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토랑 코로니얼 하우스의 내부는 그녀의 드레스처럼 화려한 진홍 일색이었다. 근년에 와서 부쩍 불어난 관광객 상대의 이류 식당인데, 라 상카 부인은 강제다 시피 프랭클린을 이곳에 데려왔다.

“나, 여기 한번 와보고 싶었어요. 일류라면서요.”

그녀는 들떠서 떠들어댔다.

“네, 그래 뵈네요.”

그렇게 말은 했지만, 실은 이 장소가 캔 프랭클린에겐 딱 한 가지 이점이 있었다. 이 여자와 함께 있는 장면을 남의 눈에 띄지 않고 넘어갈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는 어두컴컴한 조명 속에서 더욱 괴상하게 보이는 그녀의 말상(馬相)을 가만히 바라다보면서 억지웃음을 웃고 있었다.

그렇다, 사뭇 잊어버리고 있었던 불쾌한 일이 이제야 생각난다. 말이다, 틀림없는 말이야. 그래서 나는 이 말상 얼굴이 질색이었던 거야.

“디저트는 뭘로 할까요?”

“딸기!”

“딸기?”

“예, 딸기요. 피처럼 새빨간 그 딸기.”

옛날 어릴 때 그는 어머니의 명령으로 처음으로 말을 탔다. 상류 계급의 사람은 승마 정도는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어머니의 주장에, 그는 가기가 싫었지만 억지로 마장으로 끌려갔던 것이다.

그는 거기서 커다란 말을 보자 큰 소리로 왕 울어 버렸다. 어머니는 그를 나무라고 조그만 그를 뒤에서 떠밀듯이 해서 말 앞에 세웠다. 말은 비웃는 듯이 큰 소리로 히힝 거리더니 앞발로 땅을 두들겼다. 그는 크게 겁을 집어 먹고 더욱 더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어머니는 들은 척도 안 하고 승마복 차림의 그를 강제로 안장에 올려놓으려고 했다.

그때였다. 말은 큰 이빨을 드러내면서 재빨리 머리를 돌리더니 말 잔등으로 기어오르고 있는 캔의 어깨를 힘껏 깨물었다…

빨간 조끼의 웨이터가 유리그릇에 담긴 얼음덩이 위에 군데군데 박아놓은 딸기를 조심스럽게 날라 와 라 상카 부인의 앞에 놓았다.

프랭클린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새 오른손이 왼쪽 어깨를 누르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거기에는 아직도 말의 커다란 이빨 자국이 보기 흉하게 남아 있을 것이었다. 그것은 그가 아직까지 어느 누구에게도, 설사 하룻밤을 같이하는 여자들에게도, 보인 일이 없는 비밀이었다.

“아이, 맛있어!”

라 상카 부인이 소리를 질렀다.

“그것 잘 됐군.”

프랭클린은 또 억지웃음을 보란 듯이 웃어 보였다.

라 상카 부인은 얼음 위의 딸기를 손으로 집어 입으로 가져가더니 큰 입을 쩍 벌렸다. 그리고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프랭클린을 보고는 묘한 교태를 부리면서 말했다.

“부끄러워요. 그렇게 보지 마세요.”

프랭클린은 억지웃음을 더욱 더 야단스럽게 웃어 보였다.

“어쨌든 가게 밖에서 아주머니를 만나는 건 이게 처음 아녜요? 아주머니는 정말 이쁘셔. 릴리라고 불러도 될까?”

구역질이라도 나올 것 같은 감정을 억누르면서 프랭클린이 말했다.

이 말 같은 년아, 어디 두고 보자고! 너는 나의 유일무이한 방해자야!

그는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것이 페리스였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마음속으로 그렇게 소리치고 있었다.

“그럼요. 나, 정말 기뻐요.”

릴리 라 상카는 보기 흉한 핑크색 잇몸을 다 드러내놓고 커다란 딸기를 핥듯이 먹으면서 말했다.

“오늘 연극 어땠어요?”

“지루했어요. 아주머닌?”

“선생님 책이 훨씬 더 재미있어요.”

조금 전에는 틀림없이 연극을 재미있게 구경했다고 해놓고 빤히 들여다보이는 거짓말은 하지 말아, 라 상카 부인.

프랭클린은 유태인 포로들을 점검하는 나치스 장교역의 피터 봔 아이크처럼 웃는 얼굴을 계속하면서 그녀의 먹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헌데 아까 하던 그 말…”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말을 꺼냈다.

“아까 얘기?”

라 상카 부인은 시치미를 떼듯이 말했다.

“봐 버렸느니 뭐니 하던데, 무엇을 봤다는 거죠?”

“아, 그것…”

그녀는 다시 딸기에 손을 뻗치면서,

“그래요. 말하자면 현장을 본 셈이지요.”

“무슨 현장을?”

“선생님 파트너.”

“짐?”

그녀는 살짝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그의 팔에 라 상카 부인의 꺼끌꺼끌한 손이 와 닿았다.

“나 말예요. 나중에 신문을 보고는 깨끗이 선생님 편을 들기로 했다구요.”

그녀의 손이 프랭클린의 살갗을 천천히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왜?”

프랭클린은 불쾌감을 억누르면서 되물었다.

“사무실에서 죽은 것처럼 되어 있었지만 그건 거짓말이죠?”

상대방의 헛수작에 넘어가지 말아, 프랭클린. 그녀가 알고 있는 것을 알아낼 때까지는 이쪽에서 섣불리 행동하지 말아야 해. 결국 이 여자도 콜롬보처럼 멋대로 짐작만 하고 그러는지도 모르는 거야.

“맞아요. 사무실에서 죽었다지만 그럴 턱이 없어요.”

라 상카 부인은 자신 있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또 딸기를 입으로 가져갔다.

“그렇잖아요? 그 사람이 죽었다는 시간에 그는 딴 곳에 있었는걸요. 나, 알고 있어요.”

그녀는 능글맞게 웃었다. 프랭클린도 따라서 웃어 주었다.

“그런 얘기는 서로 잊어버리기로 합시다. 나도 안 들었던 걸로 할게.”

그랬더니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하고 심술궂은 표정으로 프랭클린을 곁눈질했다.

“그럴 수는 없죠!”

“왜?”

“머리 속에 눌러 붙어 버린걸요. 신문을 보았을 때 나도 모르게 악! 하고 소리를 질러버렸어요. 그렇잖아요? 그때 물건을 사러 오셨을 때 선생님은 전화를 걸러 가셨지요. 그때 난 말예요. 이번에 같이 온 사람은 또 어떤 여잔가 하고 창가에서 엿보았죠. 그랬더니…”

그때 이 여자가 짐 페리스를 봐 버렸구나.

캔 프랭클린은 라 상카 부인의 천박한 호기심을 계산에 빠뜨렸던 자신의 방심을 저주했다. 눈앞에서 말이 크게 웃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아주머닌 처음부터 내 말을 의심하고 있었군요.”

“그렇진 않지만…”

그녀는 한껏 요염하게 웃으면서 프랭클린의 소맷부리로 손을 집어넣었다.

“나, 선생님한테 관심이 있었거든…”

그녀의 손은 그의 피부 위를 스물 스물 기어 다녔고, 그녀의 입은 계속 알랑거리고 있었다.

“…그래서 나, 차에 타고 있던 사람을 봐 버린 거예요. 여자가 아니었어요. 남자… 선생님하고 함께 소설을 쓰시던 분…”

“그래서 놀랐단 말이죠?”

“아니에요. 그때는 별로. 하지만 그 사람이 로스앤젤레스에서 사살되었다는 뉴스를 듣고 깜짝 싶었어요.”

새빨간 딸기가 또 하나 그녀의 입 속으로 사라졌다.

“왜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죠?”

캔 프랭클린이 말했다. 릴리 라 상카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그의 팔을 부드럽게 두들기면서 살짝 웃었다.

“바보, 나 선생님 팬 아녜요?”

그렇게 말하고는 그녀는 눈으로 딸기가 담긴 유리그릇을 가리키면서 보기 흉할 만큼 진하게 칠한 입술을 프랭클린 쪽으로 내밀었다. 프랭클린은 유리그릇에서 딸기를 집더니 그것을 그녀의 입가로 가져갔다. 그녀는 마치 프랭클린의 손가락마저 깨물어 먹을 듯이 입을 벌리고 그가 들고 있는 딸기에 덤벼들었다.

색광 같으니라구!

프랭클린은 그렇게 욕을 하면서도 웃는 얼굴을 계속하고 있었다.

“고마워요, 릴리. 나, 당신 기분 잘 알았어.”

그녀는 프랭클린을 뜨거운 눈길로 바라보면서 새빨간 입술을 그의 손가락 끝에 문지르기 시작했다. 프랭클린은 슬쩍 손가락을 떼면서 말했다.

“그래서 얼마를 원해?”

그 말을 듣자 그녀는 일부러 샐쭉해 하면서 말했다.

“기분 나빠요. 나,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닌데…”

그럴까? 돈 생각이 나서 그런 게 뻔한데. 하기야 운만 좋으면 색정마저 처리했으면 하는 것은 벌써 겪어서 다 아는 일이 아닌가.

“아냐, 아냐. 그런 의미가 아니야. 뭐랄까 이를 테면 감사하는 마음이라고나 할까. 누구보다도 우선 나한테 얘기해 주었다는데 대한… 알겠지? 우린 사뭇 사이좋은 친구였잖아. 앞으로도 그럴거구, 안 그래, 릴리?”

그녀는 기쁜 듯이 웃었다.

“선생님은 정말 이해심이 많은 분이에요… 나도 어려운 형편이라구요. 남편이 죽고 나서 외톨박이로 그런 시답잖은 가게를 하고 있거든요. 울고만 싶어요…”

새삼스레 변명할 건 없어, 라 상카 부인. 결정권은 우선 이쪽이 아니라 그쪽이 쥐고 있는 거니까. 마지막 카드는 잘 보관하시라구. 잃어버리지 말고.

“잘 알고 있어. 그러니까 물론 당신을 경멸하거나 그러지 않아.”

그리고나 서 프랭클린은 그녀를 노려보듯이 하고 말했다.

“당신은 항간에 있는 공갈 협박범하고는 달라.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로서는 최대로 비꼬아서 말한 셈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라 상카 부인에게는 도통 통하지 않는 것 같았다.

할 수 없지.

“그렇게 말씀하시니 마음이 편해요.”

“자, 말해봐요. 얼마를 주면 입을 다물어 주겠소?”

그녀는 일부러 생각하는 척했다. 프랭클린은 그러한 그녀의 행동이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연극은 제발 그만하라구, 라 상카 부인. 금액은 벌써 다 정해놓고 있으면서도. 그랬기 때문에 어디선가 듣고서 다우니 극장까지 찾아오지 않았나. 당신은 도대체가 미스터리 연극을 보러 올 만한 신분이 못 되는 사람인 걸.

“1만 5천 달러…”

조금 짬을 두고 그녀가 말했다.

“나… 믿어 주세요. 두 번 다시 이런 일 하지도 않을 거구, 입도 무거운 사람이에요, 프랭클린 선생님.”

“알고 있어. 당신이 미더운 사람이란 걸.”

“더군다나 선생님은 부자이신걸. 1만 5천 달러쯤 큰 돈도 아니잖아요.”

“그렇지도 않아. 하지만 어떻게든 마련해 보지. 그런 조건으로 이야기는 일단 끝을 내자고. 이제 됐지?”

프랭클린은 그렇게 말하자 딸기를 집어서 그녀의 입가에 갖다 주었다.

“물론이죠.”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기쁜 듯이 딸기를 받아먹었다.

“이렇게 말하면 기분 나빠 하실지 모르지만요…”

소녀 같은 표정이 또 그녀의 얼굴에 나타났다.

“저 말예요, 선생님하고 거래하는 거 무척 재미있어요.”

그래, 당신의 그 천박한 호기심 덕택에 말이지. 프랭클린은 마음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당신은 결국 후회하게 될 거야, 라 상카 부인. 당신의 최대의 실수는 자기 분수를 지키지 못한 데에 있는 거야. 더군다나 당신은 딴 사람도 아닌 바로 이 캔 프랭클린을 상대해서 시비를 걸어 왔어. 이 일류급인 프랭클린에게 말야. 그 사실을 잘 명심해 두는 게 좋을 거야.

“아냐 아냐. 나도 무척 즐거웠어요. 앞으로도 서로 즐겁게 지내봅시다.”

“정말?”

라 상카 부인은 눈을 반짝였다.

“나 아까도 말했지만, 지금껏 선생님한테 관심을 쏟아온 걸요.”

“왜? 나는 아시다시피 여자관계가 깔끔하지 못한 편인데.”

“그러니까 좋다는 거죠.”

“네?”

“나, 딱딱한 사람은 질색이라구요. 죽은 남편이 그랬지만, 무언가 거꾸로 믿음직스럽지가 못해요. 여자란 역시 한 사람의 여자밖에 모르고 사는 남자란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마련인가 봐.”

“그런 걸까?”

“강한 남자란 모두 그렇잖아요. 남을 죽여서라도 무언가 덕을 보려고 하는 사람, 매력적이잖아요.”

사람을 죽여서라도 말이지. 정녕 그럴지도 몰라, 라 상카 부인.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남자가 당신 같은 여자를 상대한다고 생각하면 그건 자기도취라는 거야. 그런 남자이기 때문에 실수일망정 당신 같은 여자를 고르지는 않는 거야.

“여하튼 그 얘기는 다음 번 얘깃거리로 남겨 둡시다.”

“언제?”

“이틀이나 사흘 후로. 1만 5천 달러라면 말은 쉽지만 큰 돈이야. 준비되는 대로 곧 연락할게.”

“그러실래요? 그럼 기다릴게요, 기대를 걸고.”

그녀는 샴페인 글라스를 들고 프랭클린을 향해서 윙크했다.

“그럼…”

프랭클린도 글라스를 집어 들고 그녀에게 윙크했다. 무슨 일이든 한 방으로 말끔하게 끝내기는 어렵다고 프랭클린은 생각했다. 뭐 이 정도면 오히려 수월한 뒤처리다. 골칫덩이 페리스의 끝마무리이고 보니 콧노래를 부르면서 하는 장난과도 같은 게 아닌가.

두고 보라고, 콜롬보 선생.

캔 프랭클린은 어딘가에서 쫄랑거리고 있는 콜롬보를 향해서 다시 한번 글라스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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