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먼 앤터프라이즈 빌딩의 사무실은 경관으로 들끓고 있었다. 실제로는 그렇게 많은 숫자가 아니었지만, 죠안나 페리스의 혼란한 의식 속에서는 사복 정복을 불문하고 분주하게 드나드는 경관 투성이였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이건?”

사복의 젊은 형사가 그녀의 귀에다 대고 물어뜯듯이 소리를 질렀다.

“전화로 말씀하신 것과는 상황이 다르지 않습니까.”

“네…”

그녀는 마치 꾸지람을 듣는 초등학생처럼 몸 둘 바를 모르며 황망히 대답했다.

“정말 이상한 일이에요. 뭔가 여우에라도 홀린 것 같네요… 흔히들 하는 얘기 있잖아요, 왜… 우리 남편이 쓴 작품에도 이런 스토리가 있었어요.”

무엇을 어떻게 대답해야 할 것인지 그녀는 도대체 종잡을 수가 없었다. 너무도 꿈같은 일이고 소설 속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어서 정작 어디에서부터 생각의 갈피를 풀어나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긴 머리를 깔끔하게 다듬고, 화려한 넥타이를 양복의 톤과 멋지게 조화시킨 그 젊은 형사는 노골적인 눈초리로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딱 잘라 말해서 이건 부인의 상상이지, 사건 같은 건 있지도 않았잖습니까? 시체가 없잖아요?”

경관들이 질러대는 소음이 형사의 날카로운 목소리와 더불어 그녀의 사고를 팽이처럼 뱅뱅 돌리고 있었다.

누군가 좀 도와줘요. …그녀는 마음속에서 그렇게 외쳐대고 있었다.

내가 알 턱이 없잖아요. 그것은 당신들이 할 일이잖아요. 도대체, 남편은, 집은 어떻게 된 거예요?

“그럼 총소린 어떻게 된 거예요? 나는 틀림없이 들었거든요. 짐하고… 그이하고 전화로 통화하고 있는 도중에…”

“총소리가 났단 말이죠?”

젊은 형사는 근처를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는 동료들에게 들으라는 듯이 소리를 질러댔다. 책상을 들여다보고 있던 중년의 털보형사가 머리를 책상 밑바닥에 부딪히고는 “제기랄” 하고 투덜거리면서 일어났다.

“하지만, 부인. 이 근방을 철저하게 찾아보았지만 시체는커녕 피 한 방울 찾아볼 수 없었지 않습니까.”

“예… 그건 알고 있지만… 하지만…”

누가 좀 도와줘요! 그녀는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분들은 나를 골려 주기 위해서 온 사람들인가요? 왜 내 말을 믿으려고 하지 않아요? 그렇다면 이 방의 이 꼴은 어떻게 된 거예요?

“뭔가 없어진 게 있습니까?”

젊은 형사가 물었다.

“아니, 없어요. 자질구레한 것까지는 알 수 없지만요.”

“이곳에는 값나갈 만한 것은 놓아두지 않았었나요?”

“그이들은 이할 때만 이 사무실을 사용했었으니, 있더라도 상으로 탄 트로피나 기념품 정도라고 생각해요.”

“틀림없이 부군의 목소리였습니까? 전화로 말한 것이.”

중년의 형사가 바닥에 흩어진 서류를 집어 들면서 물었다.

이 사람, 영화에나 등장하는 미남 형사를 자처하고 있는 모양이군. 무슨 일만 있으면 이것 보라는 듯이 저고리 속의 권총집을 슬그머니 내보이는데, 웃기는 사람이야.

그녀의 흥분된 신경은 배출구를 찾아서 미칠 듯이 날뛰고 있었다. 혼란된 사고가, 형사의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탓하는 것에서 탈출구를 찾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히스테릭하게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자신을 억누르고 있었다.

“우리 집 그이의 목소리를 모를 리가 있나요.”

“가끔씩 이런 장난을 하시나부죠, 부군께서는…?”

“네…”

죠안나는 그렇게 말해 버린 자신을 순간적으로 후회했다.

왜 이런 대답을 해버렸을까. 틀림없이 집은 이런 장난을 무척 좋아했었어. 하지만 그게 아냐! 그런 장난을 좋아한 건 오히려 캔 쪽이었지. 짐은 그것에 말려들고 있었어. 만우절 같은 때는 두 사람이서 그야말로 야단법석. 여자는 유머를 이해할 줄 모른다면서…

“아니에요! 우리 그이는 그런 짓을 하는 분이 아니에요.”

“여기에 있다고 그러던가요?”

또 권총 자랑을 하고 있네. 고만 좀 해두시지. 더 이상 그랬다가는 비명을 지를 것만 같아. 제발 좀…

“네.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했어요. 오늘 다 끝내지 못해서 마감에 늦는다고 하면서요. 이보세요 형사님들, 언제까지 이런 쓸데없는 것만 물으실 거예요. 시간 낭비예요. 그보다도 빨리 우리 남편을 찾아주셔야…”

“먼저 부군의 목소리가 들렸단 말이죠?”

“그렇다니까요. 도대체 몇 번씩이나 말해야 되는 거예요.”

“그 다음에 총소리가 났다…?”

“예, 그렇다니까요!”

“그러고 나서 대답이 뚝 끊어졌다…?”

“그것도 벌써 말씀드렸잖아요.”

머리 속이 지끈지끈 아파왔다. 쓰러진 의자나 캐비닛을 일으키는 소리가 굉음처럼 덮쳐왔다.

“아무것도 없어.”

“좀도둑의 빈 집 털이야.”

“허 참, 이것이 살인과가 할 일인가.”

“감식과 친구들 이제 돌아가도 좋다고 그러라구.”

“총소리…”

“전화에서 들린 소리란 건…”

“그녀의 망상…”

“… 흔히 있는 일이야.”

“유명인…”

갑자기 구역질이 난다. 얼굴에서 핏기가 없어져 간다는 것을 스스로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죄송합니다. 미안하지만 세수를 좀 하고 싶어요.”

죠안나는 이미 문 쪽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혼자 있고 싶었다.

“예, 다른 데는 가지 마세요!”

미남경관이 큰소리를 질렀다.

“알겠어요.”

그녀는 입구를 막고 있는 두 사람의 제복경관을 떠밀듯이 하고 복도로 나왔다.

 

그 분수식 물 마시는 기계는 아무리 밟아도 물 한 방울 나오지 않았다. 죠안나 페리스는 안달이 나서 페달을 계속 밟아댔다. 다른 곳은 찾아볼 생각 같은 것은 해보지도 못한 채 그녀는 오직 그런 아무 소용도 없는 행위로써 답답한 마음을 씻어내려고 하고 있었다.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지만 그녀는 그것을 닦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물 꼭지만 정신없이 빨아대고 있었다.

“그것도 파업 중입니다요.”

소리가 났다 마치 바람이 빠진 듯한, 이 자리에는 어울리지 않는 코 먹은 목소리였다.

물 꼭지 위에 구부린 채, 고개를 돌려봤더니 복도 저 안쪽 사무실과는 반대 방향에서 어떤 남자가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겉보기에는 근사하지만 정말 형편없는 빌딩이군요. 물도 안 나오지, 자동판매기는 고장이지… 엎친 데 덮친 격이구먼요.”

사나이는 사팔뜨기 같은 눈을 깜빡거리면서 그녀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마구 헝클어진 머리털이 새 둥지까지는 아니더라도 머리 위에 허벅하게 얹혀 있고 목덜미까지 내려와 이발소에서도 고개를 돌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길대로 길어 있었다. 그 뿐 아니라 이 사나이의 얼굴은 도대체 무어라고 했으면 좋을까. 그래, 빈민가의 얼빠진 똘마니가 그대로 중년이 돼 버린 듯한…

괴상하게 생긴 눈이 그래도 붙임성이 있다고나 할까. 그런 매력 아닌 매력이라도 없었다면 나는 벌써 십리만큼이나 달아났을지도 모른다. 설마 이런 사람이 그런 일을 저지르지는 않았으리라고 생각은 하지만…

“예. 경찰에 있습니다.”

사나이는 헐렁하기 짝이 없는데다가 그것도 옷깃 근처에 두세 군데 얼룩이 그대로 남아 있는 레인코트 밑에서 무언가를 슬금슬금 꺼내들었다.

“살인과에 있는 콜롬보…”

경찰관이라고?

그녀는 어이가 없어서 사나이의 얼굴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그가 주머니에서 꺼낸 것은 로스앤젤레스 경찰의 신분증이었다.

아무리 그렇지만… 이런 말을 해서는 안됐지만, 이렇게 궁상스런 데다가 땅딸보고, 넥타이가 뒤틀린 채로 어슬렁거리고 있는 저 작자가 경찰관이라고?

“하지만 저쪽에서는…”

그녀는 괴상한 모양으로 매달려 있는 그의 넥타이에서 황급히 눈을 떼고 사무실 쪽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예, 아까 가 봤죠. 하지만 부인이 오기 전에 나와 버렸지요. 참을 수가 없어서… 그렇지 않아요? 그 방, 담배연기가 꽉 차 있고, 시끄럽기 짝이 없고, 오래 있으면 머리가 아파오거든요.”

한마디 한마디가 뭔가 자신에게 타이르기라도 하는 듯한 한가한 말투였다. 말을 하면서도 그는 오른 손을 잠시도 쉬지 않고 마구 흔들어 대면서 벌렸다가, 이마에 갖다 댔다가, 펄럭펄럭 흔들기도 하고… 도대체, 이 사람이 정말로 경찰관이란 말인가.

“저, 저는 그만 돌아가 봐야…”

죠안나 페리스는 사나이를 보고 그렇게 말했다. 어느새 두통이 좀 멎은 것이 이상했다.

“아, 잠깐만… 이봐요 부인!”

콜롬보가 불러 세웠다.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무리도 아니라고 생각되지만, 몹시 피곤해 보이는 군요. 내가 댁에까지 바래다 드리지요. 조금 쉬시는 편이 좋을 거예요.”

그렇게 해줬으면 좋겠어. 그녀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이 콜롬보라는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그녀는 서 있는 것조차 사실은 간신히 버티고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이런 말단 같아 뵈는 형사가 그런 말을 해주었다고 해서 곧바로 따라나 설 수는 있는 게 아닌지도 몰라.

“그런 짓을 했다가 형사님들한테 야단맞으려고요?”

콜롬보는 빙그레 웃으면서 그녀의 팔을 잡았다. 돌아다보니 그의 헝클어진 머리가 그녀의 코끝에 있었다.

“나중에 전화해 놓죠. 저와 같이 있다고 하면 그들도 별 말 없을 겁니다.”

이것 보게나, 자신만만하시군. 하지만 사무실에 있는 미남 형사보다는 이 사람이 훨씬 더 마음에 든 것만은 틀림없어.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이 펄럭거리는 레인코트만은 어떻게 벗어 버릴 수는 없을까. 캔은 어떡하면 좋지?

차츰 침착을 되찾게 되자, 그녀는 그때서야 겨우 캔 프랭클린의 일이 생각났다. 샌디에이고로 연락하고 나서는 그 후로는 벌써 그에 대한 일 같은 것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캔이 이리로 올 예종인데 어떡하죠? 서로 엇갈릴 텐데요.”

“캔이라니, 댁의 부군하고 콤비인 프랭클린씨 말인가요?”

콤비… 친구… 동업자… 그 아무것도 아냐. 사실 짐과 캔은 아무것도 아닌 생판 남남 간이었는걸.

“콤비 좋아하셔!”

죠안나는 자신에게 말하듯이 소리 내어 말했다.

 

 

콜롬보는 코트 자락을 펄럭이면서 엘리베이터 앞으로 다가가서 단추를 누르고 있었다.

“이런 단추 같은 건 정말 기분이 나빠요. 누를 때마다 뭔가 병균이 묻는 것 같거든요.”

그는 죠안나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듯한 자세로 뒷짐을 지면서 말했다.

“자, 왔습니다.”

문이 열렸다. 사무실에 있는 그 미남 형사가 안에서 뛰어나왔다.

“어, 잠깐만!”

콜롬보가 미남 형사의 팔을 잡았다.

“저 말이야. 나는 부인을 댁에까지 모시고 갈 테니까, 프랭클린씨가 오거든 그리로 연락하도록 말 좀 전해 주게나.”

형사는 그 말을 듣자 힘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경감님!” 

경감이라고?

죠안나는 기가 막혀서 다시 한번 찬찬히 콜롬보를 바라보았다.

“자, 가시죠. 벌써 식사는 하셨는지요?”

콜롬보는 그녀의 뒤를 따라 엘리베이터에 들어서더니 능청스럽게 그렇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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