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사용자’ 확인과 추적이 필요하다


- 경향신문  2016년 6월 20일 -





▲ 최경호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우리에게 성찰과 반성을 요구한다. 소비자의 안전에 눈감고 이익을 우선시한 일부 기업, 안전성 확인과 감시에 소홀했던 학계, 안전 관리에 무능한 국가, 모두가 문제였다. 법제도와 기업의 광고를 믿었던 소비자만 피해자였다. 가장 커다란 문제는 국가다. 정부는 이미 여러 차례 기회를 놓쳤다. 피해의 원인이 밝혀진 2011년 여름에 즉시 정부는 진상규명과 피해자에 대한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했어야 했다. 이듬해 12월 정부 차원의 조사가 시작되었지만, 그나마도 환경보건학회가 자체적으로 수행한 조사결과가 발표된 다음이었다.


폐질환에만 초점을 맞춘 현재의 조사 및 지원 방향도 문제다. 가습기 살균제의 전신 독성이 의심되고 있기 때문이다. 배 속 태아에까지 폐질환을 일으켰고, 살균제에 노출된 새끼 쥐가 배 속에서 죽었다. 호흡기를 통해 들이마신 가습기 살균제 성분이 태반을 통해 태아에게 전달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험동물에서도 전립선과 흉선 등에 독성을 초래하고 동맥경화를 유발시킬 수 있음이 제시되었다. 가습기 살균제의 피해가 폐 이외의 장기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다행히 현재는 증상이 없지만 아이가 나중에라도 질병에 걸리면 어쩌나 걱정하는 시민들이 적지 않다. 원치 않는 이런 상황이 혹시라도 발생한다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환경부는 ‘폐 이외의 다른 장기에 대한 영향 여부 등’을 조사 연구할 계획이라 밝혔다. 조사 연구도 좋지만 적절한 관리가 더 중요하다. 폐질환이 현재 없더라도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적이 있는 사람들을 찾아내어 추적 관찰해야 한다. 최소한 제품이나 구매 영수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도 찾아야 한다.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불안을 조금이나마 가라앉히고 만에 하나 발생할 수 있는 건강피해에 먼저 대응하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이다.


수년 전 영수증을 지금까지 보관한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구매영수증을 재발급받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 현행법상 판매자의 영수증 기록 보관 시효는 최대 5년이다. 2011년 6월 이전의 판매 자료는 찾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질병관리본부가 가습기 살균제를 폐질환 원인으로 발표한 건 2011년 8월31일이다. 벌써 4년9개월이 지났다. 이 순간도 시간은 흐르고 있다. 5년이 지난 판매 기록을 복원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가능한지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적어도 2011년 6월부터 8월31일까지 석 달 만이라도, 또는 가습기 살균제 수거명령이 내려진 그해 11월11일까지라도 제품을 구매한 기록을 찾을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 국민을 도와야 한다. 소매업체들은 문제가 된 제품의 판매 기록을 자체적으로 확인해서 잠재적 피해자에게 고지하거나 국가에 제공하는 방법이 있는지 적극적으로 알아봐야 한다. 이 엄청난 사건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 있는 자세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1960년 즈음 유럽 등지에서 대규모로 발생한 탈리도마이드 사건과 비교된다. 임신 여성에게 처방된 탈리도마이드 때문에 세계적으로 1만명 이상이 물개처럼 짧은 손발을 갖고 기형아로 태어났다. 생존자들은 아직도 후유증에 시달린다. 일찍이 독일, 영국 등은 국가의 관리 소홀로 인해 발생한 피해를 구제하기 위해 연금제도를 마련했다. 연령이 증가하며 피해자들의 만성 통증과 기능 손실로 인한 피해가 더욱 심각해짐에 따라 최근 들어 연금도 6배까지 인상하였다. 사건이 발생한 지 50년이 넘었지만 탈리도마이드 피해는 현재진행형이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 피해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반성과 대응도 긴 호흡으로 책임 있게 이루어져야 한다. 폐손상 피해자뿐만 아니라 가습기 살균제 사용자에 대한 등록과 장기적 추적 관찰 체계를 마련해야 하는 이유다.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6202048045>




출처 : Irene의 스크랩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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