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호연 칼럼]


‘개·돼지 민중’과 최저임금


- 경향신문  2016년 7월 11일 -





▲ 조호연

경향신문 논설위원



교육부 나향욱 정책기획관의 “신분제를 공고화시켜야 한다”는 발언은 두렵고 섬뜩하다. 평등을 근본으로 하는 헌법을 부정하는 내용이라서만은 아니다. 특권층의 내심을 무심코 대변한 것 아닌가 싶어서다. 현실을 둘러보면 그렇게 의심할 만한 정황이 널려 있다. 상위 1%의 부와 권력, 명예 독점 현상은 갈수록 고착화되고 있다. 나머지 99%는 1%가 부여한 질서 속에서 신분의 장벽을 넘지 못한 채 하층민으로 살아간다. 마지막 남은 계층 이동 통로였던 교육마저 작동을 안 한 지 오래다. 오히려 서열화된 교육이 부와 권력을 세습하면서 하위 계층의 진입을 막는 합법적 수단 역할을 하고 있다.


나 기획관의 언행을 일부 얼빠진 공무원의 망상만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는 이유다. 우리 사회가 각자도생의 단계를 넘어 계층 동맹을 추구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민중은 개·돼지로 보고 먹고살게만 해주면 된다”는 그의 발언은 신분제를 전제로 한다. 하지만 내용은 보다 거칠고 위험하다. 윤리·도덕이 땅에 떨어지고 타인에 대한 애정과 연대가 사라진 사회를 희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시대인으로서 동질감이나 공감을 상실한다면 그런 사회는 약육강식의 정글과 다를 바 없다.


나 기획관이 드러낸 반사회적이고 반공동체적 인식은 최저임금위원회에서도 부분적으로 목도할 수 있다. 최저임금위 사용자 측은 내년도 최저임금 동결을 주장했다. 7년 연속 동결 요구다. 경제가 성장하고 물가가 오르는데 최저임금을 올릴 수 없다는 주장은 민중을 먹고살게만 해주면 되는 동물로 보는 나 기획관의 인식과 다르지 않다. 이들은 영세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이 어려워진다는 이유를 대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자영업 경영난은 갑질 등 대기업의 불공정거래와 임대료, 원자재 가격 인상 탓이라는 연구결과가 많이 나와 있다. 사용자들이 최저임금을 자영업자와 저임금노동자의 ‘을 대 을’ 대결로 몰아가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지 않고서야 할 말이 아니다. 중소기업·자영업을 입에 달고 사는 사용자 측이 정작 중소기업에 힘이 되는 대·중소기업 간 이익공유제나 영세자영업을 위축시키는 대형마트·SSM 문제를 외면하는 것은 진정성을 의심케 한다.


사용자 측이 제시한 1인 한 달 생계비 103만원은 비현실적이다. 이 주장의 허구성은 한 저임금노동자의 지출내역만 봐도 금방 드러난다. 단칸방 월세와 공과금 40만원, 식비 30만원, 교통비·통신비 10만원, 옷·생필품·소모품비 15만원…. 여기까지만 해도 벌써 95만원이다. 그가 적자인생을 면하려면 아파서도 안되고, 친구를 만나도 안되고, 회식은 물론 영화를 관람해서도 안된다. 경조사도 모두 외면해야 한다. 한마디로 인간다운 삶을 포기해야 한다.


월 식비 30만원에 주목하기 바란다. 한 끼니에 3000원 남짓이다. 이러니 컵밥에 500원짜리 계란프라이를 먹을지 말지를 놓고 서글픈 고민을 하게 된다. 부산의 알바 대학생은 월 9만원 적자 가계를 메꾸려고 유통기한이 지나 버리는 편의점 폐기음식을 먹고 산다. 스물 전후 청년이 폐기음식을 먹으며 자신의 인생도 꽃피기 전에 그대로 폐기될까 두려워한다. 이들은 용돈벌이가 아니라 온전히 생활을 위해 알바를 한다. 저임금노동자 10명 중 7명은 가구의 주요 소득원, 즉 가장이다.


창문 없는 고시원에서 살면서 친구 만나는 것조차 사치인 청년들이 미래나 희망을 얘기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그냥 먹고살아가는 것, 사육되는 것이다. 그리스 신화의 노상강도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처럼 돈에 맞춰 팔다리 자르듯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기본 욕구를 자르는 것이다. 나 기획관이 강변한 민중의 삶과 다를 바 없다.


한 달 생계비 103만원을 주장한 사용자 위원에게 “당신이 그 돈으로 살아보라”는 오바마 대통령의 발언을 그대로 전하고 싶다. 그는 103만원이 자신은 물론 자식들의 월소득이 되지 않을 것을 알기에 함부로 말하는 것이다. 정부 기록으로도 34세 이하 1인가구 한 달 평균 생계비는 214만원이다. 이는 노동자 측 최저임금 1만원(월 209만원) 요구안의 합리성을 보여준다. 평균 소득 60만~90만원인 저임금노동자들에게는 언감생심이다. 최저임금 1만원은 청년들에게 하나의 인간으로 존재케 하는 최저 보장수단이다. 그들이 미래를 계획하고 준비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나 기획관 발언 사태는 역설적으로 위험수위에 육박한 한국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 노동자들의 피폐한 삶을 경고한다. 노사 의견대립으로 10차례 공전한 최저임금위가 어제 회의를 재개했다. 나 기획관 말과 달리 한국이라는 공동체가 구성원의 협력과 배려, 희생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보고 싶다. 그게 안된다면 규칙을 바꾸는 수밖에 없다.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7112054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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