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목 격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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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 장이와 형사는 닮은 데가 많은 모양이야.

로드니 보험회사 로스앤젤레스 지점 외무사원인 마일즈 로스는 생각하고 있었다. 주제넘지 않고, 그러나 집요하게… 말이다.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주머니란 주머니는 전부 털어 보이면서 콜롬보는 미안하다는 듯이 말했다.

“성냥 없소?”

근속 31년의 베테랑, 덕택에 머리털 쪽이 보기 좋게 먼저 은퇴해버린 마일즈 로스는 눈에 익은 콜롬보의 낡아빠진 코트에서 눈을 떼더니 맙소사, 하는 듯이 고개를 흔들면서 라이터를 내밀었다.

자기가 하는 일에는 절대로 화려한 복장이 어울리지 않다는 걸 로스는 오랫동안의 경험을 통해 익히 알고 있었다.

손님 쪽에서 적극적으로 가입신청을 해오지 않는 한, 이 일은 남의 사생활, 그것도 갖가지 재난이나 불행을 전제로 한 그런 것에 뛰어들지 않으면 안 되며, 따라서 화려한 것은 금물이었다. 그래서 비슷한 일을 하는 형사들 역시 마찬가지로 결코 화려한 복장을 하고 있지 않다는 걸 로스는 그 나름대로 이해는 하고 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말이다. 더구나 언제 만나도 그는 철저하다고 할 만큼의 이 지저분한 코트를 입고 있어서 그것을 벗은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러고 보면 이 코트도 근속 15년이라고 할만 했다.

로스는 건성으로 담배를 물고 연기를 뿜어대고 있는 콜롬보의 멍청한 얼굴을 보고 또 한번 고개를 흔들었다.

“점심 했소?”

콜롬보가 물었다.

“아니, 아직.”

“나두요. 그럼 잠깐 저기 가서 같이 안 하실라우?”

대답도 하기 전에 콜롬보는 벌써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었다. 레인코트의 옷자락이 펄럭펄럭 불안스럽게 춤을 추는 모습을 바라보며 로스는 또 한번 고개를 흔들었다.

콜롬보에게 십여 차례나 보험을 권했다가 마침내 그 단단한 성(城) 앞에서 손을 들어 버린 마일즈 로스였다.

로드니 보험회사의 빌딩이 있는 클레시 대로를 콜롬보는 로스를 뒤에 동반한 채 부지런히 앞서가고 있었다. 이 형사가 식사초대를 다 하다니 사람이 살다가 보면 이상한 일도 다 있구나, 로스는 곰곰이 생각하면서 걸어갔다.

이윽고 콜롬보는 걸음을 멈추더니 서서 먹는 조그만 스탠드로 로스를 불러들였다. 로스는 또 맙소사, 하고 고개를 흔들었다.

“핫도그.”

어쩐지 이 초라한 스탠드는 콜롬보가 자주 들르는 단골집인 것 같았다. 그는 무뚝뚝한 표정의 주인을 보고 묘한 윙크를 하면서 큰 소리로 주문했다.

“2개요!”

로스도 하는 수 없다는 듯 거기에 덧붙여서 주문을 하고 지갑을 꺼내는데, 콜롬보가 손을 들어 막았다.

“안돼, 안돼. 그럼 못 써요.”

하면서 콜롬보는 주머니에서 쩔렁쩔렁 동전들을 꺼내 카운터 위에 늘어놓으면서 안쪽을 보고 소리를 질렀다.

“미안하지만 영수증을 주세요.”

크기만 하고 볼품없는 핫도그가 나왔다. 로스는 손에 묻은 토마토케첩을 처리하느라고 애를 먹으면서 콜롬보에게 말했다.

“이거 겁나게 됐는걸요? 형사님의 대접을 받다니.”

콜롬보는 벌써 반쯤 핫도그를 먹어 치우고 아직도 그것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는 로스에게 말했다.

“모양은 이래봬도 말이요, 이 집 핫도그는 맛이 그만이거든.”

“그래요. 한데 도대체 무슨 용건입니까?”

“아, 보험관계 얘기를 잠깐 물어 볼까 해서요.”

간신히 핫도그를 입에까지 가져갔던 로스의 손이 거기서 멈췄다.

“예. 마침내 그런 생각이 드셨습니까? 좋습니다. 좋고말고요. 권유했던 보람이 있군요…”

그랬더니 콜롬보가 야단스럽게 손을 흔들며,

“아냐, 아냐. 가입하는 게 아녜요. 벌써 댁하고 계약이 되어 있는 사람 일인데…”

난 또 뭐라고! 아무래도 이상하다고 했지.

로스는 실망하는 표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될 대로 되라는 듯이 핫도그를 물어뜯었다.

“그래서 어떤 일을? 형사님의 일과 관계가 있는 건가요?”

“물론이죠.”

콜롬보는 주인이 건네주는 영수증을 훑어보고 조심스럽게 접어서 주머니에 넣었다.

“2인조 미스터리 작가인 캔 프랭클린과 짐 페리스, 알고 계시죠?”

“아, 저번에 그 중 누군가가 사살됐다던…”

“그래요. 그 두 사람 말이요. 상당한 액수에 계약이 되어 있었던 모양이던데.”

오라, 역시 그런 일이 있었구먼. 그래서 핫도그를 사고 영수증을 받고… 당신도 오래 살겠어, 콜롬보 경감.

“아무리 당신이지만 그건 곤란한데요. 계약자의 비밀에 관한 것은 아무에게도…”

“그것 야단났는데…”

콜롬보는 자랄 대로 자란 머리를 손으로 긁적거리며 중얼거렸다.

“곤란한데…”

“곤란한 건 우리 쪽이죠.”

“아냐. 이건 살인사건과 관계가 있거든.”

“그게 나하고 무슨 상관이요.”

“상관없지. 옳아. 하지만 서로 귀찮은 일이 될 거 같단 말씀이야.”

“그게 무슨 말씀이요?”

“글쎄, 말을 못해 주겠다면… 당신은 법정에 나가서 말해야 될게요, 아마.”

로스는 이때 걸레 같은 콜롬보의 외견에 걸맞지 않는 이상한 힘을 비로소 느꼈다.

그것은 특히 그의 복장으로 대표되고, 그리고 것을 더욱 강조하는 약간 믿음직스럽지 못한 말에서 오는 친근감의 뒤켠에 남몰래 숨겨져 있던 콜롬보의 힘, 바로 그것을 엿보게 된 놀라움이었다.

이 친구는 어쩌면 나와 같은 종류의 사람이 아닌지도 몰라. 아니야, 그렇게 느껴왔던 것은 그의 오히려 작위적인 허세 탓이고, 사실은 상상 이상의 민완형사일지도 몰라.

로스는 이때야 비로소 그가 한낱 보통 형사가 아니라 로스앤젤레스 경찰 살인과의 경감이라는 것을 의식했다.

“성냥 있으면 한 가치 안 주시겠습니까?”

그러한 로스의 생각은 알 바 없다는 듯 콜롬보는 카운터에 몸을 내밀면서 가게주인에게 부탁하여 성냥 한 가치를 겨우 얻어 냈다. 보험 장이와 형사는 역시 똑같을 수가 없어. 로스는 그렇게 생각했다.

“할 수 없죠. 그럼 당신에게만 말해 주지요. 결코 나한테서 이런 말을 들었다고는 하지 말아요.”

“물론이지.”

콜롬보가 다짐했다.

“그게 작년 봄이었었나요? 프랭클린 씨한테서 전화가 왔었어요. 두 사람이서 서로 생명보험에 들었으면 한다고요…”

“그래, 프랭클린 씨한테서?”

“그래서 내가 사무실을 찾아가서 계약을 체결했죠.”

“프랭클린씨 쪽이 더 적극적이었겠죠?”

“아녜요. 그렇지도 않았어요, 그때는. 짐 페리스씨 쪽이 오히려 그런 느낌이었고, 프랭클린씨가 그것을 사무적으로 처리하고 있는 것 같았어요.”

“그래, 그 사람 수완이 좋지.”

“아마 그런가 봐요…”

로스는 거기서 콜롬보의 의도를 눈치 채고,

“이봐요, 경감. 혹시 페리스씨를 죽이 것이 캔 프랭클린이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여보쇼, 그런 걸 가지고 오버 센스라고 하는 거예요. 그런 경우도 포함해서 우리들은 부지런히 뛰어다니지 않으면 안 되거든. 지금은 그 예비조사에 불과한 거죠.”

“아, 그렇군요! 분명히 보험에 백만 달러씩을 걸었다고 한다면, 상식적으로 말해서 살인의 동기가 되기는 합니다만 도, 하지만 그 사람들은 특별한 인종이거든. 베스트셀러라는 것은 굉장한 돈이 벌리는 모양이죠?”

“그런가 봐요. 잘은 모르지만.”

“만약 그렇다면 우리 회사로서도 가만있을 수도 없고… 그럴 턱이야 없겠죠…”

“그야 나로선 아직 알 수가 없습니다. 사람이란 원래 알 수가 없으니까요. 여하튼 여러 가지로 조사를 해 봐야지요. 정말 고마워요. 덕택에 여러 가지 참고가 됐습니다.”

콜롬보는 레인코트 주머니에서 손을 뽑더니 로스의 어깨를 툭 치면서 말했다.

“또 무슨 일이 있으면 연락하지요.”

“그럼, 이젠 법정엔 안 나가도 되는 거지요? 아까 당신이 그랬잖아.”

그랬더니 콜롬보는 난처하다는 듯이 눈을 굴리면서 어깨를 움츠렸다.

“그런 거 나는 모른대도? 아까도 말했듯이 아직 여러 가지로 조사를 하는 중이니까… 자, 그럼!”

하고 콜롬보는 걸음을 떼어 놓고 있었다.

그러고는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난 듯이 우뚝 멈춰서더니 뒤를 돌아보고 로스에게 손가락을 내밀었다.

“아… 그리고 한 가지만 더.”

“뭐죠?”

“당신 미스터리 읽소?”

“그야 뭐.”

“그렇다면 말이요. 잠깐 묻겠는데 프랭클린씨와 페리스씨 두 사람을 모두 만나 적이 있으니 말이지만, 당신 생각엔 어느 쪽이 미스터리 작가 같다고 생각됐죠?”

로스는 질문의 뜻을 잘 몰라서 콜롬보를 향해서 약간 고개를 갸우뚱해 보였다.

“다시 말해서 어느 쪽이 살인사건의 이야기를 생각해 내는 사람 같이 보이더냐는 말이요.”

“글쎄요. 프랭클린씨 쪽이 아닐까요? 페리스씨는 어쩐지 기가 약한 것 같아서 이미지하곤 약간 달라 뵈더군요.”

“그래, 역시 그렇군!”

“뭡니까? 중요한 일인가요, 그게?”

“아니, 별로 중요한 건 아니지만… 프랭클린 씨한테서 소문난 그 책들을 빌어 왔기에…”

“꽤나 재미있어요.”

“읽었소? 멜빌부인 시리즈?”

이 사람, 도대체 무슨 소릴 하고 있는 거야. 로스는 또 다시 콜롬보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 그야 베스트셀러인 걸요. 누구나 할 것 없이 읽고 있는 거 아녜요?”

“그런데 난 처음 읽었거든. 대단하더구먼. 그런 트릭을 여러 가지로 생각해 내다니… 나 같은 건 진짜 사건을 쫓고 있는데도 정신을 못 차리는 판인데… 그래, 역시 프랭클린씨 쪽이지.”

콜롬보는 자꾸만 고개를 끄덕이더니 재차 로스를 향해 손을 흔들고 걸어가기 시작했다. 로스는 멍하니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경감! 어떻게 할래요, 보험.”

“보험에 들만큼 위험스런 일은 안 해. 나는 겁이 많은 사람이라 위험한 일은 딱 질색이거든. 보라구, 권총도 안 차고 다니잖아.”

레인코트 저고리를 열어젖히고 권총이 있어야 할 자리를 로스에게 보이면서 콜롬보는 부끄러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위험한 덴 안 가는 게 상책이야.”

그렇게 말하면서 콜롬보는 바쁜 걸음으로 걸어갔다.

“맙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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