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잭슨은 어린나이에 너무 일찍 스타가 되는 바람에 많은 인기와 돈을 얻었지만,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두 번의 짧은 결혼과 이혼, 연이어 터지는 어린이 성추행 의혹과 언론의 악의적인 보도를 통해 그는 한 순간에 팝의 황제에서 추악한 어린이 성추행범으로 매도되었다.

 

사생활면에서만 아니라 음반 사업에 있어서는 계약사인 소니와 점점 갈등이 깊어졌다. 마이클 잭슨은 자신의 음악세계를 침범당하며 계속 부당한 압력에 시달리며 괴로워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훗날 마이클 잭슨의 죽음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마이클 잭슨의 마지막 앨범  <Invincible>은 불운의 명반으로 불린다.

 

마이클 잭슨은 죽을 때까지 계약사인 소니뮤직과 끝없는 신경전을 벌이며 첨예하게 대립했는데, 특히 이 앨범을 제작하면서 그 대립은 극한까지 다다랐다.

 

소니뮤직의 방해와 묵살로 인해 본인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뮤직비디오가 제작되거나, 싱글이 발매가 되지 않거나, 고의적으로 늦춰지는 등의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You Rock My World>는 프랑스 차트에 5주 연속 1위를 기록하지만 싱글발매 지연으로 빌보드 탑10에도 들지 못했다.

 

<Butterflies>는 미국내에서 라디오 전용으로 싱글 컷 되었으며 CD 싱글컷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큰 반향을 불러 에어 플레이만으로 빌보드 14위 까지 올랐다. (싱글없이 방송횟수와 청취자들의 신청곡 리퀘스트로 탑 40에 진입한것은 '프리티 우먼'이후에 처음이었다고 함) 그러나 끝내 싱글은 발매되지 않았다.

 

911테러를 추모하기 위한 자작곡 <What More I Can Give>또한 발매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앨범은 발매하자마자 1위에 오르며 850만장이 팔렸고 완성도 또한 높아 많은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았다. (하지만 마이클 잭슨이 지금까지 이루어낸 업적에 비하면 너무나 초라한 성적이 아닐 수 없었다.)

 

2001년 마이클 잭슨은 The Rock & Roll Hall Of Fame Foundation(락큰롤 명예의 전당)에 단독 연주자(Performence)

부분에 이름을 올리면서 그는 사상 최초, 최연소로 명예의 전당에 두 번이나 이름을 올린 인물로 기록되었다.

 

그리고 1998년에 이어 두번째로 노벨 평화상에 노미네이트 되었다. 

 

2001년 9월 7일과 10일에는 마이클 잭슨 데뷔 30주년 기념 축하 콘서트<Michael Jackson: 30th Anniversary Celebration, The Solo Years>가 열렸다. 어셔, 크리스 터커, 브리트니 스피어스 등 초초화 게스트가 출연했고 오랜만에 잭슨 파이브가 다시 뭉치는 등 숱한 화제거리를 낳으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2003년 세번째로 노벨 평화상에 노미네이트 된다.

 

2005 년6 월13 일, 미 법정은 마이클 잭슨의 모든 성적 학대 의혹에 대해 무죄 판결이 내린다. 그 해, 마이클 잭슨은 바레인으로 이주를 결심하고 소니와는 마지막 콘서트를 열기로 합의한다. 

그러나 공연을 이틀 압두고 극심한 압박감에 시달리던 마이클 잭슨은 진정제 과용으로 인해 영원히 눈을 감았다.

 

 


01. Unbreakable
 


02. Heartbreaker



03. Invincible



04. Break of Dawn



05. Heaven Can Wait



06. You Rock My World



07. Butterflies



08. Speechless



09. 2000 Watts



10. You Are My Life



11. Privacy



12. Don't Walk Away



13. Cry



14. The Lost Children



15. Whatever Happe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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