다른 창작을 계속 해 나가느냐 어떠냐 하는 것조차도 아직 결정짓지 못하고 있어요.”

털썩 하는 소리가 났다. 콜롬보가 기어코 책을 한 권 떨어뜨리고 말았는지, 자꾸만 바닥과 안고 있는 책을 번갈아 보고 있다.

바보 같은 녀석!

프랭클린은 혀를 찼다.

“부디 써 주셨으면 좋겠어요.”

“고마워요. 될 수 있는 대로 그렇게 하도록 노력해 보지요. 자, 그럼 오늘은 이쯤 해둘까요.”

“알겠습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카메라맨을 보고 말했다.

“하비, 그만 실례합시다.”

카메라맨은 익숙한 솜씨로 도구를 정리하더니 프랭클린에게 인사하고 현관 쪽으로 갔다. 콜롬보는 여전히 책을 껴안은 채 카메라맨을 보고 웃는 얼굴로 인사를 했다.

“좀 더 안정되고 나거든 언젠가 한 번 더 조용히…”

프랭클린은 글로리아의 가느다란 허리에 오른 손을 돌리면서 현관으로 안내해갔다.

“지금의 심경 같은 것도 말하고 싶군요. 오늘은 마음에 여유가 없었고 또 충분히 할 말도 다 못했으니까요.”

“그야 뭐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고맙죠. 전화를 드려도 상관없을까요?”

“예,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럼 다음 주에라도.”

글로리아는 안녕히 계시라는 인사를 남기고 돌아갔다.

프랭클린이 문을 닫으면서 돌아다보았더니 저편에서 콜롬보가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거 실례가 많았소.”

프랭클린이 말하면서 콜롬보 쪽으로 다가갔다.

“천만에 말씀. 한데 아주 미인인데, 지금 그 분…”

“예, 그러네요. 한데 오늘은 또 무슨 일입니까.”

“이거 돌려드리려고 왔지요.”

콜롬보가 팔에 껴안고 있는 책을 무거운 듯이 들어올려 보였다. 또 한 권의 책이 소리를 내면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니 그걸 뭐, 일부러 가져오시느라고. 거기 어디 놔두세요.”

콜롬보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응접 테이블을 발견하자 그 위에 책을 놓았다. 목에 매달린 너절한 넥타이가 방금 내려놓은 책에 끼어 버려서 그는 황급히 그것을 빼냈다.

“겉치레로 하는 말이 아니라, 이 책 정말 재미있더군요. 한번 읽기 시작하니까 그만 둘 수가 없었어요.”

프랭클린은 쓴 웃음을 지으면서 다시 소파에 몸을 묻었다.

“전부 읽으셨소?”

“그럼요, 뭐 정신없었죠.”

콜롬보는 과장된 제스처로 손을 흔들어 댔다.

“탐정이 마음에 들었어요. 뭐라고 할까, 발상이 독창적인 데다 정말 날카로워요. 천재더군요, 그 아줌마. 아주 조그만 힌트를 가지고 명쾌하게…”

“이봐요 경감, 선생의 고견을 더 들었으면 좋겠지만, 난 지금부터 갈 데가 있어서…”

그랬더니 콜롬보는 여느 때처럼 머리를 긁적댔다.

“하필이면 좋지 않은 시간에 왔군요. 멀리 가십니까?”

“뭐, 조금 피곤해서 샌디에이고의 별장으로 갈까 합니다. 뭔가 수사에 지장이라도 있나요?”

“아니 천만에요. 오히려 저희들이 생각이 모자라서…”

콜롬보는 정말로 미안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나 자신도 잘 알고 있는 걸요. 언제나 이런 식이니까 남이 싫어한다는 것도… 너무 지근덕거린다는 거죠. 하지만 할 수 없어요. 이것이 제 성미인 걸요. 전에 의사한테서도 그런 말을 들었지만 말예요.”

프랭클린은 웃음이 나오는 것을 억지로 참고 있었다.

이 녀석도 이 세상에선 이류의 존재밖엔 안 되는 놈이야. 그래, 그 라 상카 부인처럼. 그녀하고 이 친구가 다른 점이 있다면, 이 사람은 있으나 없으나 별로 상관이 없는 이류라는 점이야. 그러나 라 상카 부인은 달라. 그녀는 이 세상에 살아 있어서는 절대로 곤란한 그런 부류의 인간이야. 망측스럽게 생긴 그 말상에 비하면 콜롬보의 멍청해 보이는 쌍통은 오히려 호감이 갈 정도거든.

“편집광이라고나 할까요?”

콜롬보가 딱하고 손가락을 맞부딪쳐 소리를 냈다.

“그거, 그거, 바로 그거예요. 정말 싫증이 나요. 마누라한테서도 자주 그런 말을 듣거든요. 당신은 너무 치근치근하다고요…”

그러고 나더니 그는 말이 나온 김에 말하는 듯이 아주 자연스럽게 이렇게 물었다.

“휴양은 혼자서 가시나요…?”

“물론이죠, 왜?”

“왜라니요. 거기 샴페인이 두 병 있지 않습니까?”

콜롬보는 방구석에 놓인 샴페인 병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말했다.

“그거 가져가시는 거 아녜요?”

이것 봐라. 이게 바로 우리 콜롬보 선생의 넘겨짚기 수법이라는 것이군.

프랭클린은 그렇게 자기 자신에게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그는 콜롬보의 질문이 묘하게 핵심을 찔러오는 데 대해서 약간이긴 하나 공포감을 느꼈다. 그러나 그의 타고난 우월감은 모든 걸 웃어넘김으로써 그 공포감을 지우려 들었다.

“아, 저거… 난 술이라면 그만이거든, 저 정도 가지고선 사실은 나 혼자로서도 모자랄 정도야.”

그렇게 말하면서 프랭클린은 일부러 보라는 듯이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경감, 그만 떠나야 할 시간인데요. 이제 다 됐소?”

“예, 그야 뭐… 시간을 지체케 해서 미안합니다.”

콜롬보는 빙그레 웃으면서 돌아가려고 나섰다. 프랭클린은 준비해 두었던 서류가방과 두 개의 샴페인 병을 들더니 콜롬보의 뒤를 따라 나갔다.

“아, 한 가지가 더 남아 있었군요.”

콜롬보가 뒤돌아보면서 말했다.

“실은 선생님한테 받았던 그 리스트 말인데요…”

“허허? 뭔가 알아 내셨소?”

“아니, 전혀.”

콜롬보는 시원스럽게 말했다.

“선생님 말씀대로 그런 녀석들은 좀처럼 입을 떼지 않거든요. 어떻게 해볼 길이 없어요.”

“특수한 세계니까 그럴 거요.”

“맞습니다. 정말…”

“하지만 그밖에는 가능성이 없는 거니까, 그쪽으로 힘써 볼 수밖엔…”

“네, 물론 그래야지요.”

“자, 그럼 이쯤하고…”

두 사람은 현관을 나오자 각각 자기 차 있는 쪽으로 갈라져 갔다.

프랭클린은 메르세데스 벤츠 뒷좌석에 서류가방과 술병을 집어 던지고 주머니에서 담배케이스를 꺼내어 담배를 입에 물었다. 지금부터 하지 않으면 안 될 행위가 그로서는 그다지 어려운 일로 생각되지는 않았다.

페리스의 경우와 조금도 다름없구나, 하고 프랭클린은 생각했다. 말썽거리 파리는 잡아 없앨 따름이다. 더군다나 라 상카 부인의 말상 얼굴을 생각하면 그는 그 행위가 오히려 쾌감에 직결되는 것만 같았다.

로스앤젤레스 오후의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활짝 개고 반짝일 듯이 빛나는 푸르른 하늘이 보란 듯이 펼쳐져 있었다. 프랭클린은 그 파란 하늘을 향해서 담배연기를 만족스럽게 뿜어댔다.

“프랭클린씨.”

콜롬보의 소리가 났다.

“아직도 거기 있었소? 무슨 일이요?”

프랭클린은 메르세데스의 문짝을 열고 차에 오르면서 콜롬보를 쳐다보았다.

“저, 한 가지만 더…”

“뭐 중요한 일이요?”프랭클린은 안전벨트를 매면서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

“예, 실은…”

콜롬보는 차체 위에 손을 짚고는 차 안으로 목을 들이밀었다. 사팔뜨기 같은 콜롬보의 눈이 프랭클린의 바로 곁에 다가와 있었다.

“샌디에이고의 전화국에 선생님의 전화 관계 일로 조금 물어 보았는데요.”

전화국?

프랭클린은 깜짝 싶었다. 그러나 그는 그 내심의 놀라움을 노여움으로 얼른 뒤바꿔 콜롬보에게 대들었다.

“무엇 때문에 그런 짓을 하지?”

콜롬보는 난처하다는 듯이 열적게 웃었다.

“특별한 이유 같은 건 없습니다. 그저 생각나는 대로 이것저것 다 해보는 거죠.”

“그래서?

“예, 어떻든 간에 사건 당일 선생은 샌디에이고의 별장에서 로스앤젤레스로 전화를 거셨더군요. 그것도 죽은 짐 페리스씨의 자택으로?”

“아, 그랬었지. 무엇 때문에 전화를 걸었는지 설명하란 말인가?”

“예. 그럴 수 있으시다면.”

“그야 쉬운 일이지.”

프랭클린은 차에 엔진을 작동시키면서 말했다.

“짐하고 화해했다는 것을 부인에게 알려 주느라고 그랬지. 이번 일 때문에 짐하고의 사이가 일시적이긴 했지만 이상해졌으므로 무인이 무척 걱정을 하고 있었거든.”

“그게 무업니까? 이상해졌다는 것이?”

무슨 소릴 하고 있는 거야, 콜롬보. 벌써 조사가 끝났을 텐데, 하고 그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짐이 갑자기 자기 단독으로 써 보겠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내가 처음으로 화를 냈었죠. 그런 다음에 여러 가지로 얘기해 본 결과 그의 기분을 알 수가 있었기에 납득은 했지만 말이요. 이렇게 하면 설명이 되는 걸까?”

“예, 잘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콜롬보는 자꾸만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래. 자, 그럼 이제 됐지요?”

“예, 좋습니다. 대단히 죄송합니다.”

콜롬보는 차에서 손을 떼더니 그 손을 들어 인사했다.

“그럼.”

“예, 부디 즐거운 휴가를!”

“고맙소.”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콜롬보는 뒷짐을 지고 메스세데스를 바라보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

“운전 조심하세요!”

“안심하라구. 사고 같은 거 안 낼 테니까.”

프랭클린은 차 속에서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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