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리스 부처가 살고 있는 집은 옛날 짐 페리스가 독신생활을 하고 있던 아파트 바로 옆에 있었다.

프랭클린인 자꾸만 더 호화스러운, 예컨대 비버리 힐즈 근처의 큰 주택에라도 살도록 하라고 권했지만, 짐은 고집스럽게 거절해 왔다. 거기 살려고 하면 살지 못할 것도 없었지만, 페리스 부처는 프랭클린이 권하면 권할수록 로스 페리스 대로에 더 집착했다.

두 사람은 첫 번째 베스트셀러 수입으로 살 수 있었던 현재의 집이 무척 마음에 들어 있었던 것이다. 시대와 더불어 변모를 거듭하는 로스앤젤레스에서도, 근처에 그리피스 공원이 있어서 그런지, 이 근방은 그다지 변치 않고 남아 있는 것도 그들이 마음에 들어 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공원 안에 있는 천문대나 동물원을 가끔 찾아가는 즐거움도 두 사람으로는 무시할 수 없었다.

 

식당 구석의 의자에 앉아서 죠안나 페리스는 멍하니 콜롬보 경감이 하는 짓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아직도 레인코트를 걸친 채, 달랑달랑 식당 안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식사 같은 것은 할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그녀가 말한 결과, 이렇게 되고 만 것이다.

“애써 만들어 주셔도 먹을 수 있을는지 어떨지 모르겠어요.”

그녀가 그렇게 말했지만 콜롬보는 돌아보지도 않고 자꾸만 냉장고 안에 목을 들이밀면서 무엇인가를 꺼내고 있었다.

“신경 쓰지 말아요. 신경 쓰지 마시래두. 우리 마누라는 나를 형편없는 요리사라지 뭡니까. 억지로라도 먹을 수 있는 것이라면 오직 한 가지…”

턱없이 커다란 유리사발을 꺼내오더니, 콜롬보는 예상외의 익숙한 솜씨로 계란을 깨어 그 속에 떨어뜨렸다.

“오믈렛이에요.”

그는 손에 쥔 계란 껍데기를 내밀었다.

“계란 껍데기는 어디다 버리죠?”

“찬장 안에 있어요.”

콜롬보는 발꿈치를 들고 찬장 안을 들여다보았다.

“배가 고프지 않은 걸요. 미안하지만.”

콜롬보는 꺼낸 그릇에 계란 껍데기를 던져 넣고 레인코트에 손을 쓱쓱 문질러댔다.

저러니까 더러워지고 낡아 빠질 수밖에. 도대체 저 사람의 부인은 어떤 사람일까!

“여하간 한번 입에나 대 보세요. 맛이 없으면 버려도 상관없으니까.”

그는 다시 계란을 서너 개 더 깨더니, 사발 속으로 떨어진 껍데기를 무척 진지한 표정으로 끄집어냈다.

“좀 색다른 오믈렛이죠. 여러 가지 닥치는 대로 집어넣은 거예요. 어디 한번 맛이나 보세요.”

죠안나를 보고 빙그레 웃더니 그는 자꾸만 손을 비벼댔다.

“그리고… 프라이팬은?”

그녀의 입가에 저절로 웃음이 떠올랐다.

“거기 있잖아요? … 선생님에겐 도저히 당해낼 재간이 없군요. 미안하니까 커피라도 준비해야 할까 봐요.”

콜롬보는 조금도 어려울 것 없는 듯이 또 냉장고에 목을 들이밀고 있었다.

“저… 치즈에, 양파에, 그리고 버터에다가… 어, 여기 있구나.”

냉장고 문을 힘차게 닫고 끌어안은 것을 조리대 위에 왕창 내려놓으면서 콜롬보가 말했다.

“치즈 녹을 그릇은 없나요?”

“찬장 아래에 있어요.”

수도꼭지를 틀어 커피포트에 물을 채워 넣으면서 죠안나가 대답했다.

처음에는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됐지만, 뭐라고 하면 좋을까. 콜롬보씨는 틀림없이 좋은 사람일 거야. 어쩌면 매력적이라고 조차도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덕택에 나도 그다지 신경질을 내지 않게 됐으니… 그러고 보니 기분도 훨씬 가라앉은 것 같다.

“우리 그인 어떻게 됐을까요? 걱정이네요. 시체가 없으니까, 아직 살아있을 가망도 있는 거지요?”

치즈를 녹이고 있는 콜롬보가 그녀에게는 무안가 무척 믿음직스러운 듯이 생각되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그런 때였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단언 할 수는 없지만… 희망은 있겠지요. 어떠면 부군께서는 누군가에게 유괴되었는지도 몰라요.”

콜롬보는 계란을 깨뜨려 넣은 유리사발에 녹인 치즈를 좍 들어부었다.

“유괴라구요? 유괴범이 왜 발포를 했을까요?”

그랬더니 이번에는 양파를 통통통 썰고 있던 콜롬보가, 갑자기 이렇게 물어왔다.

“부인, 왜 웃으셨죠?”

깜짝 놀란 죠안나가 가스레인지 앞에서 뒤돌아보았다.

“웃었다고요? 언제?”

“엘리베이터 앞에서 프랭클린 씨에 대해 물어봤을 때…”

“아니, 제가 웃었던가요?”

“예.”

“말씀하시는 게 우스워서 그랬어요. 콤비라 하시기에.”

“그게 어때서요?”

콜롬보는 잘게 썬 양파도 유리사발에 집어넣고, 남은 한 조각을 휙 입으로 던져 넣었다.

“이건 비밀이지만요, 캔은 멜빌 부인 시리즈를 단 한 줄도 쓰질 않았거든요.”

“뭡니까? 그 멜빌 부인이란 게?”

아니 이럴 수가! 이 사람한텐 베스트셀러도 별 볼일 없구나.

“남편과 캔이 만들어낸 사설탐정인데, 아무리 어려운 사건이라도 척척박사죠.”

“그렇군요… 하지만 잘도 참아내십니다 그려. 댁의 부군께서… 동업하는 사람은 아무 일도 안 하는데도.”

“전혀 쓸모가 없다는 건 아니죠. 출판사와 교섭을 한다거나, 인터뷰에 응하기도 하고… 수완가예요. 글을 쓰는 것만은 딱 질색인 모양이지만.”

포크로 사발 안의 것을 섞어 버무리면서 콜롬보는 열심히 듣고 있었다. 그리고 한숨을 쉬었다.

“아! 나도 그런 재주만 있었으면 작가가 되는 건데…! 잘 팔리죠? 소재 같은 건 어디서 주워 옵니까?”

신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 잡지라든가, 만나는 사람이라든가, 신문기사라든가… 짐은 그렇게 생각나는 것을 성냥갑이나, 담배 케이스나, 어디든지 되는 대로 메모해 두었어요.”

“트릭을 말입니까?”

“저… 콜롬보 선생님, 양파는 먼저 볶아야 하는데…”

“전 이런 식으로 합니다. 하지만 미스터리란 거,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읽어도 좀처럼 범인을 알아차릴 수가 없으니 한심해져요…”

“결국 만든 얘기니까요. 남편이 싫증을 낸 것도 아마 그런 때문 일거에요.”

“미스터리에?”

“네. 좀 더 진지한 작품을 쓰기 시작하려던 참이었어요.”

“하하, 프랭클린 씨가 틀림없이 반대했을 텐데요? 성업 중이었으니까.”

“네, 그랬어요. 처음에는. 하지만 결국 짐이 설득해서 헤어지게 됐어요.”

“그래요? 그랬음 큰 충격이었겠는데?”

“뭐가요?”

“그렇잖아요. 프랭클린 씨로선 새 책이 나오지 않고, 수입이 줄게 되는데… 그뿐 아니라 유행작가로서의 존재마저도 희미해질 테니까 말이죠.”

어느새 프라이팬에서는 맛있는 냄새가 나고 있었다.

“그렇겠죠. 세상에서도 이상하게 생각하겠지요. 캔이 혼자되고 나서부터 갑작스레 아무 작품도 발표되지 않는 다면…”

“그럼 부군께서는 벌써 신작을 쓰기 시작했겠네요?”

“아직 쓰기 시작한 건 아니지만 여러 모로 자료를 조사하고는 있었어요.”

“그랬구먼… 난 프랭클린 선생에게 동정이 갑니다요.”

바깥에서 차 멎는 소리가 나고, 이윽고 초인종이 울렸다.

죠안나 페리스가 문을 열자 거기에 캔 프랭클린이 서 있었다. 그녀는 한동안 잊어버리고 있었던 남편일이 와락 생각났다.

뭐니 뭐니 해도 캔 프랭클린은 가장 가까웠던 십년지기가 아닌가.

“죠안나. 정신을 차려요. 괜찮아요. 급히 차를 몰고 달려왔어요. 뭔가 좀 판명이 됐나요?”

“아녜요, 아직…”

그녀는 프랭클린의 팔에 안겨서 훌쩍거리고 있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야.”

프랭클린은 그녀의 등을 어루만지면서 중얼거렸다.

“오늘 아침에 사무실에서 만났는데…”

그렇게 말하면서 안쪽에서 나오는 콜롬보를 보고 놀란 듯 주춤거렸다. 콜롬보는 레인코트를 걸친 채 한 손에는 프라이팬을 들고 있었다.

“아, 참! 소개하죠. 캔, 이분은 콜롬보 경감님, 살인과에… 콜롬보씨, 이분이 남편의 파트너인 프랭클린씨.”

“처음 뵙습니다.”

콜롬보는 프라이팬을 왼손으로 옮겨 쥐고 오른손을 내밀었다.

“인사는 차차 하기로 하고… 수사는 잘 진행되고 있나요?”

프랭클린은 불쾌한 듯이 콜롬보가 들고 있는 프라이팬을 노려보면서 거친 말투로 물었다.

“아니, 이제 막 시작인 걸요.”

내밀었던 손을 엉거주춤 거리다가 이내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콜롬보가 대답했다.

“아직도 행방불명이란 말입니까?”

“행방불명? 사무실에 들러서 듣고 오시는 건가요?”

“듣지 않아도 알고 있어요!”

프랭클린은 안달이 나는 듯이 말했다.

“샌디에이고에서 줄곧 카 라디오를 틀어놓고 왔단 말이오. 뉴스로 자세하게 보도하고 있더군.”

“그랬군요. 이거 정말 얼빠진 질문을 했나 봅니다.”

“그래서 결국 짐은 아직도?”

“예. 아직도 발견되지 않고 있습니다. 샌디에이고에는 누구 아는 분이라도?”

“아니, 별장이 있어요.”

“그러시다면 주말을 보내러 가셨던가 보군요?”

“경감!”

프랭클린은 마침내 화를 냈다.

“첫 번째 질문으로 되돌아가지만 말이요. 아직 아무 단서도 못 잡고 있단 말인가요?”

“그렇게 다그치지 마세요.”

콜롬보는 열적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다그친다고? 이봐요, 당신! 이 사건에는 사람의 목숨이 걸려 있단 말이요!”

프랭클린은 어이없다는 듯이 죠안나를 보고 말했다.

“한 잔 했으면 싶네요. 아마 흥분했나봐.”

“저도… 곧 준비할게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콜롬보를 얼핏 보더니 거실로 갔다. 프랭클린의 장신이 위협이라도 할 듯이 조그만 콜롬보에게 다가왔다.

“무엇을 꾸물거리고 있는 거요. 상황은 비교적 자세하게 알고 있지 않소. 이러 때 멜빌 부인 같으면 벌써 진상을 파악했을 거요.”

“그 소설 주인공 말입니까?”

콜롬보가 깜짝 놀란 듯이 그를 쳐다보았다.

“아, 그럼! 그녀 같으면 아마 이렇게 말할 거요. ‘그건 단순한 실종사건이 아냐. 프로급 업자의 소행이 틀림없소.’이렇게 말이요.”

콜롬보는 더욱 놀란 듯 입을 반쯤 벌린 채 프랭클린을 지켜보았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