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직원 메일 첨부 파일 원세훈 원장의 운명 갈랐다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사건’ 특별수사팀은 2013년 10월 심리전단 안보5팀 직원 김모씨의 이메일을 압수수색했다. 23명으로 구성된 안보5팀은 트위터 전담 부서였다. 이메일에는 김씨가 ‘425지논’ ‘시큐리티’라고 이름 붙인 텍스트 파일이 첨부돼 있었다. 425지논에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론 비판 등 정치 논지가 정리돼 있었다. 시큐리티 파일에는 안보5팀 직원들의 이름 앞 두 글자와 트위터 계정들이 적혀 있었다. 검찰은 이를 기초로 트위터 계정 1157개를 특정해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혐의에 추가했다.
수사팀은 법정에서 난관에 부딪혔다. 김씨는 검찰에서 “첨부파일을 내가 작성했다”고 했지만 법정에선 “착각했다”며 진술을 부인했다. 1심은 “해당 파일들은 증거 능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디지털 매체에 포함된 문건은 작성자가 작성 사실을 인정해야 증거로 쓸 수 있다는 형사소송법 313조를 따랐다. 1심은 트위터 계정 175개만 증거로 인정했다.
서울고법 형사6부(부장판사 김상환)는 9일 원 전 원장 선고에서 이런 판단을 뒤집었다. 여러 정황을 고려할 때 해당 문서들은 김씨가 업무상 작성한 것이라고 봤다. 이를 입증키 위해 425지논 작성 정황을 상세히 설명했다. 425지논은 A4용지 420여장 분량으로 2012년 4월 25일부터 12월 5일까지 거의 매일 정치 이슈 논지가 추가됐다.
재판부는 파일에 적힌 트위터 활동 카페명과 김씨 휴대전화의 기지국 위치가 일치한 점, 보안이 유지된 안보5팀 직원들 이름이 있는 점 등을 근거로 김씨가 작성자라고 판단했다. 파일들을 바탕으로 트위터 계정 716개가 증거로 인정됐다. ‘이메일 첨부파일’의 증거 채택 여부가 선거법 위반 유·무죄를 가른 셈이다.
첨부파일의 채택 여부는 ‘국정원 사건’ 공판에서 끊임없이 논란이 됐다. 수도권의 한 판사는 “1심은 증거를 최대한 엄격히 채택했고, 2심은 김씨가 보안에 철저한 국정원 직원인 점 등을 더 중요하게 본 것 같다”고 말했다. 1·2심의 엇갈린 판단은 대법원에서도 주요 쟁점이 될 전망이다. 10일 오전 원 전 원장을 면회한 변호인은 “원 전 원장이 잠도 제대로 못 잔 기색이었다”며 “12일 상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국정원이 선거에 개입했다고 밝혀진 만큼 재선거를 해야 한다는 주장도 일부 나온다. 하지만 대선 무효화는 불가능하다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공직선거법은 선거 효력에 이의가 있을 때 당선 결정일로부터 30일 이내에 소송을 제기토록 규정하고 있다. 무효소송 가능 시한을 이미 넘겼다.
나성원 정현수 기자 na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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