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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보의 지저분한 푸조204를 뒤에 거느라고 캔 프랭클린의 메르세데스 벤츠는 미끄러지듯 달려 나갔다. 거리는 황혼을 맞아 가지각색의 네온이, 못 다 꾼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왕년의 화려함을 따라갈 순 없겠지만, 할리우드는 역시 할리우드였다.

프랭클린은 백미러를 통해 보이다 말다 하는 콜롬보의 차에 가끔씩 눈길을 주었다가는 고개를 흔들었다.

저게 경감이라니, 로스앤젤레스 경찰도 이제 볼 장 다 봤구만. 서툰 정도가 아냐. 둔해 빠진 멍청한 얼간이…

무엇보다도 그 너절한 복장은 똑바로 쳐다보기조차 힘들 정도였다.

물론 외면만 보고 사람을 평가해선 안 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으나 그것도 정도 문제지 그의 세계에서는 얼룩 투성이의 레인코트에 세차도 하지 않은 푸조를 타고 다니는 경감은 존재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 경감 따윈 어쩌다가 운 좋게 석유 맥을 찾아낸 촌뜨기처럼 프랭클린으로서는 크게 경멸해야 할 얼간이에 지나지 않았다.

이윽고 두 대의 차는 셔먼 앤터프라이즈 빌딩의 주차장에 도착했다.

“여긴 아까 벌써 봤는데요.”

차에서 내린 콜롬보는 프랭클린을 쳐다보면서 머리를 긁었다.

“상관없으니까 따라오시오. 잠깐 생각난 것이 있어서 그래요.”

“별 볼일 없을 텐데.”

콜롬보는 마지못해 프랭클린의 뒤를 따라서 후문으로 들어섰다. 프랭클린의 마음속에는 미묘한 우월감이 있었다.

사무실에 들어서서 스위치를 올리자 방안은 아직도 어질러진 상태 그대로였다. 태풍이 지나간 듯한 참담한 광경 속에서 멜빌 부인의 초상화만이 여전히 상냥하게 웃고 있었다.

“자, 이걸 한번 보세요.”

캔 프랭클린은 근방을 한참 찾는 듯하더니 서류함 속을 뒤적여 오늘 아침 살짝 꽂아 놓았던 그 종이쪽지를 꺼내어 콜롬보에게 흔들어 보였다. 콜롬보는 황급히 말을 다듬으면서 손을 마구 흔들어 그것을 제지했다.

“그, 그대로 책상 위에 놔두십시오. 지문이 묻어 버리지 않습니까?”

“지문? 내 지문 같은 것은 거기 흔해 빠지게 있어요. 물론 여기도 벌써 옛날에 묻어 있지만.”

어디 이 따위 멍청한 경관이 있단 말인가. 캔 프랭클린은 소리 내어 웃어주고 싶었다. 생각 같아서는 범인은 나다 하고 고백해서, 이 친구의 깜짝 놀라는 얼굴을 봐주고 싶었다.

정신 차려, 콜롬보 선생. 천하의 캔 프랭클린이 벌이는 일생일대의 대 연극이 이래 가지고서야 꼴이 아니잖아.

“그게 뭔데요?”

콜롬보는 프랭클린이 손에 들고 있는 종이쪽지를 들여다보면서 말했다.

“명단이요, 자.”

그러면서 그는 그것을 콜롬보에게 넘겨주었다.

“특정한 사람의 이름만 나와 있지 않소. 죤·W, 마스토우, 다니엘 델가드, 피터 스림 헤서웨이, 리차드 S 웨스트레이크… 들은 적이 있는 이름들이죠?”

“그야 뭐…”

“그럴 거요. 당신네 경관들이 모를 턱이 없지. 웨스트 코스트 일대를 손아귀에 쥐고 흔드는 깡패들의 이름이니까 말이야. 자, 보시요. 샌프란시스코, 라스베가스… 모두 있지 않소?”

“그게 어쨌단 말이죠?”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면서 콜롬보가 말했다.

“뻔한 일 아니요. 여보시오, 짐을 죽인 건 이놈들 중의 한 놈이야!”

“아니, 그건 또 어째서?”

“기가 막혀서! 당신 몇 년이나 경찰 밥을 먹었소? 멜빌 부인 같으면 아마 즉석에서 결론을 내렸을 거요!”

“미안하게 됐지만 난 도대체 어찌된 영문인지 알 수가 없군요.”

프랭클린의 입술은 예의 초승달 모양으로 변해 있었다. 웃을 때 생기는 보조개가 콜롬보를 놀리고 있는 듯했다.

“정말 앞뒤가 꽉 막힌 경감님이시군. 이봐요, 짐이 나하고 손을 끊고 자기 혼자서 창작활동을 하려 했다는 것은 벌써 죠안나한테서 들었을 거 아니요?”

“예, 예. 그런 말 하더구만요.”

담배에 불을 댕기려고 콜롬보는 성냥을 몇 개씩이나 내려버렸다. 프랭클린은 라이터를 꺼내어 불을 붙여 주었다.

“그럼 그가 순수한 작품을 쓰려고 했다는 것도 알고 있겠군요.”

“…그렇다면?”

콜롬보는 담배를 쥔 채로 손을 프랭클린에게 불쑥 내밀면서 눈을 반짝였다.

“그거야!”

프랭클린은 씽긋 웃었다.

“잠깐만 계셔 보세요…”

“이제 감이 잡혔소?”

“간신히…”

“그래, 그거야. 그거란 말이요. 이 리스트는 빙산의 일각이야. 짐은 서해안 범죄조직을 철저하게 폭로하는 작품을 쓰려고 자료를 모으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거든. 신문에서 이것저것 발췌를 하고, 여기저기 찔러도 보고, 냄새도 맡고… 결국 그들의 눈총을 받게 되고 만 거야. 다른 자료는 모두 도둑맞은 모양인데 웬일로 이것만은 남아 있군.”

프랭클린은 쓰러졌던 의자를 일으켜 세우고 거기 앉으면서 내 솜씨가 어떠냐는 듯이 콜롬보를 보고 웃어 보였다.

콜롬보는 물고 있던 담배에서 야단스럽게 연기를 뿜어대면서 누구에게 홀린 듯한 얼굴을 하고 서 있었다. 정색을 하면 약간 눈이 한쪽으로 몰려 버리는 것이 이 친구의 특징인 것 같았다.

“그렇다면 신디케이트에 고용된 살인 청부업자의 소행이란 말입니까?”

한참 만에 콜롬보가 겨우 입을 열었다.

“물론이죠. 짐에게 내막을 폭로 당했다간 배겨날 수가 없고, 그렇다고 그를 매수할 수도 없지 않소?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영원히 붓을 꺾어 버리기로 한 것이 아니겠소.”

“살인의 프로들이라… 그러나 어떡할 속셈으로 시체마저 가지고 가 버렸을까요?”

“그건 모르겠는 걸…”

잘 생각해보라구, 콜롬보씨. 지금 그 이유를 알아낼 수 있다면 당신은 정말 천재야.

“다만 한 가지 추측할 수 있는 건 시체가 없으면 살인사건으로 수사하지 못한다는 거요. 그렇지 않소?”

“하지만 프로가 그런 걸 염두에 둘까요. 일이 끝나는 대로 비행기로 멀리 날라 버릴 텐데.”

“이봐요. 하나에서 열까지 나보고 대답하란 말인가? 나는 나 나름대로 알고 있는 걸 말했을 뿐이요. 그것이 힌트가 된다면 나머진 당신이 알아서 해야 할 것 아니요. 어때요, 이제 좀 도움이 됐소?”

“아, 그야 두 말 하면 잔소리죠. 사실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전혀 구름을 잡은 듯한 기분이었는걸요.”

콜롬보는 열심히 리스트를 훑어보고 있더니 이윽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하지만 이상한데?”

“뭐가 말이오?”

“이 리스트의 종이가, 보세요, 깔끔하게 넷으로 접혀 있잖아요. 마치 누군가가 안주머니에라도 넣어 두었던 것 같군요.”

“그게 어떻다는 거요?”

“이 리스트는 틀림없이 여기 있는 타이프라이트로 쳤을 텐데 무엇 때문에 일부러 접어서 서랍에 넣어 두었을까요?”

프랭클린은 순간 소스라치게 놀랐다. 서툰 총 솜씨라도 자주 쏘다 보면 표적을 꿰뚫는 법이다.

이 선생, 뜻밖의 일을 파고드는군. 그래, 얼간이는 얼간이 나름대로 이상한 곳에 집착한다고나 할까.

그는 고개를 흔들고 콜롬보를 향해서 싱긋 웃어 보였다.

“당신이 점점 마음에 들기 시작하는데, 콜롬보씨.”

“뭐라고요?” 콜롬보는 놀란 얼굴로 눈을 크게 뜨고 대답했다.

“아니, 사건을 보는 당신의 눈이 점점 멜빌 부인을 닮아 간다는 거요.”

“아, 그 소설의 탐정 말입니까?”

“맞았소. 진짜 단서는 항상 평범한 데 있는 법이거든. 하지만 그 접힌 자리는 달라요. 짐은 말이죠, 닥치는 대로 종이를 접는 버릇이 있었거든. 책갈피 대신으로 금방 써 버린단 말이요.”

콜롬보는 계속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세밀한 데까지 생각이 미치는 걸 보면 당신도 명탐정 될 소질이 있는데? 아, 그래그래…”

프랭클린은 그렇게 말하더니 바닥 위에 마구 흩어진 책을 집어 올리면서 말했다.

“당신에게 멜빌 부인의 책을 빌려 드리지. 앞으로 수사하는 데 여러 가지로 참고가 될 거요. 시간 나는 대로 읽어 보시구려.”

그는 열 권 가량의 책을 겨우 골라내어 그것을 콜롬보의 손에 올려놓아 주었다.

“아니, 이건 정말…”

콜롬보는 귀찮아하는 기색도 없이 싱글벙글하면서 그것을 받아들었다.

“아직 읽은 일이 없죠?””

“예. 일에 쫓기는데다가 워낙 게을러빠져서요.”

“그럼 이번 기회에 멜빌 부인의 뿌리를 파버리는 게 어떻소?”

“글쎄요.”

나머지 5권을 겨우 찾아낸 프랭클린은 애써 끌어안고 있는 콜롬보에게 그것도 내밀었다.

“이 위에다 올려 놔 주세요.”

“그러지. 그럼 조심하시오. 떨어뜨리지 않게.”

“감사합니다.”

입에 문 담배에서 재가 맨 위에 놓인 책 위에 떨어졌다.

“읽기 시작하면 틀림없이 다 읽어치우지 않곤 못 배길 거요.”

“그럴 테죠.”

책 너머로 간신히 목을 내밀고 콜롬보가 말했다. 프랭클린은 오히려 재미있어 했다.

이 녀석은 틀림없이 로스앤젤레스 경찰 중에서도 가장 못난 녀석일 거야. 경감이 된 것도 무언가 잘못됐거나, 연공서열(年功序列) 덕택임이 틀림없어. 가지고 가리라고는 생각지도 않고 문득 장난삼아 말했더니, 그 녀석 정말로 멜빌 부인 시리즈를 갖고 갈 작정이구만. 원, 녀석하고는! 하지만 무언가 보탬이 되어도 될 테지.

“자, 그럼 오늘은 이만하면 어때요?”

프랭클린은 의자에서 일어났다.

“예. 신세 많이 졌습니다. 저도 이제 가봐야죠.”

“그러세요. 정말 수고했소. 내 힌트가 뭔가 좀 도움이 됐으면 좋겠는데.”

“예,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책은 간신히 끌어안은 해 콜롬보는 문 쪽을 향해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럼 살펴가시오.”

프랭클린은 그의 뒷모습에 대고 말했다.

“안녕히 계십시오.”

콜롬보는 그렇게 대답하고 그리고 문득 뒤를 돌아봤다.

“아, 프랭클린 선생, 한 가지만 더 가르쳐 주지 않으시렵니까? 아니 뭐 대단한 건 아니지만…”

“뭐죠?”

“선생께서는 전화로 사건 얘기를 듣자마자 곧바로 차를 집어타고 샌디에이고에서 돌아왔다고 하셨죠?”

“그렇소.”

그게 어떻다는 것이냐는 듯이 프랭클린은 콜롬보를 보았다.

“나 같으면 비행기를 탔을 겁니다. 샌디에이고 같으면 얼마든지 비행기가 있고 그쪽이 훨씬 빠른 거 아녜요?”

허허, 또 아픈 데를 찔러오는 걸. 힘을 내라구요, 콜롬보씨!

“그야 그렇겠지만, 막상 당하고 보니 거기까진 생각이 미치질 않았소. 그리고 공항까지 왔다 갔다 하다 보면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차를 타는 거나 별반 차이가 없다고 생각했지.”

이만하면 득도해도 없는 무난한 대답이 됐겠지. 딴 사람 아닌 콜롬보 선생님인걸. 이 정도가 좋겠어. 어떠냐는 듯이 프랭클린은 콜롬보를 보았다.

콜롬보는 알아들었다는 듯이 자꾸만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시 한번 작별인사를 하고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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