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nny Kaye (1913 ~ 1987)

데니 케이는 1930년대 말, 단편영화의 조역으로 출연하기 시작하여 연예계에 등장했고 제 2차 대전중인 1944년, {데니 케이의 신병, Up in Arms}이라는 영화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이어서 제 2, 3의 그가 주연한 영화가 성공하게되자 평론가들은 [엔터테이너의 무관의 제왕]이라는 칭호로 그를 극찬했고, 시사 주간지 타임은 그를 커버 스토리 특집의 주인공으로 다루었다.

데니 케이(Danny Kaye)의 본명은 데이빗 데니얼 코민스키이다. 1913년 1월 18일, 뉴욕시의 브룩크린에서 유태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초등 학교 시절부터 무대에 서기를 열망하던 그는 고교때 알바이트로 간간이 단역을 맡아 무대에 섰다. 무대에 서기 위해 어떤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1934년에 마커스라는 흥행사를 따라서 동양 순회공연에 참가했다. 1939년엔 브로드웨이 무대에 처음으로 섰고, 뉴욕의 나이트 클럽에 출연하기 시작하였다. {어둠 속의 귀부인, Lady in the Dark}라는 뮤지컬에 출연한 것도 바로 이 무렵이었는데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로써 데니는 무대와 영화에서 속속 성공의 과실을 거두었고 그의 명성도 높아갔다. 이윽고 그는 미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엔터테이너(Entertainer)로서 확고한 지위를 획득하게 된다.

1954년부터 데니는 <국제 아동 구호 기금>의 특사로서 세계를 순회하게 되는데 주한 미군을 위문하기 위해 우리 나라에도 수차래 다녀갔다. 데니는 1987년 3월 3일, 로스엔젤러스의 자택에서 74세의 생애를 마쳤다.

데니 케이의 음악적 재질은 놀라울 만큼 천재적이라는 인상을 이 비디오는 증거하고 있다. 그가 노래와 춤에서 뛰어난 재능을 갖고있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엔터테이너라는 사실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 최고 수준의 오케스트라를 그토록 능수 능란하고 세련되고 재미있게 지휘하는 모습은 참으로 경이로운 것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그가 악보를 읽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나면 이 비디오는 전율할 만큼 우리를 감동시킨다.

우리가 데니의 만년에 관한 정보가 없었을 뿐, 그는 오래 전부터 이미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서 활약한 스페셜리스트였다. 그가 최초로 오케스트라의 무대에 섰던 것은 유진 올만디가 지휘자로 있었던 필라델피아 관현악단의 자선 공연 이였다. 이때의 반응이 대단했다. 그리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보스턴, 시카고, 로스엔젤러스, 디트로이트, 샌프란시스코, 캐나다의 몬트리올, 유럽의 암스테르담, 런던, 스톡홀름, 텔아비브 등지의 일류 오케스트라를 지휘하였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러한 콘서트에서 받은 출연료는 전액 사회복지기금으로 헌납했다는 것이다. 약 25년간 5백만 달러의 자선기금을 내놓은 그의 선행은 사실상 유례를 찾기 힘든 것이며, 바로 이러한 그의 남다른 선행이 우리를 더욱 감동시킨다. 이 비디오에 수록된 1981년 9월 23일의 뉴욕·필의 공연도 자선이 목적이었다. 데니는 세 번 이 악단을 지휘하기로 예정되었고 여기에서 거둬지는 수익금은 미국의 오케스트라 연금재단에 희사되도록 약속됐다. 이 연주회는 [링컨센터의 예술 공연]이라는 방송 프로그램의 일환이기도 하였다.

연주회는 뉴욕·필의 음악감독인 주빈 메타가 지휘하는 요한 스트라우스의 '박쥐' 서곡으로 시작된다. 이후 약 1시간 30분간은 데니 케이의 익살과 재치, 놀라운 천재, 감동의 순간순간이 연출된다. 그 어떤 지휘자도 만들어낼 수 없는 객석과 무대를 하나로 묶는 진한 감동이 그의 놀라운 재능과 인격에 의해 너무도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또 한가지 우리가 이 비디오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그의 재능은 암보력이다. 시종일관 그는 모든 작품을 외어서 지휘하고 있는데(악보를 읽을 수 없으니 그 방법밖에 없었겠지만) 단 한번의 실수도 없다는 사실이다. 특히 한국 관객에게 데니는 스페셜 서비스를 하고있다. 오케스트라 단원 가운데 한국여성 주자 한사람이 있었다. 그에게 마이크를 들고 다가 선 데니가 우리민요 '아리랑'을 노래하는 대목이다. 놀랍게도 그는 정확한 음정과 가사로 아리랑을 노래하고 있다. 그의 비범한 기억력과 연출력에 누가 감동하지 않겠는가?

이 비디오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또 하나의 감동은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철저한 프로페셔널 정신이다. 데니 케이는 콘서트를 그의 의도 데로 이끌어가기 위해 이따금 단원들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차이코프스키의 '호도까기 인형'을 연주할 때 그는 몇 번이나 연주를 중도에 끊어서 奏者, 특히 바순(Basoon)주자를 약올리고 있다. 그런가하면 림스키 콜사코프의 '왕벌의 비행'에서는 파리채(한국산으로 보인다)를 들고 나와 지휘를 하는가하면 발길질까지 쳐댄다. 그래도 단원들은 싱글싱글 웃으며 충실하게 그의 지휘에 따라준다. 심지어 데니는 단원 전체를 자리에서 일으켰다 앉혔다를 되풀이하는 무례(?)를 감행하지만 단원들은 태연히 따라준다. 이와 같은 상황을 우리 나라의 오케스트라에 대입해 본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역시 최고는 아무나 되는 것은 아닌 듯 싶다. 우리 교향악단 단원들에게 이 실황을 꼭 권한다. 놓치지 마시라 !

데니의 천재는 베토벤의 '운명'제 4악장에서도 경악처럼 등장한다. 4악장 전체를 모두 연주하는 것이 아니고 제시부를 연주한 다음 곧바로 코다로 이행되는데, 이런 대목은 숙달된 지휘자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데니의 솜씨는 너무도 유연하다.

'베니스의 사육제'를 관악 앙상블과 함께 스케트로 연주하는 그의 노래 솜씨도 귀신 곡할만한 대목이다. 엔터테이너로서의 그의 두터운 경력이 보석처럼 빛을 발하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이 비디오는 어떤 대가(大家)의 공연에도 못지 않은 감동을 제공하는가하면, 우리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도록 하는 특별한 메시지를 갖고있다. 단순한 재미가 아닌 깊은 철학적 사색의 여백까지도 만들어 놓고있다.

데니 케이가 암보로 연주한 작품은 놀랍게도 19곡이나 된다.

출처 : http://club.cyworld.com/ClubV1/Home.cy/50597276


 

지휘 / 데니 케이, 주빈 메타
뉴욕 필하모닉 관현악단
링컨 센터, 에이버리 휫셔 홀 연주실황 (1981년 9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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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록된 작품들
1. 요한 스트라우스 / 박쥐 서곡 (주빈 메타\지휘)
2. 롯시니 / 도둑까치 서곡
3. 요한 스트라우스 / 트릿치 트랏치 폴카
4. 차이코프스키 / 작은 서곡 '호도까기 인형' 중
5. 차이코프스키 / 중국의 춤
6. 차이코프스키 / 아라비아의 춤
7. 차이코프스키 / 러시아의 춤
8. 요한 스트라우스 / 친한 사이 '박쥐' 중
9. 베르디 / 개선 행진곡

10. 메릭 / Look sharp march
11. 베토벤 / 교향곡 제 5번의 제 4악장
12. 림스키-콜사코프 / 왕벌의 비행
13. 교향곡 'What'의 제 11악장
14. 폰키엘리 / 시간의 춤
15. 슈베르트 / 교향곡 제 9번의 발췌 <스케르죠>
16. 베토벤 / 교향곡 제 8번의 제 1악장
17. 를로이 앤더슨 / Fiddle Faddle
18. 차이코프스키 / 행진곡 '호도까기 인형' 중
19. 벨락 / 베니스의 사육제
20. 수자 / 성조기여 영원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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