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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 프랭클린의 옆자리는 지금 인기가 한창인 미인 스타 바바라 린든이 좌석에서 몸을 내어놓다시피 하면서 무대에 열중해 있다.

무대 위에서는 아가사 크리스티의 미스터리 무대극이 지금 막 대단원을 향해 달려가는 참이어서 중요 인물 전원이 열띤 연기를 벌이고 있었다. 벌써 15주째의 연속 공연으로서 1년 이상의 롱런이 예상되는 소문난 드라마이긴 했지만 캔 프랭클린에게는 전혀 관심 밖의 일이었다. 그는 하품이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으면서 옆자리에 있는 바바라에게 시선을 보냈다.

“이봐요. 도대체 누가 범인이죠? 나는 도대체 알 수가 없네요…”

그녀는 무대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옆에 앉은 프랭클린에게 속삭였다.

범인? 범인은 나야.

그는 마음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입가에 엷은 웃음을 띠었다.

그는 만족해 있었다. 그것은 여태껏 맛보지 못했던 충만감이라고 조차 할 수 있는 것으로서, 이제 앞으로는 다 그가 생각하는 바대로 되어 갈 판이었다. 옆에 있는 바바라가 그렇고,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명성이 그렇다.

그래, 특히 지금부터 이미 내게 주어지고 있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자유스런 기분이 그렇다.

그렇다, 나는, 이 캔 프랭클린은, 짐 페리스에게 이긴 것이다.

프랭클린은 큰 소리를 내어 웃고 싶었다. 승자는 나라고 고함을 쳐대고 싶었다. 이상하게도 그는 정말로 그렇게 해도 좋다고까지 생각하고 있는 자신을 의식하고, 다시 한번 입가에 웃음을 떠올렸다.

콜롬보라! 그 녀석이 도대체 무얼 안다는 거야. 가끔 가다 생각나는 대로 지껄일 따름이 아닌가?

그렇긴 하지만, 사실은 정말 신경을 곤두세우게 하는 녀석이야. 뭐, 괜찮아. 자유스러운 기분에 비하면 콜롬보 정도의 파리는 아무래도 좋아.

프랭클린은 이 지루하기 짝이 없는 연극을 보고 난 후 바바라와 함께 지낼 몇 시간을 머리에 떠올리며 만족스럽게 눈을 감았다.

무대에서는 콜롬보보다도 월등하게 잘생긴 스코틀랜드의 경감이 지금 막 범인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2층의 특등석으로 연결되는 호화스러운 계단을 바바라 린든과 함께 천천히 내려오기 시작했다. 다우니 극장의 로비는 성장(盛裝)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왼쪽에서 팔을 낀 바바라가 아직도 연극 속에서 깨어나지 못한 표정으로 프랭클린을 쳐다보았다.

“참, 재미있었어요. 지금도 가슴이 두근거려요.”

프랭클린은 그녀의 약간 혀가 짧은 듯한, 꼬마아이의 목소리를 연상시키는 그 목소리가 좋았다.

“처음 1막 째에 벌써 해답이 나와 있었잖아.”

“아니 그랬어요?”

그녀는 납득할 수 없다는 투의 목소리로 마구 떠들어댄다.

“나는 끝날 때까지 누가 범인인 줄 전혀 몰랐는걸요.”

그럴 테지. 그러나 너는 모르는 게 당연해. 요, 귀여운 녀석아. 네게 중요한 것은 그 매력적인 목소리와 매끄러운 육체. 대중도 그것을 원하고 있고 나도 그것을 원하고 있다. 그래, 몬로처럼 말이야.

“별 것도 아니잖아, 그 따위 트릭. 이것만은 알아둬도 손해 될 게 없을 거야. 미스터리에서 쌍둥이 형제가 나왔을 때는 추리를 복잡하게 하기 위한 위장술로서 범인은 대체로 뚱뚱한 쯤이야.”

프랭클린은 주머니에서 은제 담배케이스를 꺼내더니 그녀에게 권하고 자기도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 연극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연출가나 배우들에 대해 찬사를 던지고 있었다. 프랭클린은 이 군중들 속에서 안면이 있는 영화 제작자나 배우들을 찾아내서는 간단한 인사를 교환하면서 입구 쪽을 향해 나아갔다. 팔에 꼭 매달린 바바라는 아직도 흥분된 기분으로 무언가를 계속 지껄이고 있었다.

“프랭클린 선생!”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캔 프랭클린은 소리 난 쪽을 보고 매우 혼잡스러운 군중 속을 더듬었다.

“저예요! 여기 여기!”

또 소리가 났다. 수많은 머리의 물결 속에서 발돋움을 하다시피 한 여인이 손을 높이 쳐들고 열심히 흔들고 있었다.

라 상카 부인이었다. 바바라가 언짢은 표정으로 프랭클린을 쳐다보았다.

“누구예요?”

“뭐, 조금 아는 사람이야. 곧 돌아올게, 바바라.”

그는 바바라를 거기서 기다리게 일러놓고는 불쾌감을 누르고 억지웃음을 보이면서 라 상카 부인 쪽으로 다가갔다. 라 상카 부인은 군중 속을 열심히 헤치면서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야! 라 상카 부인. 이상한 데서 만나 뵙게 됐군요.”

프랭클린이 야단스럽게 겉치레로 웃어 보이자 그녀도 의미 있는 듯이 눈을 치켜 떠 보였다. 입고 있는 드레스나 마찬가지로 온통 새빨갛게 칠한 입술에서 튀어나온 앞니가 더욱 더 두드러져 보였다. 이건 마치 말(馬)이구나, 하고 프랭클린은 생각했다.

“무슨 일로 이렇게 먼 데까지 오셨지요?”

프랭클린이 말하자 그녀는 더욱 이상한 눈짓을 하고 웃으면서 말했다.

“모처럼 만에 무엇 좀 사려구요. 어쨌든 혼자 사니까 심심하거든요. 가끔 가다 기분 전화도 해야지요. 어때요, 이 드레스?”

그녀는 소녀처럼 들떠 떠들어 대면서 새빨간 드레스의 옷자락을 손끝으로 집더니 빙그르르 몸을 한 바퀴 돌렸다.

“여! 아주 잘 어울립니다.”

마치 촌구석 경마에서 어쩌다 운 좋게 우승한 말과도 같군. 프랭클린은 억지로 크게 웃어 보이면서 그녀의 드레스를 칭찬해 주었다.

“연극도 구경한 걸요. 재미있었어요.”

라 상카 부인은 그렇게 떠들어대면서 발돋움을 하고 기다리고 있는 바바라 쪽을 보았다.

“선생님과 함께 오신 분, 정말 예쁘시네요.”

프랭클린은 바바라 쪽을 잠깐 돌아본 뒤 순간적으로 이마를 찌푸렸다.

그야 그렇고 말고, 라 상카 부인. 당신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가 아닌가. 당신과는 클래스가 틀려. 제발 부탁이야. 빨리 나를 당신네 클래스에서 해방해 주시구려. 오늘밤의 즐거움을 당신의 그 천한 얼굴로 망쳐 버리고 싶진 않으니까. 당신은 빨리빨리 샌디에이고로 돌아가서 값싼 위스키라도 마시고 잠이나 자빠져 자시지, 그래.

“뭐, 그저 그렇지.”

“누구예요? 한번도 못 뵈던 분인데.”

“아마 처음일 거요.”

프랭클린의 얼굴에는 초조감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자, 그럼 다음에 또…”

그는 그렇게 말하고 그녀 앞에서 떠나려고 했다. 그런데 뜻 밖에 센 힘으로 그녀가 프랭클린의 팔을 꽉 잡았다.

프랭클린은 놀라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이 또 의미 있는 듯이 프랭클린을 향해 있었다.

“저…”

그녀는 억지로 얌전을 빼려는 듯이 부드러운 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또 활짝 이를 드러냈다.

“여기서 만나게 된 것도 무슨 인연 아니겠어요? 뻔뻔스러운 것 같지만 어때요? 한잔 같이 안 하시겠어요?”

그녀는 아직도 프랭클린의 팔을 꽉 잡고 있었다. 프랭클린은 화를 내면서 매정스럽게 그것을 뿌리치려고 했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지만 저 아가씨와 약속이 있어서요.”

그래도 팔은 떨어지지가 않았다. 라 상카 부인의 눈이 갑자기 공격적인 빛으로 변해 있었다.

“잠깐 양해를 구하면 될 거 아녜요?”

프랭클린은 뭔가 뭔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나와 그녀는 그저 물건을 사고파는 주인과 손님의 관계, 혹은 작가와 팬의 관계가 아닌가? 도대체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이런 무례한 행동을 하게 하는 걸까. 설마 전번에 주었던 사인한 책 때문에 이러는 건 아닐 테지.

“내가 꼭 그렇게까지 해야 될 필욘 없을 것 같은데…”

프랭클린은 그녀를 분명히 쌀쌀맞게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그야 물론이죠.”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능글맞게 웃었다. 뻐드렁니가 소름이 끼칠 정도로 보기 흉하게 드러나 보였다.

“하지만 나, 선생님한테 할 얘기가 있단 말예요.”

그녀는 히뜩 프랭클린을 쳐다보더니 코를 쥐고 킥하고 웃었다.

이봐, 자꾸만 그러면 정말 화를 낼 거야. 여기는 당신 같은 사람이 들락날락하는 그런 천한 자리가 아니란 말이야.

프랭클린은 차츰 주위의 시선을 느끼기 시작했다. 라 상카 부인은 아직도 프랭클린의 팔을 절대로 놓지 않겠다는 듯이 꽉 붙잡고 있었다.

“캔!”

바바라가 참다못해서 소리를 질렀다. 프랭클린은 그녀에게 조금만 더 기다리라는 듯이 눈짓을 하고는 라 상카 부인을 노려보았다.

“다음에 만났을 때 하시죠. 자, 그럼!”

“가만 좀 있어 봐요!”

발을 떼어놓는 프랭클린의 팔을 라 상카 부인이 힘껏 잡아당겼다. 프랭클린의 큰 몸집이 순간적으로 비틀거리면서 지나가던 사람과 부딪혔다.

“이봐! 이러지 말아요!”

그는 마침내 고함을 질러댔다. 그랬더니 라 상카 부인은 태연하게 속삭이듯이 이렇게 말했다.

“당신한테 딱지를 맞고 나면 다른 사람에게 이 얘기를 해버리고 싶어질 텐데, 그래도 상관없을까요?”

프랭클린이 깜짝 놀라면서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는 막바로 이렇게 덧붙였다.

“그건 재미있는 미스터리예요. 오늘 연극보다도 훨씬 더 재미 있지요.”

그리고는 또 능글맞게 웃었다.

“나, 봐 버렸어요. 그 사건, 아시죠?”

캔 프랭클린의 머리 속을 무엇인가가 뚫고 지나갔다. 그는 도대체 이 여자가 왜 표변했는가를 다음 순간 이해할 수 있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는 아직 알 수 없었지만, 지금 당장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것은 너무도 분명한 일이었다. 그것은 그의 선택을 허용하지 않는, 그야말로 꼼짝 못하게 그를 묶어두는 사건이었다.

“잠깐 기다려 주지 않으실래요?”

라 상카 부인에게 그렇게 말하자 그녀는 그제야 겨우 그에게서 팔을 떼고 능글맞게 웃었다.

“과연 선생님은 다르셔. 역시 이해가 빠르시구만.”

프랭클린은 그렇게 말하는 그녀를 노려보고 나서는 데이트를 취소할 구실을 여러 가지로 생각하며 초조한 표정을 짓고 있는 바바라 린든 쪽으로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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