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디어 헌터(Deer Hunter)'의 한 장면...
베트남에 파병된 닉이 우체국 직원에게 자기 고향 주소를 전화로 알려준다.
"아뇨 아뇨 클레어톤이요. C, L, A, I..."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터지의 한 부분...
NBA 선수로 등록된 신인 선수의 이름이 아프리카 발음이다. 알파벳으로 써 놓고 옆에 발음 기호로 표기해 준다.
"그의 이름은 피다우시(Firdawsi [FEE-daw-SEE])..."

이걸 한국의 상황으로 풀이하자면, "아 집 주소 불러 드릴께요. 장춘리, 지읒 아 이응 치읓...."
"그의 이름은 장준혁, (다음과 같이 발음한다 [jan-juin-heek])..."

전화에서 지명의 철자를 불러주고 인쇄된 글자의 발음법을 표기해 준다... 영어 문화권에선 당연히 여겨지는 현상이지만, 한국에서는 상상도 하기 어려운 일이다.  

불러 줘도 못 받아쓰는, 써 놓고도 읽지 못하는 표음 문자 "영어". (정확히 말하면 '영어 알파벳')
뭘 불러 줘도 바로 받아쓰는, 써 놓으면 누구나 똑같이 읽을 수 있는 표음 문자 "한글".



한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표음 문자 

 

MBC에서 한글날마다 방영하는 특집 다큐멘터리를 본 사람은 알겠지만, 수 차례의 엄격한 실험 결과, 지구에서 발생되는 모든 음을 가장 비슷하게 흉내내고 가장 비슷하게 표기할 수 있는 민족은 바로 한국인인 것으로 밝혀졌다. (음성 오실로스코프 비교 결과)
(태평양 도서 지역 및 정글 지역에는 레코드 테이프처럼 소리를 똑같이 흉내내는 부족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은 문자를 사용하지 않으며 멸종 위기의 극소수 민족이라 제외한다.)

한국인이 다른 민족보다 오감이 더 뛰어나서 그런 것이 아니라 한글을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다큐멘터리에 나온 실험을 직접 보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McDonald Hamburger를 중국 일본 한국어로 어떻게 표기하는지 비교를 해보면 쉽다. (인터넷에 떠도는 한국인이 직접 겪은 사례 - 작자 미상)


McDonald Hamburger
중국: 麥當勞 漢堡 (마이당로우 한뽀우
일본: マクドナルドハンバ?ガ? (마꾸도나르도 함바가)
한국: 맥도널드 햄버거

(보다시피 한글은 중국 일본어의 엉터리 영어 발음까지 정확히 표기해 주고 있다.)

소리를 들으면 그와 가장 가까운 문자 신호로 표기를 한다:
이는 표음 문자가 가지고 있어야 할 가장 기초적이고 중요한 기능이다.
한글은 이 기초적이고 중요한 기능에 다른 어떤 언어보다도 우수하다.



한글의 우수성은 외국 언어학자들이 더 잘 안다

재미있게도 한글의 우수성에 대해 가장 무지한 민족은 한글을 직접 사용하고 있는 한국인들이다.
한글의 우수성에 대해 체계적으로 정리된 문서는 한국 온라인에서 찾기 어려우며, 한글 문자체계에 관한 출판물은 오히려 영문으로 더 자주, 더 자세히 나와 있다.

그 중 하나를 소개하자면, 빅토리아 프롬킨 교수의 "An Introduction to Language."

전세계에서 언어학 기초 교재로 사용되고 있는, 대표적인 언어학 교과서다.
(빅토리아 프롬킨Victoria Fromkin 교수도 언어학 계의 굉장한 거물이다. 궁금하면 검색해 보시길.)

이곳에서 한글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발췌해 보았다. (5th edition, 375p-37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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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의 언어학자는 아이슬란드 인들이라 할만하다.
세계 최초로 언어문법에 대한 기록을 남긴 이들은 12세기에 자국의 언어를 만들기 위해 라틴어 알파벳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들은 라틴어 알파벳을 도입하면서 독창성을 발휘, 라틴계열 언어와 영어에서 사용되던 유성음과 무성음 구분을 없애 버렸다.
(예를 들어, [f]와 [p], [v]와 [b]...)
자연적으로 이들 유성/무성음 쌍은 구분이 힘들다는 결론이었다.

조선의 세종대왕.
그는 3만자도 넘는 중국어 때문에 자국민 중 문맹이 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조선 고유의 문자 "한글"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세종대왕은 수백년전 아이슬란드의 선각자들과는 달리, 기존의 (중국어) 언어 시스템을 받아 들이지 않았다.
그는 당시 조선을 방문한 인도 학자를 통해 힌두어의 표음문자 체계를 활용했다.

세종대왕은 한글 창제 과정에서 놀라운 통찰력을 보인다.
(The Korean alphabet, called hankul, was conceived with remarkable insight.)
한글 문자는 발음기관의 모양을 본떠 만들었다.
예를 들어 ㅅ은 앞니와 혀가 서로 마주하는 모습을 본떴고, 여기에 획을 하나 그어 흡기(내쉬는 숨)를 표현했다.
즉, ㅅ에 획을 그어 ㅈ로 만들면 발음시 내쉬는 숨이 더 세지고, 여기에 획을 하나 더 그어 ㅊ로 만들면 내쉬는 숨이 더 세지는 식이다.
이 방식은 지극히 효과적이다.
"마이 페어 레이디(My Fair Lady)"의 히긴스 교수의 모델로 유명한 세계적 언어학자 헨리 스윗(Henry Sweet) 박사는 영어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 완벽한 표음 문자를 만들려 했을 때 이 한글의 방식를 이용했다.
(스윗 박사가 한글 표음문자 시스템을 직접 보고 배운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음. - 역자 주)
...............

세종대왕은 수백년전 아이슬란드의 선각자들과 같은 결론에 봉착했다.
그는 중국어에서 사용되고 있던 유성/무성음 구분이 비효율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한글 문자 체계에서 제외시켰다.
그리고 당시 조선민들은 [l]과 [r] 발음을 구분해 사용하고 있었으나, 이런 비슷한 문자 발음은 혼동만 일으킨다고 판단해 구분에서 제외시켰다.
...............

한글은 음절을 구분하는 데에 탁월하다. 한글의 자음 모음이 붙어 있으면 이것이 그대로 음절(syllable)이 된다.

이는 세계 다른 어떤 표음 문자에서도 발견되지 않는 독특한 특징이다.
유럽어, 아랍어, 중국어, 일본어... 어디에서도 음절을 한국어처럼 정확히 끊어서 표기해 주지 않는다.
(syllable의 음절을 끊으면 syl-la-ble 이렇게 따로 나눠야 한다. 하지만 한글은 실러블, 이렇게 글자 하나가 음절 하나로 떨어진다. - 역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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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는 왜 '무능한' 표음 문자가 됐나

기본적으로 영어는 표기하는 대로 발음되지 않는, 발음하는 대로 표기되지 않는 장애 표음문자다. 물론 영어만 그런 것이 아니다.
비교적 정확한 표기-발음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는 이태리어, 스페인어 역시 발음하는 대로 표기되지 않는다.
이건 라틴 계열 알파벳이 애당초 발음과 표기 대응이 일대일이 아니라서 그렇다.
c를 예로 들자면, 이미 라틴어 시절부터 [s]와 [k] 발음을 모두 갖고 있었다. g x도 마찬가지다.
거기에 위 프롬킨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알파벳엔 c와 s처럼 겹치는 발음은 물론 너무 비슷한 발음이 많다.
[b]와 [v], [f]와 [p], [th]와 [s], [l]과 [r]...

하지만 한글은 겹치는 알파벳이 없다.
ㄱㄴㄷㄹㅁㅂ... 모두 확연히 구분되는 고유한(unique) 발음을 가졌다.
완벽한 일대일 대응.
이처럼 철저히 정리된 언어는 드물다.

영어의 자음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영어의 모음은 경악스러울 정도의 혼돈 그 자체다.

규칙과 기준이 없어 써놓고도 옆에 발음 기호를 표시해야 한다.
애당초  a e i o u, 이 5개의 모음 체계가 워낙 박약했던데다, 15-17세기에 Great Vowel Shift라는 모음 체계 변화를 겪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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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reat Vowel Shift

원래는 영어도 나름 규칙과 절도가 있는 표음 문자였다.
엄격하기로 소문난 라틴어에서 탄생한 언어인 관계로, 최소한 쓰면 누구나 따라 읽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것이 15-17세기 들어서면서 사정이 바뀌었다.

아주 간단히 요약해 버리자면, 단음절로 끝나는 모음이 장음/연음으로 바뀐 현상을 말한다.
원래, "name"은 중세 영어 발음은 "나메"였다. 쓴 그대로 읽었다.
그런데 이게 Great Vowel Shift를 겪으며 "네임"으로 바뀌었다.
"feet"는 원래 발음은 "페트"였다. 이게 "피이트"로 바뀐 것이다.
"ride"는 원래 "리데" Great Vowel Shift 때문에 "러이드"로, 다시 "라이드"로 바뀌었다.
"house"는 원래 "호우제"라고 읽던것이 "하우스" 바뀌었다.

바로 이것이 오늘날 영어 모음 체계를 완벽하게 엉망으로 만들어 버린 Great Vowel Shift의 실체다.
Michael 같은 단어는 원래 "미카엘"이 맞는 발음이다.
Dido 역시 원래 "디도"가 맞는 발음이다. "다이도"가 유식한 발음인 것처럼 아는 동양인들은 미국/영국식 촌뜨기인 셈이다.
Great Vowel Shift은 수 백년에 걸쳐 일어난 변이인데, 일어난 원인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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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런 점 때문에 헨리 스윗 박사나 자멘호프 같은 서양의 선각자들이 완벽한 표음문자를 만들어 내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할 수 밖에 없었다.


한글은 스스로 위대한 표기 시스템이다

표음문자 시스템으로 한글처럼 완벽함을 자랑하는 문자는 세상에 없다.
특히 한글이 보유한 강력한 모음 조합 시스템은 인류가 멸종할 때까지 다시 개발되지 못할 정도로 완벽하다.

이건 영어하고 비교해 봐도 금방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외국에서 한글이 위대하다고 해줘야 아는 모양이다.
위에 '외국인 사례'로 든 프롬킨 교수의 글은 한글이 위대하다고 말하기 위해 쓴 글이 아니다. 표음 문자들의 표기법이 어떻게 다른가 이해하기 위해 한글을 사례로 든 것 뿐이다.
프롬킨 교수는 특정 언어에 대해 원래 가치 판단을 하지 않는다. (다른 저명한 언어학자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단지 프롬킨 교수는 한글이 다른 표음문자에 비해 왜 더 특수한지, 왜 더 공학적인 관점에서 더 아름답게 만들어졌는지 차분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러나, 한국 학교는 세종대왕이 엄청나게 대단한 사람이라고 하면서, 정작 왜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는지 가르쳐 주지 않았다.
한국 학교는 "한글이 세계의 인정을 받은 과학적인 언어라고" 가르쳤지만 정작 왜 한글이 그런 칭송을 받는지 가르쳐 주지 않았다. (최소한 내가 다닐 땐 그랬다.)
교육을 잘못 받은 덕에 한국인들은 한글의 위대함을 증명하는 수 많은 증거를 들이 밀어도 믿질 않는다.
"그거야 한국 사람들 혼자 그러는 얘기지!"

지독한 패배주의다.
학교에서 '서양인들이 그렇다더라' 사대주의 껍데기 교육만 시켜준 결과다.

'학교 다닐 때는 속았지만 이제는 속지 않겠다'는 심리일지도 모르겠다.


덧붙임
"영어에는 단어도 많고 콘텐트도 더 많으니 한글보다 낫다."
이런 답글을 달려거든 문화 관광부에 가서 하소연하시기 바란다. 언어가 창제된 시기가 다르고 사용된 환경이 다르다.
태고적 영국인들에게 라틴어와 한글 두 개의 문자를 던져 주었다면, 당신들은 과연 어떤 언어가 도태되고 어떤 문자가 살아남았을 것이라 생각하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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