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국가 책임을 사회적 약자에 떠넘겨서야


- 경향신문  2016년 6월 14일 -





▲ 김한종

한국교원대 교수 (역사교육학과)



세월호 인양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명확하지 않았던 사고 원인이나 구조 지연을 비롯한 여러 사실들이 밝혀지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세월호 인양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여전하다. ‘1000억원 이상의 비용을 들여 인양하는 것이 무슨 이익이 있느냐’는 식의 경제 논리를 내세우기도 하고, 인양작업을 하다가 추가 희생자가 생길 수 있다는 안전의 문제를 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반대 주장 중에는 ‘그렇게 해서 밝히려는 사실이 무엇이냐?’와 같은 조롱 섞인 비아냥도 여전하다.


죽은 학생들을 영웅시한다거나, 유가족들이 죽은 자녀를 이용해서 돈을 벌려고 한다고 조롱한다. ‘좌빨’들이 세월호 사건을 정부를 비판하는 데 이용한다는 공격도 흔하다. 심지어 아직 찾지 못한 희생자 시신을 ‘물고기밥’이나 ‘어묵’으로 불러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기도 하였다. 어떤 사건으로 희생자가 생길 때마다 ‘특별법을 만들어 국가에 배상을 요구하면 되지 않느냐’는 식의 비아냥도 거듭되고 있다. 아직 발견하지 못한 희생자 시신을 찾고, 사고 원인을 규명하여 책임을 명확히 하고 앞으로 비슷한 희생을 막아야 한다는 세월호 인양의 이유를 다시 강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보다 심각하게 돌이켜보아야 할 문제는 희생자를 조롱하는 이런 목소리들이 나오는 사회 현상이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을 비하하거나 조롱하는 말을 만들어내는 것은 주로 ‘일베’라고 불리는 사회집단으로 알려져 있다. 일베는 처음에는 대부분 젊은층이었지만, 점차 이런 활동을 하는 노인들도 늘고 있다. 현재 한국사회는 실업의 증가, 비정규직의 확대로 인한 고용 질의 저하, 저출산에서 비롯된 청년 부담의 증가 등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이런 문제들을 청년층 자신이 아니라 기성세대가 만든 것으로 국가가 책임져야 할 과제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사회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청년들은 국가의 행위로 인한 피해자들이다. 국가는 이들의 피해에 대한 책임이 있다. 그런데 한국사회는 그런 책임을 국가가 아니라 피해 당사자나 다른 구성원에게 떠넘긴다.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수준에 있는 노인생활 안정이나 50대 후반~60대 초의 ‘낀 세대’가 안고 있는 문제도 마찬가지다.


국가에 의한 희생자라고 생각하면서도 국가의 배상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배상을 받거나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화풀이를 한다. 똑같이 피해를 입었는데도 사회적 처지가 자신보다 낫다고 생각해 분노한다. 이들이 자신보다 나을 것이 없다고 생각하면 화풀이는 더욱 강해진다. 국가에 의한 피해로 생기는 스트레스를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해소하는 것이다.


얼마 전 일어난 ‘강남역 살인사건’이 여성혐오 범죄인가 정신질환자의 우발적인 묻지마 살인인가를 놓고 사회적 논란이 벌어진 바 있다. 일부 언론들이 이 사건의 본질과는 거리가 먼 남녀 대립을 부각시키고 경찰은 조현병 환자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할 수도 있는 전수조사와 강제입원 방침을 발표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강남역 살인사건’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여기에서 다시 논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설사 살인 행위가 정신질환 때문이라고 하더라도, 그 대상이 여성인 것은 그와는 별개의 문제이다. 피해나 분노의 표출 대상이 사회적 약자라는 사실 자체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국가나 정부가 져야 하는 책임을 사회구성원 개개인에게 떠넘긴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럴 경우 국가의 보상이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대가를 사회적 약자에게서 찾으려고 한다. ‘국가’라는 강자에게 눌린 자신의 힘을 사회의 다른 약자에게 발휘하고 싶어 한다. 국가를 향해야 할 분노의 대상이 사회적 약자로 바뀌는 것이다. 그래서 정신적, 물질적 보상을 찾고자 하지만,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이들을 분노의 표출 대상으로 삼는다. 묻지마 살인이라고 표현되는 사건들이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하는 까닭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를 해결하는 길은 국가의 행위로 희생을 당하거나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책임지고 보호하는 것이다. 그리고 국가가 이런 역할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사회구성원들에게 납득시키는 것이다. 그것이 한국사회에 널리 퍼지고 있는 다른 사회구성원들에 대한 혐오감이나 조롱을 없애고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만드는 길이다.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6142046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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