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은 다니면서 예수님도 기억하기 싫습니까?
- 오마이뉴스 2014년 10월 23일 -
▲ 지요하 작가
과거 지방대학 문예창작과에 출강할 때다. 한 번은 학생들에게 인간의 수만 가지 마음들 중에 가장 귀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물은 적이 있다. 당연히 여러 가지 답변들이 나왔다. 학생들의 생각들을 충분히 접한 다음 내 생각을 들려주었다. 나는 세 가지를 꼽았다. 감사지정, 측은지심, 수치심.
인간의 수만 가지 마음들 중에 가장 귀중한 것으로 그 세 가지를 꼽은 이유는 우선 인간만이 지닐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가장 많이 제시한 모정이나 부정, 형제애 같은 것은 인간만이 지닐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수많은 동물들에게서도 그것들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그 세 가지 마음의 상관성 때문이다.
▲ 침몰하는 세월호 침몰한 세월호처럼 다수 국민의 이성과 심성도 침몰하고 있다. ⓒ 공동취재단
인간만이 지니는 감사지정과 측은지심과 수치심은 긴밀한 상관성을 지니고 있다.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측은지심과 수치심도 지니고 있다. 측은지심을 지니는 사람은 수치심도 지니며, 부끄러워할 줄 아는 사람은 타인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과 측은해 하는 마음도 탁월하다. 그 세 가지 마음이 서로 긴밀히 연결되고 상호보완적일 때 사람은 더욱 인간적인 품성을 지닐 수 있다.
그런데 그 세 가지 마음은 기억력이라는 것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뭔가를 쉽게 망각하지 않는 사람, 기억력이 왕성한 사람일수록 그 세 가지 마음도 원활하게 작동될 수 있다. 또 기억력은 포괄성을 지닐 때 온전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즉 자신의 과거 약속이나 언행 따위를 잘 기억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의 갖가지 현상들과 역사적 맥락들도 잘 기억할 수 있어야 자신의 삶 안에서 '의미의 꽃'을 피워낼 수 있다.
인간은 과거에는 기억력만으로 모든 지혜와 묘리들을 유지 보존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문자를 발명함으로써 기억들을 문자로 기록할 수 있게 됐다. 기억들을 문자로 기록하여 오래 보존할 수 있게 되었지만, 문자 때문에 인간의 기억력이 감퇴되는 현상도 생겨났고, 기억을 문자 안에 가두는 데서 생겨나는 폐단도 감수해야 했다.
그래도 자신의 기억을 문자로 기록하는 것은 여러 모로 바람직한 일이다. 자신의 기억을 명문화함으로써 기억력의 한계를 보완해줄 수 있으니, 문자 기록이 기억의 유실을 막을 수 있는 장치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문자로 자신의 기억을 기록하고 보존할 뿐만 아니라, 현대문명의 다양한 이기들, 이를테면 동영상 같은 것으로 자신의 과거 언행들이 자세히 속속들이 기록되어 보존되고 유포되는 시대를 살건만, 인간들은 자신의 과거 언행들을 철저히 망각해버리거나 무시해버리기도 한다. 문명의 이기들 때문에 도리어 기억력이 철저히 퇴화되어 버리는 현상이 생겨났는데, 문제는 그것조차도 당사자와 다중이 함께 인지하지 못하거나 당연시한다는 점이다.
기억력이 온전한 사람일수록 감사지정과 측은지심과 수치심 등 인간의 가장 귀중한 마음들이 잘 작동한다는 일반론적인 관점은 그래서 더욱 설득력을 지닌다. 기억력과 그 세 가지 마음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오늘날 기억력의 퇴화는 너무도 심각하다. 문자뿐만 아니라 동영상 따위 현대 문명의 이기들로 자신의 과거 언행들이 속속들이 기록되고 보존되고 유포되건만, 당사자와 다중이 그것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현상 속에서 인간만이 지닐 수 있는 지고한 마음들인 감사지정과 측은지심과 수치심이 함께 퇴화의 나락으로 빠져드는 현상도 노정된다.
우리는 그것의 전형을 박근혜 대통령에게서 본다. 그녀는 유난히 수첩을 애지중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늘 수첩을 지니고 다니며 매사를 꼼꼼히 메모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신의 기억을 잘 보존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되기도 했다. 기억력의 한계를 문자로 보충하기 위한 수단일테니, 바람직한 모습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수첩의 용도가 별로 포괄적이지 못하다는 사실이 적나라하게 입증되고 말았다. 그녀의 과거 언행이나 약속들이 문자로 광범위하게 기록되고, 동영상 따위 현대문명의 요체들 안에 잘 보존되어 널리 유포되건만, 그것들은 그녀의 기억력을 도와주는 구실을 전혀 하지 못한다. 완벽한 망각과 철저한 무시가 드높은 장벽과 성채로 나타나고 있을 뿐이다.
기억력의 퇴화는 비극을 잉태한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좋은 미래는 공염불일 뿐이다. 망각이든 무시든, 과거를 기억하지도 돌아보지도 않는 습성은 필연코 감사지정과 측은지심과 수치심 따위 인간의 지고한 마음들을 쇠멸시킬 수밖에 없다. 그 세 가지 마음을 제대로 지니지 못하는 사람은 인간적인 품성을 상실하기 쉬운 유형이다. 그런 사람에게서는 진정한 비전이 나올 수 없다.
우리는 오늘 극심한 혼란 상태를 겪고 있다. 기억력의 퇴화와 무시 속에서, 인간의 지고한 마음들인 감사지정과 측은지심과 수치심 상실의 정점을 치닫고 있다. 그런 사회 현상은 그리스도교 안에도 깊이 침투되어 있다.
천주교의 미사는 2천 년 전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고통, 참혹한 십자가상의 죽음을 끊임없이 기억하고 기념하는 일이다. 그 기억과 기념 속에서 부활의 기쁨과 희망을 반복적으로 확인하고 선포하는 일이다.
그런 미사성제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참혹한 고통과 죽음을 그만 기억하자고 한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기억을 빨리 지우고 잊고 덮어버리자고 한다. 명확한 기억과 철저한 진상규명만이 진정한 치유의 길임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 사람들이 그리스도교 신자의 다수를 점하고 있다. 그런 신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은 무슨 의미일지 실로 궁금하다.
- 오마이뉴스 지요하 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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