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최근 우리 대학에서 교수에 의한 성추행 혹은 성희롱 문제들이 연이어 불거져 나와 큰 물의를 일으킨 바 있습니다.
뉴스를 보니까 억대의 연구비를 횡령한 교수까지 나와 낯 뜨겁게 만들더군요.
도대체 일반 사람들이 서울대 교수를 어떻게 볼지 심히 걱정이 되네요.

대학 교수라면 누가 봐도 사회지도층 인사임에 분명한데, 그렇게 자기 관리가 허술해서야 쓰겠습니까?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높은 도덕적 잣대를 스스로에게 들이대어야 할 사람들이 제자 성추행이나 하고 연구비 횡령이나 한다면 그게 말이나 되는 일입니까?


학생들 게시판에 가보면 교수들을 싸잡아 비난하고 있는 글들이 많이 눈에 띄는데, 그걸 읽는 심정이 정말로 슬프기 짝이 없습니다.

신문에는 수도권의 모 부장판사의 막말 댓글 얘기가 보도되었더군요.
그가 달았다는 막말 댓글의 수준을 보니 인터넷 공간에서 막말을 배설하고 다니는 깡패들에 비해 세련된 점이라곤 손톱만큼도 없더군요.

여러분들 그 막말 댓글 관련 신문 기사로 가서 그가 썼다는 글을 직접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온 사회를 저주하면서 사는 비행소년이 쓴 글처럼 보이지 않습니까?
따로 말해주지 않는 한 누가 그 글들이 현직 부장판사 나으리가 쓴 글이라고 생각하겠습니까?

 

그는 익명의 가면을 이용해 현직 판사, 더군다나 초임 판사도 아닌 부장판사라면 감히 입에도 담기 힘든 말을 거침없이 내뱉고 있었습니다.
어물전 망신 꼴뚜기가 시킨다고 다른 점잖은 판사들 얼굴에 먹칠을 해놓아 버렸네요.

나는 부장판사 정도의 사회적 지위를 가진 사람이라면 떳떳하게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 댓글을 달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표현의 자유라는 미명하에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막말 댓글로 자신의 감정을 배설하는 행위는 지도층 답지 못한 치졸한 행위라고 봅니다.
만약 그 부장판사가 자신의 실명을 떳떳이 밝히고 그런 막말들을 했더라면 그의 용기에 대해 최소한의 존경심을 가졌을지 모릅니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병폐는 어른이 어른 답지 못한 행동을 한다는 데, 사회지도층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그것에 걸맞지 않은 행동을 일삼는다는 데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른이 무슨 말 하면 코웃음을 치기 일쑤이고, 사회지도층에 있다는 사람이 무슨 말 하면 "너나 잘해라"는 가시 돋힌 대꾸를 하기 일쑤인 것입니다.
모든 권위가 실종된 이 어지러운 사회는 순전히 사회지도층을 자처하는 사람들의 잘못으로 인해 빚어진 비극입니다.

그는 낮에는 부장판사로서 한껏 점잖을 빼고 밤에는 막말을 서슴지 않는 인터넷 전사로 돌변하는 지킬박사와 하이드의 삶을 살아온 셈입니다.
어떤 일로 무척 화가 나서 우발적으로 막말 댓글 몇 개를 단 것이 아니라, 몇 년 동안 거의 직업적으로 막말 댓글을 달아온 철저한 이중인격자였던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우리 사회의 지도층이라는 게 몹시 슬프지 않습니까?

나는 그가 자신의 행위에 대해 어떤 변명을 하는지 지켜 보려고 합니다.
그 정도의 학식과 지위를 가진 사람이 도대체 무엇 때문에 화가 치밀어 막말 댓글을 수없이 쏟아냈는지 궁금하기도 하구요.
소위 사회지도층 인사라는 사람들의 추한 민낯을 보면서 우리 사회의 앞날을 심히 걱정하게 되는 것은 비단 나 한 사람에 그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http://www.huffingtonpost.kr/joonkoo-lee/story_b_667452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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