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스빠악을 만나기 위해 해안가에 위치한 카약 클럽에 도착했을 때 바닷가에는 많은 사람들이 빙산을 헤치며 카약을 즐기고 있었다.
“사람들이 참 많네요!” “다음 달 중순쯤에 카약 대회가 열리거든요. 다들 그 대회를 준비하는 중이에요.” 대답한 사람은 까스빠악의 여자 친구인 피아였다. 예쁘고 귀여운 열일곱 살 소녀였다.
“그린란드에서는 해마다 도시를 바꿔가며 카약 대회가 열려요.”
피아 옆에 서있던 다른 아가씨가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이름은 칸 마리아, 피아의 언니였다. 마리아는 북극 호텔 주방에서 주방 보조로 일을 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의 진짜 직업은 따로 있었다.
“언니는 카약 챔피언이에요.” 피아가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내밀어보였다.
마리아와 피아는 아버지와 함께 올해 시시미우트에서 열리는 카약 대회에 함께 출전할 예정이며 목표는 종합 3위라고 했다. 속으로 ‘카약 집안이로구나.’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피아가 “우리 집에 가볼래요?”하고 말했다. 이렇게 붙임성 있는 사람들은 정말 처음이다.
도착한 곳은 언덕 위의 파란 집이었다. 오래된 건물이었지만 내부는 아주 깔끔하고 무엇보다 ‘전망 좋은 방’들이 있었다. 창 밖으로 북극의 바다와 빙산들이 보이는 방이라면 더 바랄 게 뭐가 있겠는가? 하지만 정작 내가 놀란 건 집안에 걸려있는 수많은 사진과 트로피, 메달 때문이었다. 한쪽 벽은 아예 금메달로 가득 찰 정도였다. 알고 보니 ‘피아’의 가족은 일루리사트에서 유명한 카약 챔피언 가족이었다.
“난 두 살 때부터 카약을 탔어요.” 피아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천장 끝 양쪽으로 두꺼운 줄이 두 갈래로 묶여 있었는데 실내에서 카약을 훈련하기 위한 장치라고 했다. 까스빠악이 시범을 보여준다며 줄을 잡고 한 바퀴 휙 돌아 다시 제자리로 올라와 앉았다. 카약을 타고 물속으로 들어가 회전하는 동작이었다. 피아도 질세라 비슷한 동작을 보여주었다. 놀랍고도 황홀한 움직임이었다. 이러한 롤링 기술은 카약 조종법의 핵심이다. 빙산이 무너지면서 생기는 쓰나미로 배가 뒤집힐 때 다시 물 위로 솟아오르기 위해서는 이런 훈련을 필수적으로 거쳐야 한다. 역시 챔피언 집안은 그냥 나오는 게 아니었다.
잠시 후 다들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화의 주제는 여전히 ‘카약’이었다. 카약 대회는 일주일 동안 계속된다고 한다. 이제는 일상생활에서 더 이상 카약이 사용되지 않기 때문에 이런 대회를 통해서 그린란드의 전통을 지키고 이어나가는 것이다. 마리아는 카약 대회에 최대한 집중하기 위해 직장까지 그만두었다고 한다.
“꿈이 뭐예요?” 내가 묻자 그녀는 ‘카약’이라고 대답했다.
“카약은 내 인생이에요.” 네 살 때부터 카약을 시작해서 이미 수백 개의 메달을 거머쥔 카약 챔피언의 대답이었다.
나노끄, 카약에 오르다
“어이, 나노끄!” 어느 날 바닷가에서 카약을 타고 있던 닉이 나를 불렀다. 나는 손을 들어 화답했다. “탐험대는 어때? 다들 무사히 잘 가고 있는 거지?”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닉은 카약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거 타볼래?” “정말?”
그렇게 해서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카약에 올랐다. ‘아마우끄(북극늑대)’라는 이름의 빨간색 카약이었다. 다리를 쭉 펴고 앉자 엉덩이까지 수면 아래로 푹 내려간다. 그야말로 물속에 잠겨 배를 타는 기분이다. 노를 저을 때마다 상체가 좌우로 흔들리는 바람에 금방이라도 카약이 뒤집힐 것만 같았다. 만일 이게 뒤집히면? 이곳 사람들처럼 몸을 돌려 회전하는 기술이 없으니 아마 물속에 거꾸로 처박힌 채 바동거리게 될 것이다. 끔찍하다.
“어이, 나노끄! 저기 저 빙산까지 갔다 올 수 있겠어?”
닉이 웃으며 소리쳤다. 나는 고개를 돌려 닉을 한번 보고 다시 바다 위의 빙산을 보았다. 멀지 않은 거리였지만 나 홀로 카약에 앉아서 바라보자니 정말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해볼까, 말까? 나는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힘차게 노를 저었다. 그러자 카약은 바람을 가르며 쭉쭉 앞으로 나아갔다. 빙산이 늘어선 북극의 바다에 내가 떠있다. 눈앞에는 빙산이 보이는데 등 뒤로는 땀이 줄줄 흐른다. 기록되지 않을 나의 비공식 스펙 중에 또 하나의 항목이 추가되는 순간이다. ‘빙산이 떠있는 북극 바다에서 카약을 타봤음.’
이런 체험까지 해봤으니 먼 훗날 내 추억 속 ‘회상의 채널’도 그만큼 다양해지지 않을까? 노의 양날에 흥분과 두려움을 매단 채 카약은 어느새 빙산을 돌고 있었다. 나의 그린란드 탐험 일정도 어느새 반환점을 지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