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김영란법, 잃는 것보다 얻는 게 많다


- 경향신문  2016년 7월 25일 -





▲ 이지문

한국청렴운동본부 본부장, 정치학박사



오는 9월28일 시행을 앞두고 있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하 ‘김영란법’) 시행령이 지난 22일 국무조정실 규제개혁심의위원회에서 원안대로 통과됐다. 이제 법제처 심사, 차관회의를 거쳐 국무회의 의결을 남겨두고 있다.


그러나 이번 규제개혁심의위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해관계자로 참여한 농림축산식품부, 해양수산부, 중소기업청은 이 법이 시행되면 연간 농축수산물은 2조3000억원, 음식점 수요는 4조2000억원이 감소될 것으로 추정하면서 원안 개정을 요구하였다.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피해 예상액을 음식업 8조5000억원, 골프장 1조1000억원, 선물 1조9700억원 등 총 11조6000억원으로 추정했다. 이러한 피해 추정치 자체가 통계 오류거나 업계의 일방적 주장을 반영했다는 비판이 있긴 하지만 그 비판 역시 중요한 부분을 간과하고 있다.


시행령에서는 공직자로 칭하는 공무원, 공직 유관단체 임직원뿐만 아니라 사립학교 교직원, 사학재단 임직원과 언론사 기자 및 직원이 직무관련자로부터 원활한 직무수행과 사교·의례·부조 등 목적으로 제공받을 수 있는 식사·선물·경조사비에 대해서 각각 3만원·5만원·10만원을 상한액으로 하고 있다.


바로 이 내용 때문에 앞서 언급한 관련 업계의 막대한 피해가 있게 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공직자의 경우는 2003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행동강령에 의해 직무관련자로부터 통상적인 관례의 범위에서 제공되는 음식물 또는 편의나, 직무와 관련된 공식적인 행사에서 주최자가 참석자에게 일률적으로 제공하는 교통·숙박 또는 음식물 등을 제외하고는 원칙적으로 받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이처럼 지난 13년 동안 시행되고 있는 행동강령으로 공직자는 3만원 이하 식사든 5만원 이하 선물이든 원칙적으로 받지 못한다. 공직자 입장에서는 김영란법의 규정이 새로울 것도 없고, 이 법이 시행된다고 해서 관련 업계의 피해가 대폭 늘어날 이유도 없는 것이다.


김영란법의 적용대상자 수가 공무원 124만명, 공직 유관단체 임직원 36만명, 공립학교 교사 40만명, 사립학교 교사 18만명, 사학재단 임직원 2만명, 언론사 기자 및 직원 16만명 등 약 236만명으로 추산된다. 이 중 기존 행동강령을 적용받는 공직자가 약 200만명으로 김영란법 대상자의 약 85%가 되는 셈이다.


결국 이 법으로 직무관련자로부터 금품 수수 제한에 걸리는 추가 인원은 불과 36만명밖에 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이들로 인한 관련 업계 손실은 몇조, 몇천억원 수준에 한참 못 미칠뿐더러 설령 단기적으로 관련 업계 피해가 있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궁극적으로는 우리 사회의 투명성을 제고함으로써 오히려 경제성장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법이 금지하는 것은 비싼 식사나 고급 선물 자체가 아니라 그러한 것을 대접하면서 조그마한 그 무엇인가라도 이득을 얻고자 하는 잘못된 접대문화 자체에 있다는 점이 보다 강조돼야 할 것이다.


김영란법이 식사 3만원, 선물 5만원 같은 지엽적인 내용으로 본래의 취지가 훼손되는 것이 못내 아쉽다. 이 법은 부정청탁을 받고 실행한 이에 대한 처벌뿐만 아니라 부정청탁자에 대해서도 과태료를 부과하고 부정청탁을 재차 할 경우 소속기관장에게 서면신고함으로써 부정청탁을 예방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직무관련성이 없더라도 1회에 100만원 이상, 1년에 300만원 이상 받으면 처벌함으로써 스폰서처럼 당장 대가성이 없다 하더라도 향후 문제가 될 여지를 차단하고자 하는 것이 입법 취지다.


하나 더 붙인다면 김영란법에서 정한 기준은 우리보다 경제규모가 더 큰 미국이나 독일, 영국 등과 비교했을 때 더 엄격하지 않다는 것이다. 독일 대통령이 주지사 시절 기업으로부터 100만원 정도 휴가 지원을 받은 것이 문제가 돼 사임하고 뇌물수수로 재판에 회부되기도 했다.


이는 공직자가 한화 기준 1만5000원 이상 받을 수 없다는 규정 때문이었다. 미국 역시 20달러 이상 선물을 금하고 있고, 같은 사람으로부터 연간 50달러 이상 받지 못하도록 하는 규정으로 식품의약청 연구원이 제약회사로부터 45달러짜리 스웨터 하나를 받았다는 이유로 해고당하기도 했다.


부패는 당장 누구의 이익, 피해를 따질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의 부패인식지수는 100점 만점에 56점으로 34개 OECD 국가 중에서 공동 27위에 불과하다. 세월호 참사도 결국 부패 때문에 발생했다는 점에서 부패로 인해 누구든지 잠재적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 지엽적인 피해에 대한 우려를 넘어서야 할 것이다.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7252123015>




출처 : Irene의 스크랩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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