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반드시 기억해야 할 <대한민국 악인열전>


진실의길  정운현 칼럼


- 2016년 3월 9일 -




언론인이자 역사저술가로 왕성한 저술활동을 하고 있는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은  1989년~90년 사이에 <변절자>, <한국 곡필사>, <유신시대의 곡필> 등 세 권을 잇달아 출간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런 종류의 책은 찾아보기 어렵다. 김 전 관장은 <변절자> 서문에 이렇게 쓴 걸로 기억한다.


“충신열사(忠臣烈士), 효부열녀(孝婦烈女)를 기록한 책은 차고 넘치는 데 비해 반역자나 간신배, 모리배 등 악인의 삶을 기록한 책을 드물다”


그렇다. 역사에 아름다운 이름을 남긴 위인들의 전기는 아동용에서부터 성인용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하다. 백범 김구와 유관순 열사를 다룬 책이 100종이 넘는다는 글을 언젠가 읽은 적이 있다. 후세에 모범이 되는 삶을 산 분들의 위대한 생애를 기록하고 평가하는 일은 역사의 교훈을 얻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위인들의 삶만이 꼭 교훈적인 것은 아니다. 민족사에 부끄러운 삶을 산 민족반역자나 패륜적인 삶으로 지탄받은 악인들의 삶도 교훈으로 삼을 가치는 충분히 있다.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기록한 책도 필요하지만 언론인 윤덕한 씨가 1999년에 펴낸 <이완용 평전>은 또 다른 측면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고 하겠다.


따지고 보면 간신(姦臣)이나 모리배(謀利輩)들에 대한 기록은 그 역사가 상당히 오래됐다. 전한(前漢)시대의 역사가 사마천의 역저 <사기(史記)>에 이미 간신들에 관한 기록이 등장하고 있다. 12본기(本紀), 30세가(世家)에 뒤이은 ‘70열전(列傳)’이 그것이다. 권력에 빌붙어 기생하는 환관과 외척들에 관한 기록인 영행열전(佞幸列傳)을 비롯해 포악한 관리들에 관한 기록인 혹리열전(酷吏列傳) 같은 것이 그런 예다.


이런 사례는 우리 역사에도 있었다. 관찬기록인 <고려사> 권125, 열전38권부터는 ‘간신전(姦臣傳)’을 두고서 문공인, 박승중, 최홍재, 이인임 등을 ‘간신’으로 다뤘다. 조선 후기 영남 선비의 영수로 평가받는 홍여하(洪汝河)는 고려시대 역사서인 <휘찬여사(彙纂麗史)>를 펴냈는데, 그는 이 책에서 ‘열전’을 따로 설정해 혹리전(酷吏傳)·폐행전(嬖幸傳)·간신전(姦臣傳)·반역전 등을 서술하였다. (참고로, 혹리(酷吏)는 가렴주구를 일삼는 벼슬아치를, 폐행(嬖幸)은 아첨꾼을 말한다)


이런 전통은 시대가 변하면서 사라지고 말았다. 이는 악인의 행적을 기록하는 것을 타인에 대한 비방이나 점잖지 못한 행동으로 여겨온 사회적 분위기 탓이 아닌가 싶다. 게다가 사람들은 빛나고 남들이 좋아할 만한 것을 다루길 선호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조지훈이 ‘지조론’에 이어 ‘변절론’을 썼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일제시대 전공자 가운데 99.99%는 독립운동사를 택했다. 그러다보니 우리 근현대사의 치부인 친일 배족사(背族史) 연구는 ‘중뿔난’ 시인 임종국(林鍾國)의 몫이 되고 말았다.





최근 경남도민일보 임종금 기자가 펴낸 <대한민국 악인열전>(피플파워)은 그런 점에서 참으로 반갑고 귀한 책이 아닐 수 없다. 모르긴 해도 제목에 ‘악인(惡人)’을 넣는 문제를 두고 내부에서 적잖이 논란이 있었지 싶다. 책에 등장하는 여덟 명이 ‘나쁜 사람’들인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나 굳이 이를 ‘악인’이라고 표현하는 데는 나름의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도둑놈을 도둑놈이라고 써도 소송을 걸어오는 세상이다.


혹자는 우리 근현대사 100년을 서양의 300년 역사와 맞먹는다고 말하기도 한다. 불과 100년 사이에 우리는 국권 상실과 일제 식민통치, 해방, 좌우갈등과 한국전쟁,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독재와 그 과정에서의 4.19 민중혁명과 민주화 투쟁, 그리고 단기간의 고속 경제성장까지 온몸으로 부대끼며 목도했다. 실로 숨 가쁘게 ‘격동의 한 세기’를 달려온 것만은 분명하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기형적 역사가 만들어낸 '돌연변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친일·고문·학살·음모·공작 등으로 우리 현대사의 비극을 상징하는 단어들의 총집합이다. 여기에 하나를 더 보태자면 한 때 ‘죽여도 죄가 되지 않았던 존재’인 빨갱이까지. 따라서 가해자인 이들은 극렬 친일파, 친일경찰·헌병, 깡패, 또는 우익단체 출신들이었다. ‘악인 8인’의 대표적인 악행을 간단히 살펴보자.


‘죽는다’는 말의 속어 격인 ‘골로 간다’는 말을 유행시킨 장본인 김종원은 ‘여순사건’이 재평가되기 이전까지만 해도 빨치산 토벌의 영웅으로 불렸던 인물 가운데 하나였다. 1948년 10월에 발생한 ‘여수 14연대 반란사건’ 진압을 시작으로 지리산 일대에서 빨치산을 토벌하는 과정에서 그는 무고한 양민을 수도 없이 많이 학살하였다. 그는 빨치산 혐의자를 일본도로 목을 베고 부하를 즉결처분하는 등 차마 사람으로서 할 수 없는 만행도 서슴지 않았다. 말이 군인이지 그는 살인마나 마찬가지였다. 한국전쟁 당시 영덕전투 실패로 “학살에는 귀신, 전투에는 등신”이라는 소리를 듣고 해임됐는데 그를 거둔 사람은 이승만 대통령이었다. 사람 목을 잘라 선물하는 게 취미였던 그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는데 하나님은 그를 어떻게 처리했을지 궁금할 따름이다.


김종원과 유사한 인물로 특무대장 김창룡을 들 수 있다. 김종원이 일본군 하사관 출신이라면 김창룡은 관동군 헌병보조원 출신이다. 김종원이 민간인 빨갱이 색출에 앞장섰다면 김창룡은 군부 내 빨갱이 킬러였다. 두 사람 모두 이승만의 각별한 총애를 받은 점도 똑같다. 그는 백범 시해범 안두희를 ‘안 의사’라고 불렀으며, ‘빨갱이가 없으면 빨갱이를 만들면 된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여순사건 당시 박정희를 붙잡아 족친 것도 그였으며, 4개월 만에 당시 군 병력의 3%에 해당하는 1500명을 빨갱이로 몰아 숙청했다. 한 때 ‘이승만의 오른팔’로 불리던 그는 결국 자신의 옛 부하들에게 살해됐다. 마치 박정희가 김재규에게 총 맞아 죽은 것처럼.


경주 내남면 민보단장 겸 대한청년단장 출신의 우익깡패 이협우는 청년단에 비협조적이라는 이유로 주민을 살해한 것을 시작으로 1950년 8월까지 무려 169명에 달하는 동네사람들을 학살하였다. 검찰조사에 따르면, 그는 좌익을 소탕하기보다는 '사적인 감정'으로 학살을 자행했다고 한다. 오죽하면 4.19혁명 후 열린 재판에서 검사가 그를 향해 “형법상 사형보다 더한 극형이 있다면 서슴지 않고 그 극형을 택할 것”이라고 했겠는가. 이협우는 2~4대 국회의원 지냈으며, 5.16 후 재판이 흐지부지되어 처벌을 면했다.


이협우가 국내파라면 박춘금은 재일 친일깡패의 거두요, 김동한은 재만 친일파의 거두라고 할 수 있다. 16세 때 일본으로 건너간 박춘금은 1923년 관동대지진 때 일제가 학살한 조선인 시신 수습을 거들면서부터 일제의 하수인 노릇을 시작하였다. 재일조선인들로 ‘상애회’를 조직해 세력기반을 닦은 그는 한일 양국을 오가며 하의도 소작쟁의 및 농민회 해산 등 청부폭력을 도맡아 처리했다. 이런 공로로 그는 일본 도쿄에서 두 차례나 대의사(국회의원)에 당선됐으며, 일제 말기에는 친일단체 대의당의 당수로 활동하면서 해방 직전 그는 일제가 세운 ‘항일인사 30만 명 총살처분계획’에 적극 동조하였다. 해방이 조금만 늦어졌더라면 그가 이 일을 맡았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본다. 해방 후 반민특위 체포 대상자로 지목됐으나 일본으로 도피해 화를 면했다.




▲ 깡패 출신으로 일본 국회의원이 된 박춘금(가운데)과 그의 일본인 아내



김동한은 평소 “나는 조선에서 태어난 일본인”이라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녔다. 1934년 일본 관동군의 후원 하에 간도특설대의 전신인 간도협조회를 창설한 그는 만주지역 항일세력 내에 이들을 침투시켜 내분을 일으키거나 직접 물리력을 이용해 항일세력을 분쇄시키는데 앞장섰다. 그의 공작으로 투항·체포된 숫자가 최대 2500명에 달했는데 그가 사망하자 일제는 그를 기리는 동상과 기념비를 세워주었다. 조선인 친일파가 일본인 동상을 세운 예는 더러 있지만 일제가 조선인을 기념해 동상을 세운 것은 김동한이 유일하다.


끝으로 노덕술, 신상묵, 박종표 3인은 ‘고문경찰’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들이다. 일제 때는 독립운동가들을 고문했고, 해방 후에는 이승만 독재정권 하에서 주구노릇을 했다. 박종표의 경우 3.15부정선거에 항의해 마산시위에 가담했던 김주열의 시신을 마산 앞바다에 버린 장본인으로 4.19혁명 후 재판을 받기도 했다. 박종표의 상사로 함께 근무하며 갖은 악행을 저질렀던 신상묵은 해방 후 경찰로 변신해 반민특위의 조사도 피했다. 그의 죗값은 현직 국회의원인 그의 아들이 대신 받았다.


‘악인’들의 공통점은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보다 더 가벼이 여긴 ‘학살자’이다. 혹자는 친일을 위해, 혹자는 빨갱이 색출을 명분으로 내걸고 군인, 민간인,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마구잡이로 고문하거나 학살하였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불의한 권력자의 비호 아래 승승장구하였으며, 법의 심판대도 용케 피했다. 악인은 법도 하늘도 피하는 재주가 있는 모양이다.


이 책에서 소개한 악인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8명 가운데 이협우는 새로 발굴된 인물이라고 할 수 있으나 나머지 7인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질곡의 한국현대사는 굽이굽이마다 무고한 피를 뿌렸다. 1974년 소위 ‘인혁당 재건위사건’을 조작해 8인을 죽음에 이르게 한 장본인들도 버젓이 살아 있으며, 1980년 광주학살의 주범도 엄연히 살아 있다. 이들도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악인’들이다.


‘악인’의 개념을 1권에 등장하는 부류로 한정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실정(失政)·실책으로 혈세를 축낸 정치인이나 고위관료, 부당노동행위로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몬 악덕 기업주, 거짓말과 변절을 밥 먹듯 해온 정상배, 궤변과 술수로 신성을 모독한 종교인, 곡필로 세상을 농락한 ‘기레기’ 언론인, 법 가지고 장난 친 판검사 등등. 이들까지 악인의 범주에 넣는다면 그 대상은 몇 배로 늘어날 것이다. 1권에 이어 조만간 후속타가 쏟아지길 기대한다.


문득 오래 전에 배우 박노식이 감독과 주연을 맡았던 영화가 생각난다.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





<출처 :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1&table=wh_jung&uid=120>




출처 : Irene의 스크랩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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