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원인> 정부가 외면한 의혹들 1.


119 신고 전부터 비정상이었던 세월호

- 우리사회 연구소 2014년 6월 18일 - 



검경합동수사본부는 세월호가 8시 48분경 3등 항해사와 조타수의 조타실수와 조타기 이상작동으로 균형을 잃었고 이것이 세월호 침몰의 직접적 원인이라고 밝히고 있다. 결국 운전자가 운전실수로 과적차량을 잘못 몰아 전복되었다는 식의 주장이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를 재구성하면 여러 가지 의혹에 부딪힌다. 세월호에는 172명의 생존자들이 살아남았다. 그리고 진도 앞바다의 어민들이 세월호를 목격하였다. 이들은 정부측 분석과는 다른 사실관계를 전하고 있다. 

1) 어긋나버린 세월호 사고시간 

세월호 선원들은 3등 항해사가 조타수에게 5도 변침을 지시하였는데 키가 평소보다 많이 돌아가 15도 가량 돌아가면서 세월호가 균형을 잃고 쓰러졌다고 진술하였다. 



세월호의 AIS 항적기록이 꺼진 시각이 8시 48분 37초이고 정부가 주장하는 항적기록에 의하면 배는 8시 49분 13초경부터 변침하며 8시 49분 37초에 한 번 더 변침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단원고 학생이 119에 구조신고를 보낸 것이 8시 52분이니 언뜻보면 정부가 제시한 AIS 자료가 선원들의 진술에 부합하는 듯하다. 

그러나 세월호 생존자는 이와 전혀 다른 증언을 하였다. <오마이뉴스>는 생존자 이종섭(50)씨가 세월호가 변침 전에 이미 심하게 기울었다고 증언하였다고 보도하였다. 자동화물 기사인 이씨는 3층 후미 좌측 뒤에서 두 번째 방(DR-3)에서 누워 TV를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몸이 발쪽으로 기울었다고 증언하였다. 

"세월호는 오전 7시 30분부터 식사 시간이다. 자고 있는데 옆에 있던 친구가 밥 먹으러 가자고 깨우더라. 나는 그냥 자겠다며 거절하고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본 후 다시 잤다. 그 친구가 밥을 먹고 다시 들어왔다. 그리고 한 10분이나 흘렀나... 8시가 조금 넘어, TV를 보는데 배가 갑자기 기울더라. 야, 야, 이거 뭐냐, 이상하다 해서 바로 밖으로 나왔다." 

이때 이씨는 세월호의 밖에서 바다로 뿌려진 컨테이너를 목격했다고 하였다. 그 후 이씨는 난간대를 잡고 배가 기운 반대 방향으로 올라가 옆에 같이 기대고 있던 한 여성으로부터 휴대전화를 빌려 제주도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고 하였다. 당시 전화를 받은 정성준씨는 "두 번 전화가 왔다. 첫 전화는 8시 43분. 모르는 번호가 뜨길래 안 받았다. 곧 다시 왔다. 받았더니, 종섭이 형님이더라. 난데없이 큰 일 났다고, 배 넘어간다고 하길래, 앞에 있는 시계를 봤다. 8시 45분이었다. '아, 배 들어올 시간인데 장난하지 마쇼' 했다." 

이종섭씨의 증언을 토대로 추적하면 세월호는 최소한 8시 43분 이전에 이미 조난당하였다고 보아야 한다. 정부가 발표한 항적기록에 따르면 오전 8시 43분은 세월호가 변침하기 6분전이다. 변침 6분전에 이종섭씨는 물 위에 둥둥 떠다니는 컨테이너를 보았다는 것이 된다. 

그러나 정부의 항적기록에서 8시 43분과 8시 49분은 실로 커다란 차이를 보이고 있다. 8시 43분은 세월호가 정상운행을 하고 있었어야 한다. 세월호의 속도가 17노트였다면 그 위치가 3.1km 이상 차이날 수밖에 없다. 이는 불가능하다. 

이종섭씨의 증언이 중요한 것은 그가 지인과 통화를 해서 정확한 통화시각을 기록에 남겼다는 점이다. 급박한 상황에서 생존자들은 대개 수 분 가량의 짧은 시간은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고 지나갈 수 있다. 8시 43분에 경험했던 사실을 두고 그 때가 사실은 6분뒤인 8시 49분이었다고 말하였을 때 당사자라고 하더라도 정확하게 반박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항적기록은 6분에 3km가 차이난다. 

결국 생존자들이 모두 잘못된 기억을 말하고 있고 휴대폰도 일시적으로 통화시간이 잘못 기록되지 않는 이상은, 정부가 공개한 항적기록을 재검토해야 한다. 

2) 7시 40분, 보일러실의 충격 

선원들의 증언에 따르더라도, 세월호는 4월 16일 아침 7시 40분경에 이미 긴급한 이상상황에 빠졌던 것으로 보인다. 보일러실에 근무했던 승선원 전모(61)씨가 "오전 7시 40분께 업무를 마치고 업무 일지를 쓰던 중 갑자기 배가 기울었다"며 "창문이 박살나고 사람들이 한쪽으로 쏠릴 정도였다"고 증언한 것이다. 

보일러실은 세월호의 맨 바닥인 기관실 부근에 존재한다. 7시 40분에 창문이 박살날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면 이 충격이 세월호 침몰의 원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을 살펴야 한다. 당시 승선원이 업무일지를 쓰던 중이라 하였으므로 그가 시간을 착각했을 가능성도 거의 없다. 



세월호의 높이는 굴뚝을 제외하였을 때 27m에 이른다. 보일러실에서 창문이 깨졌다고 해서 그 충격의 여파가 세월호 전체로 삽시간에 크게 퍼지기는 매우 어려운 구조이다. 세월호의 기관실과 객실은 1,2층 화물칸에 의해 분리되어 있어 기관실의 소리가 객실까지 전달되기는 사실상 어렵다. 이는 결국, 7시 40분에 같은 현상을 경험한 승객이 없더라도 섣불리 무시할 수 없는 증언인 것이다. 

특히 이 시점에서 이준석 선장은 오하마나호 선장에게 전화를 한다. 이준석 선장이 침몰의 긴박한 상황에서 조타실을 비우면서까지 오하마나호 선장에게 전화를 한 이유는 무엇인가? 

3) 신뢰할 수 없는 세월호 항적기록 

이렇듯 생존자들의 증언을 취합하다 보면 세월호의 선박자동식별장치(AIS)를 수긍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고 만다. 특히 4월 16일, <채널A>는 세월호가 침몰사고가 나기 6시간 전부터 AIS 신호가 끊겼다고 보도하였다. 세월호 침몰 사건 직후 해양수산부에 차려진 상황실에서 대책반 직원들이 갑자기 우왕좌왕하였다고 보도하였다. 새벽 3시 46분부터 선박자동식별장치, AIS 신호가 끊겼다는 것이다. 

이 때 세월호는 전라북도 군산과 변산반도 인근 앞바다를 지나고 있었다. 

또 다른 생존자는 세월호가 군산앞바다와 변산반도 앞바다에서 원인불명의 이유로 인해 일시적으로 15도 가량 배가 기울어지는 사고가 있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생존자 서희근씨는 5월 9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사고 전날 세월호가 변산반도와 군산 앞바다를 지나던 중 갑자기 15도 가량 기울었다가 바로 선 일이 있었다”고 밝힌 것이다. 서씨는 방송에서 “의자에 누워 있으니까 사람이 15도로 확 틀리면서 쓰레기통과 캔, 커피 이런 통들이 ‘우당탕’하고 나뒹굴어졌다”고 말했다. 해병대 출신으로 배를 많이 타보았다는 서씨는 “‘쾅’하고 잠깐 기울었다 원위치로 왔기 때문에 감각을 못 느끼는 사람들은 ‘그러려니’ 했겠지만, 나는 큰 배가 이렇게 충격을 받아 움직이는 경우는 없다고 생각했다”며 “이상하다고 느껴 선상으로 나와보니 잔잔한 바다를 지나고 있어 예감이 안좋았다”고 덧붙였다. 

이 두 가지 사실관계를 모아보면 새벽 3시 40분께 군산앞바다에서 AIS기록이 꺼졌는데 때마침 이 때 배가 15도 가량 기울어 각종 기물이 우당탕하고 나뒹굴었다는 것이 된다. 

또한 진도 수역에서도 8시 48분 이전의 시각에 세월호가 떠 있었다는 주변 어민들의 증언도 이어졌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사고 당일 생존자 구조에 나섰던 정모(52)씨는 “미역을 캐러 나갔다가 사고가 났다는 연락을 받고 현장으로 배를 몰고 나갔는데 배가 이미 3분의 2 가량 물 밑에 잠겨 있었다”면서 “미역을 캐고 들어오다가 (마을 이장으로부터) 연락을 받았기 때문에 오전 9시 훨씬 이전일 것”이라고 했다. 조도 주민 이모(48)씨도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미역 양식 때문에 사고 당일 새벽 일찍 나갔는데 큰 배가 오전 8시께 멈춰 있었다”고 증언했다. 주민 김국태씨도 “어업을 마치고 돌아오는데 커다란 배가 보여 무슨 일인가 싶어 시계를 봤더니 오전 8시 20분이었다”고 전했다. 

물론 어민들의 증언은 관찰지점에서 세월호까지의 거리가 얼마나 되는가에 따라 달라지므로 자세히 확인해야 한다. 세월호가 17노트로 항해하였다면 그 속도는 시속 31.5km인데 멀리서 세월호를 보았을 경우 마치 배가 정지한 것처럼 보였을 수 있기 때문이다. 

4) 정부도 오락가락한 사고시간 

진도군청이 사고 당일 전남도청 상황실로 보낸 ‘세월호 여객선 침몰 상황보고’를 보더라도 사고 발생 시각은 8시 25분으로 혼선을 빚고 있었다. 국립해양조사원도 진도군청과 마찬가지로 세월호 침몰 시간을 8시 30분이라고 항행경보를 내렸다. 국립해양조사원 해도수로과 정우진 씨가 4월 21일 오전 국민TV 인터뷰에서 “해경이나 본부 상황실에 확인을 했는데, 여덟시 반쯤 일어났다. 그래서 저희도 여덟시 반으로 쓴 겁니다”라고 밝힌 것이다. 이들의 인터뷰에 따르면 해경은 8시 52분에 단원고 학생이 119구조신고를 하기 이전에 이미 사고를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이 된다. 

논란이 확산되자 진도군청은 사고발생시각을 8시 25분으로 기입한 것에 대해 담당자의 실수라고 해명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신빙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진도군청과 국립해양조사원, 사고증언 주민들이 모두 “한꺼번에” 시간파악을 실수할 가능성은 매우 낮기 때문이다. 

세월호 침몰의 원인이 되는 사고가 발생한 시각은 언제인가? 이 의혹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 4월 16일 세월호에는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인가? 선박직 승무원 15명은 한명도 빠짐없이 탈출에 성공하였다. 심지어 배 밑바닥에서 근무하던 기관실 선원들조차 승객들에 앞서서 모두 탈출하였다. 이들이 모두 8시 48분까지는 배의 아무런 이상신호를 감지하지 못했다가 사고가 나자마자 신속하게 탈출했다고 보아야 하겠는가, 아니면 8시 48분 이전부터 배의 비정상을 감지한 선원들이 배가 쓰러지자 부리나케 탈출하였다고 보아야 하겠는가. 검찰은 모든 의혹을 남김없이 밝히기 바란다. 


<출처 : http://blog.daum.net/oursociety/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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